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응답하셨도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애굽기 35:3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편 120:1
미술관에 들렀다. 극사실주의 인물화가 눈에 띄었다. 깊이 팬 노인들의 주름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화백의 고향이 속초라 했다. 그물과 모래사장과 넘실대는 파도의 형상과 눈에 찍힌 자동차 발자국과 ‘동해인’들의 그을린 얼굴에 깊이 박힌 주름이 일관되게 흔적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흔적, 바람의 흔적, 햇살과 그늘의 흔적. 그 무게들.
가족들과 12시 예약 전에 서둘러 들른 보람이 있었다. 모든 흔적에는 그 무게만큼의 서러움이 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마다 말을 하듯 할 말을 잇지 못한 이야기들은 주름이 져 흔적을 남긴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반가움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거나 말 하면서 더는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는 서러움이 되어 주름진다. 하필이면 먼저 나오면서 아내와 딸애에게 짜증스런 말투로 서러움을 토로했었다. 말하지 못하면서 알아달라는 소리는 모순처럼 엉긴다.
엉기고 엉긴 속은 담은 이야기가 주름으로 진다. 산과 산 사이, 주름이 짙은 시골길을 달리며 그리 생각하였다. 사람의 늙음은 오묘하여서 주름진 얼굴이 참 많은 말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말로 하지 못한 말들은 서러움으로 그 흔적을 더하고 포개어 혼자서 겹쳐 주름이 진다. 늙으신 부모님의 얼굴에 진 주름도 그러하고 어느덧 형제들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짙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주름진 것들을 흠모하였다. 어려서부터 늙었던 나의 조모의 얼굴이 그래서 지금도 종종 그리운 것이다. 어린아이라고 주름이 없겠나. 나는 유난히 짙은 한 아이의 주름진 얼굴과 팔과 다리와 목을 사랑한다. 모든 주름은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이제 십 킬로그램을 넘겨 얼굴에 살이 오르고 팔과 다리의 주름이 펴져 아이 부모는 감사히 웃고 있었지만 저들 얼굴에도 어느새 주름이 짙어진 것을 보았다. 모든 주름은 주를 향한 것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시 120:1).”
성전에 올라가는 첫 노래의 첫 음절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비로소 그럴 수 있는, 주름진 얼굴을 펴도 되는 상상을 한다. 남들에겐 차마 가족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던 말들의 외침이 느껴진다.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팽팽하고 매끄러운 햇살이 듣던 미술관 커피숍 창가 자리를 연상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햇살을 향해 얼굴을 들었을 때 어둠 속으로 환하던 빛줄기를 말이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2).”
비로소 나의 숨김과 감춤과 괜찮은 척 태연하게 굴었던 얼굴을 들었다. 팽팽하게 펴지는 얼굴로 하늘을 바라본다. 저만치 골 깊은 산자락에는 흰 눈이 그대로다. 짙은 그늘과 환한 햇살 사이에서, 나의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그동안 나에게 맡겨두셨던 생명을 느낀다. 느낌으로 애석하고 애석할수록 서러워,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아뢴다.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3-4).“
주를 향한 마음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얼음물 같다. 차갑고 따갑고 깊이 찌른다. 그 힘이 장사다. 아니 붙 붙은 로뎀 나무 숯불 같다. 복받쳐 흐느껴도 좋을, 어느새 출렁거리며 숱한 주름이 요동치는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속이고 다른 말을 일삼으며 살았던가. 아, 나의 고단하였던 ‘속이는 혀여!’ 서로의 가벼운 안부와 적당한 대답과 보이는 것으로 족하다 여겼던, 네게 무엇을 더할꼬!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5).”
켜켜이 그 어둠은 짙어 정작 속엣 이야기는 자신도 자신을 속일 정도이다. 형체를 알 수 없고 그리 머물던 ‘게달의 장막’이 울부짖음으로 목울대를 출렁거리게 한다. 그런 나를 어찌도 사랑하시는 이,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 1:5).” 되레 나의 부르짖음을 그리 여겨주시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2).” 짙은 나의 주름이 그 어둠의 깊이만큼 서럽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6).”
서로의 친밀함은 묘연한 것이어서 드러내어 화해를 도모할 수 없다. 적당히 친절한 거리에서 그만큼의 틈새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바랄 뿐이다. 행여 화평을 구하면 내 속에서 먼저 이는 분쟁이었으니,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익숙한 것이 외면을 일삼고 잘 안다고 여기는 마음이 속단을 서슴지 않았다. 내가 나의 위선과 너무 친밀하였던가. 참된 정직을 미워하는 자가 되었구나.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7).”
참다못해 용기를 내어 말을 하려니까 되레 응어리진 마음은 내 말에 내가 먼저 으르렁거린다. 가소롭고 유치하기만 한 것 같다. 괜한 소릴 했다. 알아달라고 하였는 말이 구차하고 빈궁한 소리가 되어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화해할 수 없는 이편과 저편이 주름이다. 화평을 원할지라도 너무 멀다. 누구에게 할 수 없는 말이 말이 되지 못하여서 주름이 진다. 그리하여,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1).”
응답은 단순한 메아리가 아니고 또는 막연한 이해나 동조가 아니고, 나로 하여금 마음껏 부르짖게 하시는 경청이다. 목 놓아 외칠 수 있는 널찍하고 평평함이다. 주님! 하고 한껏 부르짖을 수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의 첫 음정은 서러움이었다. 엄마! 하고 그간 말도 못하고 억눌렸던 마음을 비로소 무장해제하고 달려든 아이의 속수무책 같은 부르짖음이다. 이에 ‘내게 응답하셨도다.’
모두가 아직 잠든 시각. 조용조용 자판을 치며 그 한 자 한 자에 주께 부르짖음이 담겨지는 부르짖음을 나는 사랑한다. 고로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출 35:31).” 그 모든 일의 최종적인 목적은 주의 성전을 향한 것이고 그 의미는 비로소 화평이었다.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길이었으나 오히려 그 주름 주름마다 주께 아뢰고 고할 말들이 곱게 접혀져 있었다.
연애하는 글처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아 1:7).” 비로소 얼굴을 들고 주를 마주하였을 때,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하시는 거였다. 곧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3).”
내 비록 주름진 얼굴이나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4:7).” 하시는 것이어서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16).” 그리하여 짙은 그늘의 곁에는 그만큼 밝은 빛이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바람아 불어서 이 향기를 날리라.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5:2).” 주의 사랑이 나를 찾으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