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6-7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시편 112:5
이를 의식하고 꾸며 그리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리 되는 것에 대하여 주가 이루심이다. 은혜는 받은 만큼 나눌 수 있는 것이어서 담겨진 그릇에 따라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으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함이겠다. 그에 대한 구별이다. 첫째,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6).” 이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하는 오늘 말씀과도 만난다.
그래서 더는 세상 초등학문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한데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20).” 종종 우리는 세상처럼 굴 때가 있으니, 이에 대해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22).” 한때 쓰이다 없어질 것에 대하여, 육신의 생명이 그렇고 돈과 물질이 그렇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러하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3).” 뭐가 좀 되는 것 같을 때 주의하고 더욱 주님만 의뢰하는 게 지혜이겠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시 112:7).” 세상의 여러 경고나 위험들로부터 자유롭다. 주를 의뢰함으로 그 마음이 굳게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8).” 넷째, 나누어 준 것이 영광 중에 들린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9).” 문득 고약한 어느 종의 비유가 생각난다. 주인이 저의 일하는 게 마뜩찮아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저는 주인의 것을 나누었다. 빚진 자의 것을 탕감하여 준 것이다. 이를 보고 주인은 저를 지혜롭다고 하였다.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긴 하나, 이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신 이가 우리의 주인이심을 알 때 그 의미는 깊다.
다섯째, 더는 악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10).” 역으로 우리가 그 증인이 되는 일이다. 당장은 내 것을 내어주는 것 같고 그러해서 괜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은혜란 받은 자의 것인 만큼 또한 나누어주는 자유도 동시에 얻는 것이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 112:5).” 이를 정의로 행함이라니!
모처럼 중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왔다. 방학동안 어찌 지냈는가, 서로들 이야기하느라 왁자지껄하였다. 한 아이는 왕따다. 늘 자기 기분에 사로잡혀 있어 모두를 피곤하게 한다. 그러니 친구도 없고 누구도 같이 어울리려하지 않는다. 한 아이는 지진아와 다를 바 없이 모든 것을 못한다. 그 엄마의 극성은 도를 넘어서 아이를 들들 볶는다. 같은 학년의 아이는 이혼을 당한(?) 엄마와 그이를 딸로 둔 외할머니와 같이 산다. 두 여자의 분풀이가 아이에게 향한다. 동네 밖을 못 벗어나게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고 간섭한다.
이 외에도 아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뒤틀리고 기형적인 구조를 갖는다. 나는 아이들의 면면을 자주 글로 풀어내게 하고, 그것을 직면하여 자신의 생활구조를 눈으로 확인시키려 한다. 한 아이가 말했다. 자신이 그럴 때 유독 남들에게도 그러는 거 같아요. 친구 누가 어떤 일로 시비를 걸던 일을 말하다 그리 예민하게 구는 것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유난을 떠는 우리의 아우성이나 열심은 같은 맥락의 콤플렉스가 그 원인이다.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 구조는 약한 데서 강하여지는 원리다. 이를 성경의 구조로 반추하면,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곧 우리의 부정적인 측면이 그 안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마다 골창을 지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내 안에 두시는 아이들을 향한 마음도 늘 새삼스럽다. 그런 가운데 저녁에 같이 묵상하였던 말씀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딛전 4:4).” 이를 확대하면 우리가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에서도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지으신 것임을 알게 하신다. 곧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는데 이는 모든 게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저 아이를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고로 우리에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신 거였구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나의 어리석음과 나약함까지도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귀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이들이 두런두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까닭은 경계를 풀기 때문이란 걸 안다. 나의 약함이 저들의 용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성경의 공식이었다. 죽여서라도 살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게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그러느니 불구자로 살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다소 극단적인 설명인 것 같지만 실제 주 앞에서는 그것이 영생의 문제다.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45).”
눈으로 보는 일에서는 더더욱 선명하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문제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47).” 그러니 우리더러 세상에서 온전한 자로 살 궁리를 하기보다 차라리 불구자로 살아, 스스로 그 불편함을 가지고 주를 온전히 바라는 게 지혜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럴 수 있는 게 은혜다. 죽어 마땅한데 도려내고 잘라내어서라도 살 수 있는 게 은혜였다.
이를 알면 알수록 베풀 줄도 안다. 이것이 정의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 112:5).” 오늘 말씀을 나는 그리 읽는다. 한데 이를 내가 인위적으로 그리 꾸미고 애써 수고하는 것은 숭배라. 그 자체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세상 것으로 연연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것이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골 2:21-22).” 다행인지 불행한지, 이 땅의 모든 것은 끝이 난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3).” 나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은혜 아래에 뿌리를 박는 것으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6-7).” 다시 되뇌어도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소리로 들린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딛전 4:4).” 아이의 지진한 상태나, 그 부모의 이별과 반목이나, 외조모의 극성이나, 엄마의 지나친 참견이나, 아이 스스로 위로를 구하려 드는 왕따다운 기질이나. 나는 자꾸 아이들에게 이를 언급하게 하고 글로 쓰게 하고 서로 나누어 털어놓게 하여 자신의 일에 좀 무뎌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처럼 아니어서 억울한 점에 대하여는 백날 떠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5).” 내가 먼저 말씀과 기도로 아이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함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바짝 긴장한 탓에 일찍 귀가하여 쉬었다. 말씀 붙들고 힘쓰는 일에 대하여,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내게 두시는 여러 불편함에서 오히려 주의 사랑을 배운다. ‘그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발견한다. 이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
세상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말씀과 기도뿐이다. 곧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 112: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