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권능의 날에

전봉석 2019. 1. 24. 07:17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출애굽기 23:22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 그래서 감사를 배우고 누군 그래서 더욱 완고해지는 마음으로 돌아선다. 우리는 주를 바라고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와 같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5).” 그 합당하심에 대하여 좀 더 묵상하였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우리를 구원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주님은 고통을 통하여 온전하여지심이 합당하였다. 이로써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셨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땅에 쏟아진 물처럼 쓸모없는 자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방책을 세우셨던 것이다. 곧 스스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는 일. 곧 사람의 죄의 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합당하심을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 모든 걸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보면 늘 그 일이 적당하여서, 우리는 가난 중에도 주의 넉넉한 돌보심을 맛보는 것이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그럼에 모든 게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때론 그 때를 알 수 없어 조급해하고 망설이다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8).”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이시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우리는 그 때를 알려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열심을 다하며 사는 게 아니었다. 그 때와 시기는 알 수 없다 해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삶에 대하여 신뢰하고 의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는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 89:47).” 그 기한이 허무할 정도로 짧다.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곧 우리 안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으로 오늘에 연연해하지 않고 당장 처한 현실에도 의연하게 하심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무엇이 더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좋을 대로 한 가지만 붙들 뿐이다.

 

올해는 사도행전을 깊이 다루고 싶어졌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를 구입하는데 그 값이 너무 비싸서 낱권으로 한 권씩, 한 달씩 텍스트로 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전에 같으면 조급했을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풍성하여졌다. 연말과 연초에 전도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붙든 것은 잘한 일이다. 남들이 기를 쓰고 사는 데 따른 소모적인 열심을 경계하게 되었다. 다들 참 사는 데 드는 부대비용이 너무 과하다. 조금만 여유를 떨어도 그게 다 돈이다.

 

돈이 있어 여유로운 삶보다 돈이 없어 쪼들리는 삶이 훨씬 더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핸드폰 케이스가 낡고 싫증나서 새로운 걸 찾았더니, 맘에 드는 게 훌쩍 2만 5천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 돈이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서 1집 <진정한 기독교> 한 권을 살 수 있었다. 그 한 권이면 족히 한 달은 넉넉하게 빠져들어 말씀의 풍성함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풍족할 땐 모르지만 어려울 땐 오히려 더 귀한 것을 아는 것이다. 사는 데 따른 비용은 어차피 든다. 그래서 무엇에 쓸 것인지는 중요하다.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이가 공장에 취직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얽매여 일에 치우쳐야 하는 것에 우려한다. 안 믿는 형(?)과 자주 어울리며 노래방을 가고 식사를 하고 그렇게 아이 표현대로 소통(?)하는 것이 마음이 쓰인다. 어찌 아이엄마에게 그런 당부를 좀 해야 하나, 혼자 생각하다 내가 더 나설 일은 아닐 거라 여겨졌다. 퇴근 때마다 하루는 어땠는지, 듣고 위로할 때면 그렇듯 마음이 쓰이는 일에 대해서도! 문득 내가 하는 일이 아니겠구나, 생각하였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0-31).”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속한 우리의 본성이었다. 늘 끊임없이 이는 욕구를 위해 그 값을 물며 사느라, 돈돈거리며 돈의 노예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보면 다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게 결국은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의 부대비용이다.

 

족한 줄 모르고 다오 다오 하는 거머리의 두 딸과 같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잠 30:15).” 형편에 족한 줄 알고 사는 게 복인 것이다. 혼자 두심은 그에 따른 가장 선하신 일이겠다. 나름 독서 계획을 세우듯 사도행전을 읽으며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여서, 마침 로이드 존스 목사의 강해를 만나게 하시고. 보니 내 책장에 꽤 많은 부분이 저의 책이었고 나의 스승이었다.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는 묻는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9-10).” 그러니 그 노고가 유용한 것이려면,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오늘 아침 이 한 구절의 말씀이 바른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다.

 

곧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시 56:9).”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내가 싸워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경로이다. 내 원수를, 나를 대적하는 이를 내가 상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그의 말씀에 청종하고 그의 말씀을 붙들 뿐이다. 그러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118:6).” 이와 같이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특히 오전에는 여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급적 그 묵상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로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이는 곧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알 바 아닌 것에 붙들려 씨름하며 사는지 모른다. 저 병이 누구 때문인지, 그 아비의 죄 때문인지 저 자신의 죄 때문인지. 그 문제가 어떤 이유인지.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고 일일이 상대해야 하는지. ‘알 바 아니요.’ 다만 그 권한이 아버지께 있음을.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전 6:2).” 가장 귀한 시간은 ‘지금’이다. 말하고 있는 바로 이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결국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라.

 

고로 성경은 약속하신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보면 뭐든 안 그렇겠나? 그래서 지금 내가 입만 열면 말하는 게 나의 영성이고, 지금 붙들고 애쓰는 일이 가장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며, 지금 바라보고 있는 곳이 영원한 나라의 초입이다. 다들 그 직업에 붙들려 사용하는 용어도 생각하는 수순도 일 처리하는 과정도 드러나는 것처럼, 그러할 때 주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네 발에 신을 벗으라.

 

결국 주께서 우리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그러므로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것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지금 내게 두시는 먹고 마시고 수고하며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한 발이 어려우면 남은 한 발로 딛고 서면 된다. 있으면 있는 것에 족하고 없으면 없는 것으로 누리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이게 복이었구나!

 

이를 알게 하시려고 오늘도 부지런히 일하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이 모두를 묵상하다보면 ‘합당하리라.’ 하신 말씀이 옳고 또 옳았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7).” 이를 확신함이여.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110: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