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세아 2:6-7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29
사물에도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저마다의 것이어서 개체적이다. 누구에겐 짠하고 누구에겐 심드렁하다. 자동차를 가져갔다. 그러기에 앞서 속을 비우고 청소를 하다 언젠가 지나갔을 톨게이트 영수증과 언제 사용했을 나무젓가락과 도대체 이런 게 있었나? 싶은, 물건마다 기억이 있을 리 없는데도 나는 저것들의 기억이 두려웠다. 2007년 식이다. 딱 십년을 채우고 갔다. 여덟 번째 차였다. 처음 것도 십년을 탔으니 중간에 예닐곱 개는 뭐 때문에 그리 자주 바뀐 것일까?
나는 차를 가져갈 사람을 기다리며 핸들을 잡고 앉아 생각하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소위 말하는 죽지 못해 살던 시절이었다. 새 차를 구입한 게 나름의 죽을 궁리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나는 6억 가까운 생명보험에 가입이 돼 있었다. 어떻게 죽어야 아무도 모르게 자살이 아닌 사고일 수 있을까? 설마 새 차를 뽑은 사람이? 하는 생각으로. 참 무섭게 달리던 시절이다. 인천서 충남 당진에 있는 낚시터까지 40분에 끊기도 했으니까. 바람에 휘청거릴 때의 아찔함이라니. 가장 그럴듯한 죽음은 교통사고로 위장하는 거였다.
그해 가을, 안국지 저수지에서의 새벽. 왜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지. 툭툭, 떡밥그릇에 떨어지는 눈물은 안개 낀 고요한 저수지에 소리가 되어 울렸다. 걸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 아무리 험하게 몰아도 차는 사고가 나지 않았고, 나는 심신이 지쳐 그만 쉬고 싶었다. 진통제를 먹어가면서도 이틀째 낚시를 하고 있던, 그 새벽. 죽고 싶다는 마음과 살려주세요, 하는 마음이 충돌하였다. 마치 가위눌린 사람처럼, 낚시 의자를 부여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왜 눈물은 저 혼자 툭툭, 떨어지면서 떡밥그릇을 쳐대며 소리를 냈는지.
나도 모르게, 주님! 도와주세요. 했을 때의 그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이 소리 없는 울음으로 바뀌고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낚싯대를 거두어 차에 던져두고 이른 새벽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었다. 마침 등교를 하기 위해 아침을 준비하던 중1, 중3 아이들과 아내에게 엎드려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던 일. 그리고는 다음 날부터 새벽예배를 나갔고 갈 때마다 나는 울었다. 다시 하겠습니다. 비로소 내 입에서 항복의 소리가 터졌다. 2008년도 신대원을 떨어지고,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같이 성경을 읽고, 나는 새벽예배를 다녔다.
아들애를 필리핀으로 보내야 했던 상황. 휘청거리던 돈 문제가 급기야 회생절차를 밟게 되는 시기. 그런데도 신대원을 할래? 이 길을 갈래? 하고 물어대는 내 안의 숱한 질문을 아랑곳하지 않고 2009년 신대원에 들어갔고, 나는 울면서 신학을 공부했다. 핸들을 잡고 앉았으려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차 안에서 나는 자주 울었었다. 울면서 3년을 마쳤다. 학기마다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3박4일 세미나를, 늦은 밤에 집으로 왔다가 새벽에 다시 합류하고. 목사안수를 앞두고도 그 숙소에서 잘 수 없어 늦은 밤에는 집으로 운전을 하고 갔다가 이른 새벽에 다시 돌아가곤 하였던.
그러게. 지난 십년의 세월만으로도 참 파란만장하였구나. 고마웠다. 나는 핸들을 훔치며 자동차에게 말하였다. 사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듣는 귀가 있다면 저는 뭐라 내게 일러주었을까? 사람이 와서 차를 가져가는데 나는 울컥, 하였다. 사물의 기억은 개별적이어서 누구에겐 짠하고 누구에겐 심드렁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가족들이 서운하기까지 하였다. 괜히 속상해서 차에서 꺼내온 낚시가방이며 의자를 아무렇게나 부려놓고 글방으로 올라갔다. 종일 허전하고 뭔가 서러웠다.
