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전봉석 2019. 5. 18. 07:23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시편 72:17

 

 

은혜란 호의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의다.’ 모세가 죽었다. 저의 세월은 파란만장하였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34:7).” 이 간단한 한 문장의 서술로 저의 생을 규정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죽을 때도 저의 눈은 흐리지 않았고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이처럼 복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눈이 흐리지 않았다.’ 사리분별이 명확하였고 죽음까지도 주의 손길이심을 제 눈으로 보았다. 또한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제 몸을 의탁하여 골골하다 눈을 감지 않았다. 은혜란 주어지는 것이지 가져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 모든 게 주의 은혜인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눈과 기력이 참으로 귀한 것이다. 아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하였다. 힘에 겨워 분을 내고, 분에 겨워 혈기를 부리는 것이 어찌 사람의 본성이지 않겠나?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라.’ 이를 항상 삶의 바탕으로 깔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새로 산 옷을 찢어버리게 하고 그 속은 오죽하였을까! 전날에는 말을 않더니 엄마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이가 말하면서 반성하였다. 아이의 글을 같이 읽으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다. 나의 반성과 후회로 고쳐질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삼상 26:21).” 나는 아이에게 이를 어찌 설명할 길이 없어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나 또한 가장 두려운 것이 나의 혈기가 아닌가. 고통 중에 일그러져 하나님을 외면하다 죽을까 두렵다. 누가 그런 소릴 했다. 내가 이대로 10년 후에도 이러고 있다면 아들에게 짐에 될까 두려워요. 그러면서도 우린 우리 스스로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 혈기다. 공교롭게도 그 기운으로 오늘의 자신을 지탱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다.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피와 기운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혈액과 기식(氣息)을 이른다. 이를 다하면 죽는다.

 

모세는 죽을 때 쇠하지 않았다.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죽음마저도 순종으로 받들었다. 성경은 저에 대한 서술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34:10-12).”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저의 생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었다. 하나님이 저를 대면하셨고, 보내셨고, 행하게 하셨다. 이후에는 모세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우리 삶을 규정해주는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일까?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12:25).” 살면서 사는 날 동안 주의 진동을 삶 가운데 느끼며 두려워 떨 줄 아는 게 은혜이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26).”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은 우리로 두려워 떨 줄 아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일이다. 일련의 사회 사건마다 지혜가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귀하였다. 그저 이를 농담으로나 듣고 마는 롯의 사위 같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까지, 노아의 홍수의 때처럼 비가 오고 창수가 터지기까지, ‘설마하는 우리의 안일함과 태평함과 무관심과 자기만족에 대한 경고다. 저는 죽을 때도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분별의 영이 성령이시라. 이런저런 나의 사정과 아이의 사정과 내 주변의 누구 이야기와 어떤 사연 사연마다에서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는 것이 은혜였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오늘 내게 두시는 육신의 연약함도 아이의 안타까운 모습과 그 어미의 미어지는 마음과 늘 일에 치여 사는 누구와 저들 나름의 안정감에 대하여 성경은 경고하신다. 우리를 흔드신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 죽어도 눈이 흐려지지 않기를. 볼 걸 보고 들을 걸 들을 수 있는 기력이 쇠하여지지 않기를. 올곧이 죽음까지도 주가 주도하심으로, 이를 바로 알고 증거하는 생이 되기를.

 

우리 부모의 남은 생이 그러하기를. 나에게 허락하신 한 생의 삶이 그러했음을. 자식들의 모든 생이 그러하기를. 그러하여서 눈이 보고 귀가 듣고 기력이 당당하여,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12:27).” 우리가 거듭나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이가 그리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28).” 경건과 의연의 차이는 하나님을 바로 보는 시선에 달렸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29).” 이는 두려워 떨 줄 아는 것이 복된 것이다. 흔들어 진동하시는 이의 손길을 느낄 줄 아는 게 은혜였다.

 

좀 웃기는 소리 같지만 나는 실제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의 질병으로 인해 경고를 느꼈다. 저는 늘 건강을 자부하며 살았다. 함께 낚시를 가도 말술을 먹고 엄청나게 담배를 펴대며 객기를 부리듯 아무거나 먹고 마시며 흥겨워했다. 몇 날 며칠이고 저의 기력이 늘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며 병원에 갔고 무슨 희귀한 질환으로 곧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과다한 약물을 투여하였고 두 골반이 괴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조금 과장하면 삽시간에 무너지는 둑과 같았다. 나는 겁먹었다. 술 담배를 끊고 주 앞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 나는 흔들려서 두 손을 들었는데, 친구는 3, 4년 치료 끝에 인공관절을 삽입하고 두 번에 거쳐 눈 수술을 한 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옛 생활로 돌아갔다. 그저 혼자 생각해도 유치하고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저를 보며 내가 흔들렸다. 나를 흔들어 깨우시는 손길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저는 아직 저기 있고 나는 이제 여기에 있다. 종종 나는 저에게 빚진 마음이 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이 모든 게 주의 은혜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그렇지 아니하였다면 나는 지금 어떠했을까? 아이의 글과 덧붙이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엄마를 두고 주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의 굳은 결심(?)을 응원하였다. 저의 충동구매욕구의 출처를 안타까워하며 주의 도우심을 바라였다. 단지 옷이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혈기에 따른 허영이었다.

 

우리에게 두신 주의 이름이 값지었다. 아버지 하나님! 하고 부를 때 나의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치는 세상의 곡소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라.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72:17).” 우리 안에 두시는 복이란,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함이로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1).” 오늘을 사는 동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떠하든 주를 바라고 의지하며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3).” 오늘도 나를 흔들어 깨우시는 주의 진동으로 하루를 살게 하시기를. 살아서 사는 날 동안 주 앞에서 의연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복음과 함께 고난도 달게 여기며,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72:4).” 주께서 주도하시는 삶으로.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6-7).”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1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