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민수기 29:1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시편 31:23
푯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 이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 결국 내 안에 두시는 어떤 마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삶이란 오롯이 주님만 바라는 거였다.
이는 내가 생각해낸 게 아니다. 오랜 묵상과 기도로 얻어진 경지의 것도 아니다. 그리 두시는, 예수께 잡힌 바 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분명한 의지는 주의 것이다. 누구의 주장도 어떤 권위 있는 자의 간증이나 학식을 빌어 그리 생각한 게 아니다. 독서광이었던 존 웨슬리가 훗날에 ‘나는 책 한 권만 읽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 것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아이가 피부과에 들러 시술하고 어쩌고 하느라 성경공부를 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애를 불러 같이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서 딸애의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영화는 무슨 공포물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중간에 나와 밖에서 책을 읽었다. 같이 돌아와 아이 옷장을 조립하였다. 셋이 낑낑거리며 매달려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완성하였다. 덕분에 말도 붙이고 같이 힘을 쓰긴 했지만 마음은 어려웠다.
한 번 그리 정했으면 흔들리지 마. 아내는 핀잔을 하듯 그리 말하며 애쓴다고 나를 토닥거렸다. 자식이 몇 살이 되었든 여전히 아이라. 나는 본래 욱, 해놓고는 유야무야 흐리멍덩해지는 사람이라 강단이 없다. 뒷심도 없다. 부르르 끓고는 안쓰러워 너 좋을 대로 해, 하는 식이다. 그러고 보니 늘 그러했던 것 같다. 지랄을 떨었다가 비위를 맞추느라 쩔쩔매며 눈치를 살피는 식이라. 한 번 아닌 건 아니어야 하는데, 그리 힘들 거면 뭐든 어떻겠나싶어 흐물거리는 것이다. 나야말로 마음이 좋지 않아 자꾸 아팠다.
오늘 아침 이 말씀에서 나는 어떤 표준, 그리 행함으로 담겨야 하는 정신을 묵상한다.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민 29:1).” 그런 행위가 우리의 의식을 주도하게 하라. 곧 우리의 마음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가. 이를 받쳐주는 말씀으로,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 31:24).”
그러니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민 29:7).” 다시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이레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12).” 이를 지킨다는 것. 혼자 들레는 마음을 어찌 붙들겠나! 나는 도대체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 것이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생각과 입의 간격이 멀다. 이와 같이 말씀이 있을 때, 때론 그리 행하여지는 행위로 마음도 생각도 순해진다.
이는 어떤 권위 있는 자의 주장이나 생각을 따르는 게 아니다. 플라톤이 말하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하는 식의 입장이 아닌 것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우리의 근거는 허다한 무리가 이 증거를 가지고 이 길을 갔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나 역시 오늘에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도권은 성령께 있었다. 내게 두시는 마음을 그리 여겼다. 더불어 지혜와 인내를 더하시기를 위해 기도하였다. 누구를 위하고 바라는 마음이 어찌 윽박지르고 야단친다고 될 일인가.
자식 때문에, 아내 때문에, 사랑하는 누구로 인해 우리가 행복한 게 아니다. 이런 게 즐거움이지 뭐 있겠어? 하는 따위의 말은 겸허함을 상실하게 한다. 문득 드는 마음이 어쨌든 자식과 나도 여기서의 일이라. 부부의 고마움으로 구원을 이루는 게 아니듯이 천륜이든 인륜이든 우리의 만남은 여기서의 일일 뿐이다. 곧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바라는 일은 그것으로 영원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막연하고 아득하여 어찌 가늠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서 가족 간에 서로의 소중함으로 이를 맛보아 아는 정도인 것이다.
먼 길을 걸어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목까지 부었다. 땅만 보고 걸으며 나는 생각하였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때론 모질게 또는 야박하게 굴어야 할 일도 있는 것이다. 내 앞을 지나던 개가 연신 킁킁거리며 전신주나 가로수에 오줌을 지렸다. 개똥은 회수해 가야 하지만 오줌은 처벌 방법이 없어 싸는 것이나 보는 이나 속수무책이다. 동물들은 자기 똥과 오줌 냄새에서 안정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저리 오가는 길마다 오줌을 지리는가.
분절되는 생각은 엉뚱한 데 한눈을 팔다 분산되었다. 딸의 마음도 그럴 것을 믿는다. 지금이야 자꾸 눈물이 나고 서럽고 그럴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서 우리는 단련된다. 나는 어금니를 꾹 깨물며 그리 생각하였다. 또 흐물흐물 유야무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게 좋은 게 인생이 아니다. 오히려 아닌 건 아닌 게 인생이다. 나는 오늘 말씀, 절기를 두고 그 날에 행위를 규정하고 그리 엄수하게 하시는 말씀을 그리 읽는다. 우린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웨슬리가 스스로 성경 하나면 족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우리의 안도와 안정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에서 위로를 얻곤 하는지! 이에 ‘~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나는 이 결연함을 사랑한다. 아니하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굳이 교회가 아니어도, 말씀이 필요치 않고, 믿음 없이도 살 수 있는 나라에서, 더 좋고 즐거운 게 넘쳐나는 여기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영화관 로비에 앉아 그리 생각하였다. 한편엔 오락실에, 커피나 음료를 파는 안락한 의자가 있는, 서로 낄낄 깔깔 즐거워야 하는 게 마땅한 것 같은 공간에서 나는 어리둥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아침 문득 와 닿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무엇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니!
그렇구나. 작정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그러려니 흐리멍덩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다 어른이 아니고, 어쩌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 1:3).” 이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저 막연한 게 아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4).” 아!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 것들이 있었구나. 이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로 빠지게 되는 수도 있다.
부디 주께서 나의 마음을 강하게 붙드시기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 31:24).” 말씀 앞에 오래 머문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23).”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1).” 하여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2).”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