[묵상글]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전봉석 2023. 8. 14. 04:3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45:9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시편 101:2

 

 

성전에서의 직분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던 말씀(44장)이 비로소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위인과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의 성결은 하나님을 향한 ‘신성한 목적’을 암시한다. 그동안 성전의 측량과 성전 내부에 대한 식양에 대한 관심이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확장한다. 이스라엘 전역을 나누어 거룩한 땅의 분배하고(1-8), 지도자의 의무를 열거하고(9-17), 성전의 정결과 제사에 대해 묘사한다(18-25).

 

특히 오늘 ‘땅의 분배’라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47장 이후, 가나안 땅의 일부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과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있어 땅의 회복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하나님의 땅의 구별에 일차인 비중을 두고, 그 외 지도자들의 땅의 분배는 부차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곧 하나님의 땅을 구별하고(1-3), 각 지도자들의 땅을 분배하고 있다(4-8).

 

하나님은 땅의 한 구역을 거룩하게 구별하신다. 물론 가나안 땅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리,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게 하려 하심이다. 영성이란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성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데 이는 스스로 구획하여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고 남과 견주려는 것 같은 인상 때문이다. 실제 영성을 운운하는 분위기가 마치 편 가르기 하는 듯한 것은 사실이다. 누가 내게 영성이란? 하고 묻는다면 모든 성도의 기본적인 삶을 통칭한다고 하겠다. 어떤 특정한 대상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신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을 우선하는 생활이 영성이다.

 

곧 오늘 나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 맡은 바 청지기적 삶이다. 오늘 나의 이 연역한 육신, 혹은 재물과 지위와 가정과 모든 영위하는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딛 1:7).” 이것이 어찌 특정한 계층의 ‘감독’만 해당하는 말씀이겠나? 모든 성도라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고로 오늘의 나의 약함도 이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활약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별 볼 일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가령 어느 집구석이나 애물단지가 하나씩은 있다. 그런데 저 또한 하나님이 그리 두심으로 쓰임을 다하는 것으로, 다윗은 자신을 쫓아오며 욕하고 조롱하는 시므이에 대하여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삼하 16:10).” 하고 그것까지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영성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땅을 구별하고, 성소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왕의 땅을 분배한 것도 모든 땅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나 하나님께는 인간들의 모든 소유와 일거수일투족이 통치의 대상인 것을 알게 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 ‘어떤 일’을 당할 때 그 또한 하나님의 통치 하에서 주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인 것을 주목하는 삶.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맡기신 각각 그 은사에 따라 충성을 다하는 것이 영성의 삶이다. 그래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무엇을 소유하였든지, 그것이 설령 억울할 정도로 불공평한 것처럼 여겨진다 해도 그것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나는 어제 말씀을 전하다 울컥, 했던 것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제는 이 말씀이 나의 가장 큰 위로이면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에 대하여. ‘사나 죽으나’ 나 같은 게 주의 것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게 새롭다. 전에는 그처럼 억울하고 싫었던 ‘나의 나 된 것에 대하여’ 이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를 살았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너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어릴 적 나의 부친의 말이 이제는 확신을 넘어 현실이 되었다는 것. 이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4-15).” 고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비록 오늘의 생활이 힘에 겨워 단내가 나고, 나의 연약함으로 나 하나 건사하는 일도 힘에 부쳐 고달플 때에도, 그것으로 오히려 누구를 생각함이 내가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게 하시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마음에 두고 저를 위해 기도하는 일. 어쩌면 우리가 영성으로 산다는 것,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산다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일 것인데 그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가 자기 집 문 앞에서 자신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저를 한 번도 돌아볼 수 없었던 그 불가능한 세계가 끔찍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 16:11).”

 

이는 아무나 그리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도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이는 권함이 아니요, 명령이다. 호의가 아니라 사명이다. 친절이 아니라 의무다. 마치 내 것을 덜어주고 나눠주는 것처럼 여겨서는 그 영성은 영, 성기어서 하나가 될 수 없어 흩어진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할 때,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여기서 나의 기쁨,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영성이며 충성된 종의 기본이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목사 안수식에서 이 본문으로 말씀을 들을 때. 그땐 몰랐다. 그러다 무던한 나의 ‘묵상과 기도’로 늘 제자리걸음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더 욕심이 난다. 아,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있는 늙은이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0-12).”

 

저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알겠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이는 권세 잡은 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 16:29).”

 

그러므로 나의 오늘을 사랑해야지. 어떤 어려움도 사명으로 여기며 그에 따른 고통도 감사함으로 받아야지.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수잔이란 한 영국 여성의 일화가 떠오른다. 저는 열여섯에 골결핵이라는 희귀병을 발견했다. 저는 주일학교에서 배운 신앙으로 중고등과정을 열심히 하여 의사가 되어 주께 헌신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졸지에 난치병을 안고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병을 낫고자 하는데 전념했다. 그렇게 스무 해를 견디고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을 때, 자신의 병을 수락했다. 그동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었으나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다. 신앙의 전환은 저의 삶을 바꾸었다.

 

같은 환자로 같은 병실에 있는 신세이면서 수잔은 항상 밝고 명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실천이었다. 물을 한 잔 건네는 일, 누가 고통스러워할 때 의사를 불러주는 일도, 동질감을 느끼며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하나님을 전하는 일은 물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하는 구호와 저에 대한 소문은 병실에서 병실로 옮겨져서 온 병원이 저의 이름을 가져와 한 운동이 되고 단체가 구성되었다. 나아가 영국 전역의 병원마다 환자 스스로 그 처한 상황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가 자발적으로 확산되었다. 후에 저는 회고록에서 ‘자신은 하나님께 의사가 되어 돕는 자로 헌신하길 바랐으나, 하나님은 자신을 환자로 세워 더 많은 환자를 위로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4-5).”

 

이에,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101:1-2).

 

내가 완전한 사람으로 완전한 길을 갈 수 있는 것, ‘내 집 안에서’ 곧 나에게 맡기신 나의 생활반경에서 주를 인정함으로 가능하였다. 물론 나는 할 수 없으나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주께 의지할 때,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45:9).

 

나는 누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묵상글을 쓰는 게 아니라, 우선은 나로 다시 되새기게 하고, 나로 주 앞에 항상 서게 하려고 이 시간, 이 일을 사명으로 삼는다. 그러할 때 나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으로 주가 어찌 다루시고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이 시간을 위해 나는 나의 저녁시간을 포기한다. 약속을 피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눕는다. 어제는 딸애가 늦은 저녁 겸 무엇을 같이 먹자고 주문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일찍 잘 것을 알고 다시 권하지는 않았다. 되풀이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은 생활을 바꾸고 의식을 다루어 운명이 된다.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4).”

 

성경은 언약이고 예언이며 성취고 증명이다. 여기에 나의 사소한 삶도 증거가 된다. 가령 나는 누구의 묵상글을 읽을 때 저의 소소한 적용에서 은혜를 받는다. 솔직하고 진솔한 저의 글쓰기에 내가 늘 배운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6).

 

다윗의 영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이다. 하나에서든지 열에서든지 하나님이다. 이에 솔로몬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