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깃이시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시편 142:5
무사히 또 안전하게 집에 도착한 후에 안도하였다. 주가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정은 평안하였다. 물론 갑자기 위경련이 일었고 불안이 또 슬픔이 옥죄기도 하였으나 것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다. 저마다 안고 사는 무게의 삶이 있었으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시 142:1).” 나의 소리가 애곡이라. 원통함이라. 힘에 겨워 내 소리를 내어 주께 간구함이다.
여러 장면의 기억 가운데, 해질 무렵 아내는 억척스럽게 자전거를 연습하였고 누구는 이쪽에서 줄넘기를 하고 누구는 저쪽에서 공을 차고, 두런두런 모여서서 또는 옹기종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그 마음의 원통함의 무게는 감사의 무게로 고백되어진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안쓰러움이 되고 동의와 동조가 되어 서로를 두고 주께 기도한다. 큰 아빠, 집사님이 운동하다 눈물이 났대요. 어린것이 눈치 없이 하는 소리에 나의 이해는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그 속이 어떠할지. 나의 어머니의 속이 어떠했을지. 감정은 오버랩 되어 아리다. 살아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저마다 안고 살아야 하는 무게의 고통이 있는 것이겠으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두시는 고통으로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한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고통을 당하는 자도 주 안에서 고통하라. 그리 읽힌다. 이를 괜히 두셨겠나?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려고, 의도하시는 바 주님의 은혜이다. 감히 말하건대 고통도 주의 은혜라.
나는 나의 연약한 육신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누린다. 이는 나를 의롭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4).” 고백하지만 내가 어렵고 힘들지 않다면 어떤 간절함으로 주를 바랄까? 저가 산에 올라 어떤 운동을 하고 눈물을 흘렸는지, 어린 조카아이가 툭 던지는 말로 유추할 때 애통함이라. 저들에게 맡기신 아이로 인하여, ‘저들을 위롭다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구원자 예수는 연약한 자식으로 살아나셨다.
이를 돌보고 위하느라 젊음을 다 소진하고 그 수고와 애씀이 한데 모아져 더욱 주를 바라는 것이었으니. 새삼 나는 나의 부모의 지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곧 은혜의 중재로 연약한 아이를 또 가난을 혹은 육신의 고통을 두시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주가 다 아신다. 아심으로 오히려 더 고통당하신다. 우리를 위한 간구하심이다.
그렇듯 서로를 돌보고 자신을 이겨내며, 견디는 것만으로도 가장 귀한 사역이라. 저마다 막내 동생의 어려움을 두고 그리 권면하였다. 둘만 있을 때 동생은 툴툴거리듯 누군 모르나? 근데 그게 어디 쉬운가?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돼?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그러니 그 또한 견뎌야지. 꽝꽝 못을 박듯 묶어 두시고 그리 행하시는 이의 선하고 인자하심을 안다면 그래서 더욱 견뎌야지.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의 분명한 약속이다.
오늘 말씀은 이를 상기시킨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고통 없는 피흘림이 어디 있겠나? 나는 뒤틀려 앙상한 아이의 손과 발을 만지며 눈을 마주치다 예수를 생각하였다. 저들 부부에게 예수는 저 아이로 오셨다. 종종 나는 나의 가는 다리를 주무르다 이로써 예수가 내게 머무신다고 여긴다. 어쩌면 나의 부모에게 나라는 존재가 그러했듯이, 주의 길 가게 하시는 모든 길목하다 예수의 피흘림은 존재하였다.
누구에게는 자식으로, 누구에게는 가난으로, 그 연약한 자기 육신으로, 어떤 서러움과 원통함으로. 이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사랑이다. 우리의 죄로 인함인데 그런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여전한 중재이시다. 이를 바로 알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그 함께 하심을 몸으로 가슴으로 현실로 안고 사는 자는 복되었다. 잘 견뎌라. 나는 동생이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우리 속에 계시는 이가 아이로 인한 원통한 심정으로 또는 늙음이 가져다주는 남은 생의 어려움으로, 연약한 나의 육신으로 알게 하신다. 때론 두렵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나의 큰 위로다.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6-7).” 이 모든 고통의 의도이었다. 목적이고 최종적인 이유였다. 고통이 없이도 주를 바라고 의지하였으면 좋겠으나,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서 여전히 죄와 상관없이 살 수 없는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고통이 예수시다. 주의 피흘리심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은 자라간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이와 같은 말씀으로 산다.
결국 우리를 향기롭게 하심이다. 장미의 진한 향기가 저의 가시에 찔림인 것처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3).” 주께서 우리를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심이다. 이로써 날마다 나의 옛자아는 죽는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4-15).”
우리는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음이라. 고통이란 주를 더욱 의지하게 한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이다.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 4:4).” 고로 이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주의 도우심이 아니면 내가 무엇으로 견딜까? 그리하여 나는 소리 내어 주께 부르짖는 것이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시 142:1).”
곧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5).” 예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오직 주 안에서만 살 수 있음을. 그러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그러므로 부르짖는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시 142: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