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전봉석 2018. 10. 18. 07:11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무엇으로 세상을 이길까? 어떻게 세상과 맞설까? 나는 서러움이 또는 불안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니라.’ 다른 힘은 없다. 말씀은 나를 일으켜 세워 이를 알려주신다. 아이는 어디 취업이 되었고, 이는 훈련과정이라 하였는데 한 달에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허탈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세 시간씩 매일 나가는 일인데 고작 차비 정도라니!

 

위치를 찾아보고 사진으로 그 건물과 위치를 먼저 살피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 하면 안 돼? 하는 말이 어처구니없게도 내 입에서 먼저 나왔다. 제빵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포장하고 박스에 담아 나르는 일을 하는 것 같은데 훈련은 무슨! 같이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게 모 특수학교였다.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중3 때부터 친분을 갖고 다녔던 곳으로 또래 친구들이 생각났다.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누구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저는 거기 행정실에서 주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어디 신문으로 등단을 하여 시인으로 살고 있었다. 저는 꼽추였고 고아였으며 여전히 혼자라고 하였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그런 일자리를 구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러다 기억나는 이름들 가운데 한 친구를 더 알게 되었다. 내친김에 저에게도 연락을 하였다. 말이 어눌하고 휠체어를 의지하는 여자였다. 근처 지구 구의원도 하고 뇌병변장애인협회 회장으로 있다고 했다.

 

다들 잘 살아내고 있었구나. 얼추 30여 년만의 통화였고, 아이 덕분에 다시 그리 연결이 되었다. 뇌병변장애인협회 회장이라는 친구에게 아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취업훈련이라며 연결된 곳에 대해 물었다.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쳐 어떤 직업군을 연결하게 되는 것으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결혼을 하였고 지근거리에 살고 있었다. 조만간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 하면 안 돼? 하고 물었던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아이는 금세 다 잊고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불안 때문인지 다소 마음이 들떠 혼자 궁싯거리며 책을 뒤적이다가 돌아갔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다 중3 아이가 왔고, 오늘내일 보내야 할 글을 여전히 미완으로 둔 채 어때요? 하고 묻는 걸, 너는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으며 입만 살았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말해버렸다. 그 좋은 사지육신을 갖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니!

 

아이에게 커피를 내주고 바나나를 건네며 뭐라 다독이며 돌려보냈다. 누군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오만상을 구겨대고 자음과 모음을 끌어올려 새는 발음으로 자기 의사를 말해야 하고, 또는 꼽추로 늘 돌아누워 자야하고 허공을 짓이겨 구긴 몸으로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는 돌아서면 까먹고 우왕좌왕 하는 말과 하고자 하는 말이 다른 것이어서 듣는 일이 피로한 것이었다. 그런데 중3 아이가 고작 몇 줄 글을 끼적거리고는 어때요? 하고 묻는데 할 말이 있어야지! 할 말이 없어서 할 말을 그냥 다 해버렸다. 이제 좀 그래도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속상하고 괜히 더 속상했다. 어찌 해야 하나. 마음만 지글거렸다. 그런 와중에 시인이 되어 저는 내가 목사가 될 줄 알았다고 하면서도 술을 못한다는 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이 또한 새로운 연결이어서 무슨 의미일까? 가정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그러했던 한 날의 일을 아내에게 들려주는데 어떤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일어 그냥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꿈을 꾸었는데 어릴 때 그 고아원인지 어느 작업장인지 알 수 없는, 협소하고 기괴한 구조의 어둑한 내부에서 아이는 초조한 듯 서 있었다.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가, 식판에는 보잘것없는 음식이 담겨 있었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가 원장 아버지인가 다 늙은 나 자신인가 저를 의식하다 깨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앉았을 때의 위로라니!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가 오늘을 내게 두셨다. 이와 같은 상황과 형편을 거느리게 하셨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그리하여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그리고 그 날을 우리 앞에 펼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8).” 누군 고아로, 누군 꼽추로, 누군 뇌병변장애인으로, 누군 온전한 육신으로. 이를 정복하라. 다스리라. 번성하여 충만하라.

 

그렇게 우리는 다시 창세기를 읽기 시작하였다. 나의 기도는 간절하였고 금세라도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머뭇거렸다. 우리를 창조하신 이가 우리의 모든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신다.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고, 누가 누구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들의 판단이라. 하나님은 최고의 창조였듯이 최고의 조성을 이루신다. 우리의 승리는 믿음으로다. 이는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 1:2).”

 

오늘로 우리의 생이 전부라면 누군 분명히 억울한 것이고 누군 분명히 원통한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는 일보다 불쌍하고 원통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어쩌면 아이 일에 너무 개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안에 두시는 이와 같은 불편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렇게 새삼 누구들을 떠올리고, 어쩌다 다시 저들과 연결이 된 것이었으니, 하나님은 무엇을 하려 하시는 것일까?

 

천사들도 부러워하며 놀라는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먼저는 묵상이다. 상고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살핀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12).”

 

그러므로 성경은 간단히 말씀하신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두려워할 줄 아는 게 복이라. 어떤 속상함이 또는 불안이 나로 하여금 주를 바라게 하고 더욱 주의 뜻을 살펴 그 섭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는 서로 상반된 것 같은데 하나였다. 그렇듯 자기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으신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신 데는, 섭리다.

 

하나님이 이뤄 가시는 일에 대하여, 가장 기본 명제는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가졌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과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극명해진다.

 

그것으로 우린 승리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말씀은 늘 나를 붙드신다.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5).” 다른 무엇으로 위로를 삼고 새 힘을 얻을까?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10).” 둘 중 하나다. 나로 여기에 두신 이가 내 곁에 저들을 두셨다.

 

그러므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11).” 저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그 가운데 충만해야 하는 명령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간단하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내가 저 아이를 또는 새삼스럽게 저이들을 어찌 마주해야 하는 것인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14).” 주께 바라고 구하는 것. 내가 돌보고 다스리고 충만해야 하는 것은 사람을 보고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이상과 꿈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15).” 내가 이제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19-21).” 내가 뭘 하려 하지 말자. 하나님이 이끄시는 데 집중하자. 행여 나의 수고가 애씀이 우상이 될 수 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워지기 쉬운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