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17장 /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전봉석 2024. 9. 26. 10:28

240929 주일

 

이사야 17장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사 17: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사 17:2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사 17:3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들어가는 말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살든지 무신론자로 살든지, 실상은 저마다의 우상을 그 마음에 하나씩은 담고 산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영광을 안다고 하면서도 이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으로 바꾸듯 자신의 이상과 의지를 기준으로 우선한다.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는 말씀을 순종할 때는 의미가 없다.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대상 17:20).” 하는 고백을 가슴에 품고 살 수만 있다면…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하며 그 마음에 좋을 대로 믿어서 ‘자신(自神)’으로 삼고 사는 시대이다. 곧 어떤 신(神)보다 우선하여 자신의 자유의지를 내세워 무언가를 취사선택하려는 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이를 사람의 기본 권리로 여겨 교회를 선택하고, 말씀을 선별하여, 각자 자기 취향에 맞는 교회나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인들이 늘고 있다. 물론 예전에 교회가 드물어 각 동네마다 한두 교회가 전부이던 시절, 무작정 한 교회만을 다니면서 그 교회 목사님의 말씀으로만 무조건 한 생을 같이 하던 때와는 다르다. 그렇다 해도 너무 쉽게 유행을 따라 살듯이 교회를 옮기고, 걸핏하면 말씀을 재단하고, 교회를 평가하여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쇼핑을 하듯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 하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다메섹의 멸망을 알리시는 이유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사 17:1).” 이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국들의 멸망과 그에 따른 예언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저들을 돌이켜 주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로 이를 듣고 돌이키게 하려 하심이다.

 

그리하여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 89:6).” 이처럼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게 한다. 열 가지 은혜를 받은 것보다 한 가지 고통으로 인해 원망하는 게 사람이다. 우린 저마다 자신의 신앙을 자부하지만 실제 삶 가운데 구하는 것은 나의 필요와 그 요구에 따른 것들이 우선한다. 머리로는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고 하지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은 항상 뒤바뀐 채 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주의 마음은 한결같으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 49:8).”

 

본문이해

 

1. 멸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남을 자들은 있다.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6).”

 

곧 하나님의 징벌 중에도 남겨두신 바 된 자들이 있다! 이를 본문은 매우 시적으로 표현한다. 곧 하나님이 징벌하실 때는,

 

첫째,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게 쇠약해질 것인데,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을 것이 가차 없다. 또한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이 희박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남길 자는 남겨두셨다.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이것은 둘째,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다. 셋째,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다. 그러니까 세상이 아무리 소망이 없는 것 같다 해도, 우리가 환난 중에 기뻐하는 것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2. 멸망의 날이 돼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7-8).”

 

우린 살면서 저마다의 확신과 기준으로 산다. 그것은 각자의 우상이 된다. 어떤 이에게는 가족이 우상이다. 어떤 이는 물질, 어떤 이는 자신의 이상과 목표, 더 나아가 편집증적인 각종 신상과 자연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여 ‘성물’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멸망의 날이 되었을 때, 헛된 우상을 의지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만 바라볼 것이다. 시편은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전한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렘 10:14-16).” 곧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우상이다.

 

3. 자연재해와 전쟁과 난리는 하나님을 저버린 까닭이다.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9-10).”

 

우리 죄를 사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주를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시편은 강조하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2-5).”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주를 바랄 때,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5-8).” 오늘 우리를 미혹하는 것으로 난리와 난리 가운데서 주를 바랄 것이다.

 

나오는 말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11).”

 

우리가 살면서 나름의 노력으로 일구어 온 삶을 두고 회환에 젖는다. 늘 보면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 삶이란 후회와 회한을 빼면 남은 게 없다. 오늘 말씀처럼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곧 나름은 노력으로 학창시절을 살았고, 젊음을 바쳐 열심을 다해 중년을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황혼 길에서는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하시는 말씀과 같이 여한뿐이다.

 

이에 오늘 말씀은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12).” 나름은 수고하여 살았던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허무하고 무상할 뿐이어서,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13).”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우리가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으니,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14).” 그러한 결과에서 우린 주가 인도하셨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1) 마음으로 인정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2) 영으로 주를 인정한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3) 지식으로 인정한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이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오늘 말씀에서 다메섹에 대한 경고에 있어, “보라” 하고 우리로 집중하게 하신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1).” 이는 다메섹의 멸망이 아울러 에브라임의 요새와 아람의 남은 백성들을 포함하고, 모든 대적으로 확장됨을 선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다메섹은 앗수르의 다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

 

곧 하나님은 모든 시대, 모든 민족 가운데,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곧 남은 자들이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로 삼으신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신 19: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