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 10:14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시편 82:8
늘 그 하루가 다채롭다.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다가 우산을 두고 내린 것을 알고 돌아서서 도로 올라서려다가 이미 닫힌 문에 무릎을 찧었다. 쩔뚝거리고 들어서면서부터 아프다고 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파스를 붙여주고 진통소염제를 먹였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성경공부를 하는 내내 아이는 직업훈련을 안 갔으면 하였다. 밖은 요란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복지관 선생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호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무런 것도 해줄 게 없어 답답하였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스물세 살 된 아이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새삼 교훈이 되었다.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기꺼이 자신을 돌보는 이들에게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도움을 청하는 것도 그렇고, 그때마다 자기 생각을 자기 생각대로 고집하지 않고 엄마에게 묻고 선생에게 통보하고 저들의 조치를 구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스물셋씩이나 돼서 그런 일 하나 스스로 처리 못하나 싶다가도, 그렇듯 스스로들 잘 처리하며 산다고 여기는 이들의 실패와 후회와 오욕을 돌아보면 그보다 나은 것이다. 뭐라 하면 딱하게 여기며 다들 뭐라 언성을 높이기 일쑤지만, 나는 아이에게서 교훈을 얻곤 한다.
교회가 생성되고 이어져 오는 데 있어, 무식하고 배운 것도 없는 한줌 무리에 지나지 않던 저들에게서였다. 교회는 시작되었고 수백 년을 이어져오는 동안 그 어떤 사상이나 단체나 조직도 이루지 못한 생명력이 있었으니,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주신 것’이다. 우린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때론 나의 연약함이 구차하여 쓸쓸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 구차함으로 주를 의지하고 바라는 것이다. 곧 스물셋 먹은 아이의 온전치 못한 하루인 것 같으나 그 가운데서 모두의 관여와 손길과 사랑의 참여를 기회로 제공한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서로들 같이 조바심내고 뭐라 채근하다가도 아이를 우리 곁에 두시는 것은 성령의 뜻에 곧 주의 사랑에 우리도 참여하게 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복지사의 긴 잔소리와 꾸지람도 그때는 내가 기분이 상하다가도 그의 관여가 그를 성장시킬 것이라 생각하였다. 누구보다 아이엄마의 힘에 겨운 사투가 단지 지긋지긋한 세상살이로 그치지 않고 아이로 인해 더 열심을 다할 수 있는 충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처음 느낌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어서 반응하는 것이다. 번번이 감정은 먼저 앞서지만 그러다가도 그 가운데서 주의 은총을 누리고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된다. 다독이고 위로하고 위하여 마음 쓰고 돌보고 하는 모든 행위 가운데서 주가 내게 하셨던 일을 비로소 깨닫고는 하는 것이다. 경건함을 두려움과 같이 두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히 12:28).” 그리고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일이다. 저의 나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일이다. 감사로 하자. 아이의 온전하지 못함이 나의 온전하지 못한 처지를 돌아보아 우리로 감사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한사코 자신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경우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세계다. 스스로 낫게 여겨 결혼에 실패하였나? 번번이 지겨운 밥벌이의 노예로 전락하였나? 남들에게 치여 사는 날이 고달픈가? 나는 아이를 딱하게 여기다가도 그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신 주의 놀라운 은총을 경탄한다. 좀 나은 줄 알고 자신은 아니라고 하면,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 그처럼 잘난 줄 알았던 삶이 왜 그처럼 고달프고 처량하기만 한가? 모르겠다. 다들 그냥 하는 소리로 듣기에는 하나 같이 죽겠다고 하고, 죽지 못해 사는 꼴들이니 우리에게 아이를 두신 까닭은 교훈이다.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올 때까지의 메시지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이를 생각하며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가를 새삼 즐거워하였다. 성경의 사람 중에 이상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 있었나? 노아야말로 당대에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를 멀쩡하게 잘만 사는데 그로 인해 그 가족들 모두 뭐하는 짓인가 싶게, 120년 동안 구원의 방주를 짓고 있다니! 아브라함은 또 어떻고? 75세 노인이 이제 노후대책을 세워 남은 노년을 구사해도 모자랄 판에 그 안전하고 보장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시는 말씀만 붙들고 길을 나서다니! 모세는 또 어떤가? 가만히만 있어도 그 애굽의 권력이 보장되고 그의 낙을 누리는 데 확고하였을 텐데 저의 무모한 선택을 어찌 누군들 응원할 수 있었겠나!
일련의 사건 상황들이 매일 교훈한다. 이에 우리는 마음에 찔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그런 우리의 마음 문을 성령이 여실 것이다. 마치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16:14).” 아이가 돌아가고 한바탕 무슨 소동에 휘말렸던 사람처럼 나는 기진하였다가, 궁극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이로써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낫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고로 우린 이 일에 증인이 된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32).” 말씀 따라 가자. 그러면 아이의 이런저런 상황과 사건이 그때마다 주의 음성이다. 내게 두시는 연약한 육신과 마음과 온전치 못한 모든 것들을 들어 주가 이끄시는 거였다. 이로 주와 연합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갈 2:17).” 우리에게 더는 정죄함이 없는 이유다. 이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믿음이란 이 땅에서 무모함의 다른 정의와 같았다. 날마다 기적이라. 주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 오늘 말씀은 강렬하게 증거하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그런 날을 매일 매순간 접하고 사는, 아이의 하루가 나는 그리 여겨졌다. 비록 가깝게는 그 가족이 고달프고 멀게는 저를 돌봐야 하는 여러 손길이 고달픈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으로 저들이 사는 것이다. 뭐라 잔소리를 해대지만 복지사는 그런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엄마의 염려는 그것 때문에 더욱 절박하게 주 안에서 주의 은총만을 구하며 사는 것이다.
문득 어제 내게 주어진 교훈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러니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산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 그런 나의 한 날은 상처 입은 세상에서였다.
그리하여 믿는 우리의 기도는 동일하였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