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왕상 3:4-15 / 듣는 마음

전봉석 2018. 3. 23. 14:13

20180325 주일

 

왕상 3:4-15

듣는 마음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3: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3: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3: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3: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3: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들어가는 말씀

 

창기 두 여자가 한집에 살았다. 둘은 같은 때에 아들을 낳았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한 여자가 그의 아들 위로 누워 아이가 죽었다. 한밤에 일어난 일이다. 한 여자는 죽은 아이를 산 아이와 바꿔치기를 하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 여자는 솔로몬 왕 앞에 섰다. 서로는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솔로몬이 말하였다.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곁에 있는 모든 대신들도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왕이 말하였다.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왕이 다시 말하였다.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라. 그래서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이 무슨 해괴망측한 판결인가? 그때 한 여자가 그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왕께 아뢰었다. “주여 산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그러자 다른 여자는 말하였다. “아닙니다. 그러는 것이 공평합니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차라리 나누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이 답하였다.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이와 같은 왕의 심리와 판결 앞에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었다.

 

1. 창기 두 여자

저 둘은 모두 죄인이다. 어느 하나는 선하고 어느 하나는 악한 것이 아님을, 성경은 창기를 들어 예로 삼았다. 거짓말을 한 여인이나 실제 아들의 어머니나 둘은 다 같이 창기다. 또한 저들은 한집에 살았다. 같은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또한 사흘간격으로 아들을 해산하였다. 그 즐거움이 같은 것이다. 곧 같은 맥락의 말씀으로 우리는 모두 죄인인 것을 주목하게 하신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비슷한 예로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함께 달리었던 두 강도를 연상하게 된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19:19).” 이때 하나는 데려감을 받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일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17:34).” 그러니까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35).”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이 땅에서 잘 살다오라고 보내신 게 아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행복은 더러 유치하고 보잘것없는 데서 느껴진다. 그럼 우리의 나음은 무엇인가?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5).”

 

2.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듣고 싶어 하신다. 이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43:2-3).” 하나님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시기 때문이다. 곧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자로 구해도 된다.’ 이는 특권이다. 다음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1) 존경과 존중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6).”

 

먼저는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주를 존경하였음을 솔로몬은 분명히 하였다. 또한 솔로몬을 주께서 아버지 다윗을 존중하셨음을 바로 알고 있었다.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이에 존경은 우러러 받듦이고, 존중은 높이어 중히 여김이다. 바울 사도의 고백에서 바로 이 존경과 존중의 진수를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어떤 상황이든 또는 어떤 역할이든 그는 그것이 주의 은혜인 것을 바로 알았다. 아는 자의 탁월한 고백은 오직 은혜를 고백하게 된다. 이에 나의 약함까지도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을, 그 이유를 분명히 하였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어떠하든 주의 선하심을 받듦으로 존경이고, 이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머물게 하시는 존중하심이다.

 

2) 겸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7-8).”

 

스스로 왕이 된 게 아니다. 주가 세우셨다. 그런데 저는 자신을, ‘종은 작은 아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 막중함을 저는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다. 기고만장하여 자신이 그 뜻을 펼칠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오늘 사는 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삶이 내 수고와 노력의 결실이 아님을, 누구도 자기 의지나 결실로 이 땅에 온 것이 아님을, 사는 날 동안 이 인생의 값어치는 주신 이의 뜻을 받듦이고, 맡기신 이의 기쁨을 위한 것으로 영광이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6:30).” 또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이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0-31).” 이에 겸손은 주를 온전히 신뢰할 때 생겨나는 마음이다. 그 앞에서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우리 삶은 순간적이어서 찬란하고 찬란하여서 슬프다.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62:9).”

 

3) 듣는 마음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

 

듣다는 단순히 귀로 듣고 느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주의 깊게 받거나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들음스밈의 뜻을 내포한다. 이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성경의 진리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우리는 흔히 저가 어떤 사람인가 알려면 저가 하는 일이나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떤 이와 어울리는가를 보면 안다. 듣는다는 것은 스며져 저를 이루는 효험이다. 흔히 약이 잘 듣는다 할 때 효험이 있다, 하는 표현이 그 의미다.

 

3. 주의 마음에 든지라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10).”

 

우리의 사명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그럼 어떤 삶이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먼저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어찌 언급하시는지 들려준다. 첫째, 먼저는 건강을 구하지 않았다. 둘째는 부를 구하지 않았다. 셋째는 출세를 구하지 않았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바라는 바,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저가 구한 것은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였다(11). 즉 저는 자신에게 허락하신 삶의 기준을 바로 알기를 원하였다. 세상에서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또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자신의 안위와 안녕을 먼저 살핀 게 아니라,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일로 이를 그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보면 분명하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즉 주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이타적인 마음이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2:27).” 믿음과 구원은 모호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드러난다.

 

 

나오는 말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12).”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내가 일일이 구하여서 얻을 수 있는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요구는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아이의 맹랑한 소원과 같다. 더 나은 걸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이 요구를 따라 구하는 자는 실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긴다. 건강을 빌고 돈을 바라며 하는 일이 잘 되길 원하는, 정도의 수준 말이다.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다는 것은 우리가 구할 줄 모르는, 더 좋고 좋은 것을 알아가는 일이다. 그 원리는 역설적이다. 듣는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오늘 우리가 솔로몬의 듣는 마음에서 바로 취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주는 마음이고, 섬기는 마음이며, 이는 하나님의 마음에 든 솔로몬의 마음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시다. 곧 듣는 마음은 내어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