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14장 /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전봉석 2024. 8. 30. 11:47

240901 주일

 

이사야 14장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사 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사 14: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들어가는 말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39-40).”

 

이 내용은 누가만이 묘사한 이야기다. 우린 주를 찬송하고 이를 선포해야 한다. 다른 복음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을 누가만이 서술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우리를 설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외치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나서서 제지시키실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는 예수를 ‘주’로 외치며 따르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예수님의 신변에 위협이 될까하여 흥분한 군중을 자제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 속내는 예수께 드려지는 제자들의 칭송이 신성 모독으로 여겨져 자신들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서이다.

 

예수님은 하박국이 선포한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합 2:11).” 이를 인용하여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40).” 이는 우리가 간증하지 않으면 길가의 돌들이 입을 열어 주를 찬송할 것임을, 곧 오늘 우리의 찬양이 매순간 정당함을 알게 한다. 이는 주를 따르는 자들의 의무다. 슬프고 때론 견디기 어려울 때도 우리는 찬양으로 주의 선포가 된다.

 

본문내용

 

오늘 본문은 13장에 이어서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멸망의 예언이다. 저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이다. 특히 바벨론과 앗수르를 비롯하여 주변 왕을 언급하면서 멸망을 예언함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알리신다. 저들은 교만하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높아지려 하고, 실제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았고, 하나님의 땅을 침략하였다. 저들의 세력이 막강할수록 그에 따른 멸망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밀접하다. 세상을 향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본문 구성은 다음과 같이 뚜렷하다.

 

(1) 유다의 남은 자들의 귀환을 약속(1-2절)

(2) 바벨론 왕의 멸망에 대한 조소의 시(3-23절)

(3)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예언(24-27절)

(4) 블레셋의 멸망에 대한 예언(28-32절)

 

오늘 본문은 산문체로 된 위로의 시이다.

 

1. 남은 자들의 귀환을 약속하신다(1-2).

 

주전 925년,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이 통치하면서 200년을 유지하다,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다. 사울 왕에서부터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던 통치는 각각 40년씩 120년의 통치한 것에 비하면 각각 왕들의 통치 기간이 너무 짧다.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세워졌다. 통치 기간은 짧았고, 8명은 암살당했다. 남유다 역시 20명의 왕이 세워졌으며 북이스라엘보다 150여 년을 더 유지하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앗수르는 셈의 아들로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 10:22).” 여러 지역으로 확장하여 함의 족속인 니므롯과 셈족 등 혼합 형태로 번성하였다. 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와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중하류에 위치했고, 앗수르는 강 상류 쪽으로 형성되었다. 오늘 날에 이라크 전역이 그곳이다. 70년 동안이나 이방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본토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가나안 땅에 두시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1절에서,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이를 스가랴 선지자는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슥 1:17).” 이와 같은 예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결과를 얻었다.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사 14:2).”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권리와 특권과 언약을 교회가 계승하였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도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3-5).” 하여 오늘 본문은 한 편의 시가이다.

 

이를 스가랴는 정리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슥 8:20-22).”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도 주의 은혜를 구하고, 주를 찾는다. 비록 오늘 날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으나 재림의 때가 이를 때에 저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돌이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다.

 

2. 바벨론 왕의 멸망에 대한 조롱의 시(3-23)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11).”

 

‘바벨론’ 곧 이 땅에 권세 잡은 것들의 멸망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회복을 의미한다. 우리를 향한 구원의 노래이다.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4).” 되묻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5).” 하여, 이 세상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하실 것이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1). 심판은 하나님 백성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사 47:6-7).”

 

2) 이를 주가 갚으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렘 50:33).” 그러므로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어서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과 탄식 거리가 되고 주민이 없으리라(51:24, 36-37).”

 

이를 오늘 이사야는,

 

첫째,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멸망하게 하실 것(4-6)

둘째, 저들 왕의 멸망을 기뻐하는 노래가 울려퍼질 것(7-8)

셋째, 결국 바벨론 왕은 음부로 내려갈 것(9-21)

넷째,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은 심판이심(22-23)

 

3.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예언(24-27)

 

바벨론 멸망의 긴 묘사가 끝나자, 비교적 짧게 주변국에 대한 심판이 선언된다. 그중 첫 번째가 앗수르다.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상대적으로 짧으나 하나님의 작정은 단호하시다. 사실 앗수르에 대한 예언은 시기적으로 바벨론보다 앞선다. 이를 이사야는 순서를 바꾸어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하심을 확증한다. 그렇게 바벨론에 대한 예언이 앗수르에게도 귀속되어 이 또한 성취될 것을 알게 한다.

 

4. 블레셋의 멸망(28-32)

 

앗수르에 이어 다시 블레셋에 대한 예언이다. 역사적으로 바벨론은 항상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로 지내왔다. 다윗의 왕권 수립 이후 이스라엘에 종속적인 나라였으나 아하스 왕 때 유다 남쪽 도시들을 침노하여 그곳에 거주하면서 그 세력을 쌓았다. 이는 유다의 아하스 왕이 망령됨으로 여호와께서 저들을 낮추신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및 그 주변 마을들과 딤나 및 그 주변 마을들과 김소 및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대하 28:18-19).”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려하심이다. 가령 창세기 38장에 삽입된 유다의 가나안화를 막으시려고…. 당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가나안과 통혼하고 저들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이에 요셉을 애굽에 팔려가게 하시고 후에 이스라엘의 가족 70 명(창 46:27)을 고스란히 애굽으로 이주시켜, ‘고센 땅’에 따로 두어 보호하셨다(34).

 

나오는 말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시 135:6).”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들 손에 맡기셨다가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과 모든 이방민족을 심판하신다. 저들의 멸망의 날은 ‘이스라엘’의 자유와 해방의 날이다. 오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는 날에 육신의 속박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 모두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의 일이다. 이에, ‘우리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 14:25).” 그리하여 최종적인 때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하고 약속하신다.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23).” 곧 ‘여호와의 땅을 주의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3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