야속할 정도로 간소한 이별 앞에 나는 사물의 기억을 존중하였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기뻐할 줄 알게 하시려고, 기어이 기뻐하게 하심으로, 그 기쁨에 참여하게 하시었다. 아들애는 무슨 번역 일을 일주일 안에 해주어야 한다고 일거리를 싸들고 글방으로 왔다. 나는 곁에 앉아 책을 읽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조카아이가 벌금형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났다고 했다. 여전히 약물치료를 병행한다고 했다.
오 여사 알지? 너무 느닷없는 질문에 생소하였다. 친구의 오랜 선배언니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오 여사가 이혼을 했어. 아들애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대. 혼자서 말이야. 친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에 두어 번 같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구나. ‘모두가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아이는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사람도 처녀 적에 교회를 다녔던 신자였다. 그러니 너무 빤한 각본인데도 다들 그걸 한사코 부인하려고만 든다.
어거스틴이 말했다. “한때는 잃어버릴까봐 그렇게 조바심 냈던 무익한 쾌락을 단번에 털어버리고 나니 얼마나 행복한지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주께서 그것들을 나에게서 떼어버리시려고, 오직 왕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지.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말했다. 그렇구나. 다 내 말들이구나. 나야말로 아무 것도 희생한 게 없는데 나에게 이 큰 기쁨을 주셨구나.
그래서 존 파이퍼는 우리의 기쁨이 순종의 결과가 아니라 순종의 일환이라고 하였다. 기뻐할 수 없는 데도 기뻐하는 것이 말씀에 따른 순종이라는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그렇지.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 32:11).” 막연히 그러라는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다. 이를 준행하는 게 순종이다. 기뻐할 게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라는 말인가! 나는 핸들을 잡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알았다. 그래서 그 모든 게 기쁘지 아니한가!
차를 가져가는 사람이 말했다. 차를 참 잘 타셨네요, 사고 한 번 없이. 나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기쁨을 나의 십년지기 자동차를 쓰다듬으며 생각하였다. 얘가 고생이 많았지요. 내 울분과 서러움을 다 받아주면서도, 어떻게 그 끔찍한 사고를 모두 피할 수 있었을까? 죽었어도 수십 번은 죽었어야 하고, 대형사고로 이어져 차가 완파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였는데,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67:4).”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조카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다. 오 여사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다. 너와 하나님과의 문제다. 네가 조카에게 할 역할이 있는데, 오 여사에게 할 역할이 있는데, 모두가 힘든 건 너와 하나님과의 문제다. 친구는 나의 말을 어찌 받아들였을까? 잠깐 돌이켜보니 그렇게 신대원을 떨어지고 한 해 동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원하시는데 신학보다 가정을 먼저 일으키셨다. 나는 이제 서슴없이 아이들이나 아내 앞에서 울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새벽예배를 나갔다. 생활 태도는 모두가 똑같은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 호세아서는 그것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호 2:6-7).” 그제야 우리의 본 자리로 돌아갔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숨기지 않았고, 혼자 이고 지던 짚덩이를 가족 앞에서 불살랐다.
곧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9).” 그럴 수 있는 동안, 나는 희생한 게 없었다. 돌아보니까 나는 한 게 없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다. 어떻게 그 먼 길을 돌아올 수 있었을까? 까마득한 것 같은데 고작 한 뼘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그러셨다. 아주 어릴 적, 중학교 일학년 까까머리 아이가 세례를 받으며 서원하였던 그 일이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20).” 우리의 위대하였던 기억은, 나의 이름이 주의 나라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기쁨이다. 그래서 C. S. 루이스가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크리스천의 의무다.” 쥐뿔도 없으면서 내가 이처럼 그냥 좋아도 되나? 즐거워해도 되나? 기뻐도 되나? 싶었던 게, 실은 그러라고 주께서 모든 나의 희생을 감당하고 계셨던 거였다! 나는 아무 것도 희생한 게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기쁨을 돕는 자로 나의 역할을 맡기신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4).” 내가 친구에게 전하여 줄 말. 우리의 어린 신자들에게. 또 이웃하고 있는 주변의 사무실 사람들에게 이 기쁨의 소식을 알려주게 하시려고.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5).” 먼저 들어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호 2:21-22).” 그러니까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그에 따른, 나에 대한 부르심을 십년지기 자동차가 말해주었다. 사물에도 기억이 있다. 저는 외쳐 말하였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 18: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