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전봉석 2019. 4. 28. 06:50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신명기 14:2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편 52:8

 

 

우리 안에 내재된 슬픔은 무서운 것이다. 그 상처의 대부분이 실은 부모로부터 온다는 데 놀랍다. 어릴 적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고 섬긴다고 하지만 서로는 그만큼만 다가갈 수 있는 보폭으로 선다. 아이가 토요일 근무를 끝내고 공장에서 마카롱을 한 봉지 가져왔다. 본래 출근하여 이번 토요일은 안 오기로 하였는데 그새 까먹은 모양이었다.

 

점심을 시키고 그 사이 형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게 하였다. 늘 그 마음에는 부러움과 고마움과 서운함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또 글의 여백을 통해 다하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을 짐작하였다. 내가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의 요구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6:18).”

 

우리의 성도됨은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겠나. 생물학적인 가족 그 이상의 한 형제자매가 됐다는 것인데, 이로써 우린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산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아이를 만나기까지 4년은 족히 걸렸다. 그리고 만난 지 1년이 되었다. 아이 형에 대해서도 길게 보며 간다. 나 혼자 생각하였다. 언젠가 주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는 저를 화두에 두고 안부를 묻고 생각하며 또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따라 이어질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통치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주기도는 우리의 헛된 바람과 소망을 다루신다. 괜한 조급함도 잠잠하게 하신다. 나의 나라와 나의 권세와 나의 영광이 전복되는 것이다. 이로써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곧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것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십사.

 

아이가 형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렸다. 스스로 연약하여 장애가 있다고 여기는 아이의 열패감은 암암리에 이를 감당해야 하는 형이라는 존재의 열등감을 돌아보고 있었다. 서로 위하나 그 방식을 알지 못하였고, 그래서 형이 교회를 나왔으면 하면서도 자신이 짐이 될까하여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나의 형제들에게 나란 존재는 어떠했을까?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나는 쓸데없는 공상에 젖기도 하였다. 일부러 신경 쓰지 말라고 둬요. 큰애만큼은 동생 때문에 그 인생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아이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7:37-38).” 우리는 너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주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하시기를 구하는 삶이란, 나에게 두신 오늘 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말로써 설명이 되고 설득한다고 될 일이기나 하겠나?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하는 일이었고, 내 안에 계신 이가 나를 지배함으로써 충분히 고백되어질 마지막 기도였다. 주의 나라가 영원하시기를. 주의 권세가 영원하시기를. 주의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하시기를. 그러기 위해 나는 경작되어 다스려져,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11:19).”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지를 부드럽게 하실 때까지.

 

아이가 형에 대해 쓴 내용은 짧았고, 스스로 할 말이 없다고 하였으나 여러 말을 함축하고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아이의 글을 읽는다. 주로 아이는 자기가 쓴 원고를 듣는다. 어느새 내가 듣는지 아이가 듣는지, 우리 안에 스미는 어떤 감정이 있었으니 서러움 같기도 하고 부러움 같기도 하고, 미안함 같기도 하고 고마움 같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나도 내가 어릴 적에 나의 누이와 두 동생이 나로 인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른 것이었으니. 나로서는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고 있었다. 부모의 영향력이 형제들로 인하여 희석되고 분해되어 좋은 영향으로 남았다. 문득 내 딸아이의 퉁명스런 말투에서 어떤 서운함보다 이 애가 또 나로 인해 이고 지는 무게를 생각하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싫든 좋든 부모의 영향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정말 그럴까싶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처와 반목과 불신의 갈등은 고스란히 사회 문제가 되어 나타나곤 한다. 폭력이나 성추행이 가장 대표적이다. 무시와 무언의 압력과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사랑의 갈급함에 있어서는, 글방으로 오는 아이들을 보면 이제 어림짐작 말을 안 해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괜한 증상은 없다.

 

내게 주시는 위로가 말씀이어서 다행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그 모든 우리의 고통을 주가 짊어지셨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주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게 무언가 했더니, 내가 아이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것이겠다.

 

마카롱을 봉지에 들고 들뜬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올 때의 반가움에 대하여, 어렴풋이 주님의 기쁨이 어떠하실까 짐작할 수 있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14:2).” 나는 오늘 말씀을 그리 읽는다. 왜 우리는 그런 걸 먹지 말아야 하고 어찌 살아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전에는 간섭으로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사랑과 희생이었음을 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이의 그 엄청난 무게를 가늠할 길 없다. 큰애만이라도 동생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요.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롯이 나만 그 부담을 짊어지고 싶어요. 아이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나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가늠하였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사랑이다. 그러므로 본을 보이시며,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8:54).” 그러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5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