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전봉석 2019. 3. 28. 07:08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민수기 19:15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편 21:13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가 자신을 웃어넘길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 읽기 시작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한나의 아이>에서 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한 말 중 맨 끝 부분에 있는 구절이다. 밑줄을 긋고 한참을 머물며 생각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마치 90세 된 할머니 사라의 웃음처럼, 어이없고 한심하기까지 한 상황에서 그 상황의 심각함에 매몰되지 않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8:12).” 성경은 저의 웃음을 나무라기보다 증명한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4).” 그렇듯 우리의 웃음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현실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않는 것이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7:16-17).” 나는 지혜자의 말을 같은 맥락으로 읽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기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했더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충분히 가능하였다. 우리는 다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이는 야고보 사도의 설명으로도 충분하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5:13).” 왜냐하면 우리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3:17-18).” 이와 같이 어떤 책의 한 구절이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였을 뿐인데, 아침마다 내게 말씀이 말씀으로 이끄시는 데 놀란다. 하우어워스는 신학자로 일흔 살 때 저의 회고록을 썼다.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하고 오후께 잠시 새로 온 그의 책을 들추었을 뿐이다.

 

무작위로 읽는 나의 독서법이라 어쩌다 그의 책이 내 손에까지 오게 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책으로, 사물로, 어떤 상황으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뚜렷하게 느낀다. 앞으로 저의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상황과 사물과 심지어 책들은 예사로운 게 없다. 하나님의 의도가 감지된다. 그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의중은 짐작이 간다. 즉 우리에게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더불어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이다.

 

오늘의 나는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행동반경 가운데서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 이를 또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사이비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러니까 우린 단속할 뿐이다. 삼가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19:15).”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들어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놀랍게도 이는 나 자신이 그 증거다. 하등에 쓸모가 없는 사람인데 이처럼 세워 누구를 위하고 더해 기도할 수 있게 하시고!

 

종종 나는 오늘의 내가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무슨 일을 말하여 어찌할꼬! 하며 고민에 빠졌을 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해줄 수 있다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8).” 이를 확신하는 것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저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나이를 의식하였고, 나도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드러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 몰래 숨었다.

 

곧 오늘 내게 두시는 모든 것이 정결한 까닭은 나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능력이요 지혜이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도 다른 방도가 없으셨던 것이다. 자신이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죽어주시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게 우리의 죄였던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난 뒤에 어찌할꼬! 하여 대책을 마련하신 게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신 때부터 그리 계획하신 지혜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시려면, 성령으로 낳은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아들들로 삼으시는 길밖에!

 

우리가 어찌 주의 능력을 다 알 수 있을까? 저의 지혜를 어찌 감당이나 할까?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벌어지는 어떤 상황도 그렇듯 그리 심각할 게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퇴근도 확인했고, 아내도 수업을 마쳤다고 하여 그만 들어가려고 일어서는데 아들애가 전화를 하였다. 전날에 좀 아팠다니까 염려가 돼서 그랬던가보다. 이어서 이런저런 얘길 잠깐하다가 이번 주만 벌써 네 명의 교포가 죽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자살이고 셋은 수사 중이라고 했다.

 

그럴 때면 가족들이 시신수습을 위해 필리핀으로 가고 이를 처리하는 게 아들의 일이라, 좀 정신이 없고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답답해도 행정처리와 함께 유족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게 업무 중 하나였던 것이다. 목소리에 힘이 없어 안타깝긴 하였으나, 그럴 때 마침 내가 무얼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큰 힘이 된다. 해줄 말이 뚜렷한 것이다. 저들을 불쌍히 여기되 감정적으로 휘둘리지는 말고 그래서 더욱 주를 의지하자고 말해주었다.

 

젊음이란 쓸데없이 앞날에 대해 생각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찌 인도하셨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마침 가정예배 때 읽은  성경구절도 그러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29:5-6).” 돌아보니 은혜였다.

 

일련의 상황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로 어떻게 행하게 하시는가를 돌아보면 모두 은혜뿐이었다. 이를 말해주며 이를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복된 것을 강조하였다. 가장 불행한 인생은,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3-4).”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다만 우리에 대하여는 감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21:13).” 찬송이란 자랑하는 것이다.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에 어찌 함께 운행하셨는가를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부정을 멀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가벼이 여길 때 영락없다.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19:15).” 날마다 문을 단속하듯 우리의 영혼도 단속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모든 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곧 훗날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8:5).” 가까운 날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65:25).” 우리는 오늘을 돌아보며 은혜였다고, 모든 게 은혜뿐이었다고 찬송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21:5-6).” 이에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