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눈을 밝히소서

전봉석 2019. 3. 20. 06:58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수기 11:4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시편 13:3-4

 

 

거듭나야 하겠다, 하신 말씀의 의미가 새삼 귀하고 복되게 여겨지는 하루였다. 내 안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을 나는 감당하지 못한다. 아무 때고 불쑥 고개를 내미는 음욕과 탐욕과 비난과 원망의 목소리가 여전하여서, 주께 고하기를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11:14).” 하고 엎드리는 일. 거듭남은 단회적이겠으나 연속적인 것이기도 하겠다.

 

곧 주 앞으로부터 이를 날,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3:19).” 곧 우리가 돌이켜 날마다 회개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죄사함으로 새롭게 되는 날이 주께로부터 이르는 것이다. 유쾌하게 되는 날, 곧 앉은뱅이가 걸었고 뛰었고 찬양하는.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

 

이는 결코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 내 안에 이는 온갖 염려와 근심과 불평과 거짓됨을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 아뢰는 것. 곧 사무엘 이후 모든 선지자들이 이때를 가리킴이니(24), 우리가 할 일은 다만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하심이어서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을 사는 것이다. 이 날은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대하여는 내가 날 봐도 그렇고, 다 저녁에 아이가 전화를 하였다. 약간 격앙된 목소리여서 술을 한 잔 한듯하였다. 다시 핸드폰을 개통하였고, 직장을 얻어 다니게 된지 2주가 되었으며, 약을 더 먹고서라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나름 자랑스럽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오후께 집으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늘어져 계속 집에 있는가 하여 며칠 전에는 오전 중에 했는데도 통화를 하지 못했다.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주께 아뢰었더니.

 

녀석은 주정을 하듯 곧 찾아뵙겠다느니 이젠 지하철을 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일요일에 가겠다느니, 한참 너스레를 떨었다. 앞서 다른 아이와 길게 통화를 한 뒤였다. 작업실을 얻어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고, 올 겨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이런저런 아이의 안부를 들으며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내가 끊겠다고 끊어지는 관계가 아닌 것도 있나보다. 들은 체도 않고 꼼짝도 안 하는 것에 더는 나도 모르겠다, 하고 내버려두었던 마음인데.

 

이렇듯 이어지고 다시 연결되는 사이에 대하여, 내 안에 두시는 어떤 염려 또는 마음쓰임이 결코 공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론 근심을 의도적으로 놓아두신다. 그것은 이때를 위함이니, 우리에게 두시고자 하는 유쾌한 날을 위한 것이었다. 먼저는 나 자신이 그리고 저 아이들에게 전하여 줄, ‘회개하고 돌이켜거듭나야 하겠다하시는 말씀 앞에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

 

새롭게 되는 날, 반드시 그리하시기 위하여 오늘의 이 모든 군더더기까지도 놓아두시는 하나님이시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30).” 이는 주가 하실 것이다. 내가 가려서 받는 일도 아니고 나서서 주목하여 뽑아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오늘 말씀은 이를 상기시킨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11:4).” 어찌 저럴까싶었더니, 우리 안에 섞여 사는 인종이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만성피로 같다. 그런 우리에게 처방은 단 하나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어쩌면 너무 쉬워서 들은 체도 않는 것일지도. 거저라는 게 현대인으로 사는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아서.

 

나는 아이들과 통화를 하며 언제 그와 같은 말을 건넬까 하다 듣기만 하였다. 일상이 되어버린 서로 다른 삶에 대하여는 놓아두기로 하였다. 내 안에 저 안에 가라지도 함께 자라나는 것이어서, 돌이키실 이가 불러 세우실 것을 믿는다. 다만 어제는 내게 두시는 한 가지 마음,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 저 아이들이 다시 붙듯 이끌려 연결이 되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주께 아뢰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저들도 내가 누군지 안다! 결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오전께 옆 사무실이 새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어 컴퓨터 연결이나 와이파이 등을 알려주고 차 한 잔을 대접하였다. 우선은 우리 딸애와 동갑이었다. 아버지가 하는 인테리어 사무실인데 경리로 일을 보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인가, 둘러보며 궁금해 하여 이런저런 말들로 이어졌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기독교 학교로 다녔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늘 일하신다.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버려두듯 포기하고 있던 아이들과의 새로운 연결과 새삼 다시 마음을 쓰게 하시는 일에까지. 우리의 혼돈은 그 위에 하나님이 계셔야 질서 있게 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 이는 곧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4:16).”

 

그게 나였고 나야말로 누구보다 고약하였다는 것을 감출 길 없다. 내가 어느 아이를 한심하게 여겨 혀를 끌끌 차다가도 내가 먼저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였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에 한 아기가 나셨고,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때가 차매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4:4).” 그리고 성령이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2).” 나는 가만히 있어 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 뿐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4:10).”

 

그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소망의 숨결이고 하나님의 바람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이를 분명히 알 때 비로소 나는 주께 아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13:3-4).”

 

그리하여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11:17).” 이를 나 혼자 담당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23).” 다만 나는 말씀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아이를 생각하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가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75:1).”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이제는 마음을 접고 더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외면하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늘 생인손처럼 아팠던 두 아이가 한 날에 연락을 주어 이런저런 근황을 알려주었던, '유쾌한 날'이었다.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13:2).”

 

이로써 주께 고함이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11:14).” 그리하여 회개하고 돌이켜, ‘유쾌한 날에 이르러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5).”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