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전봉석 2019. 5. 31. 06:29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여호수아 13:33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시편 85:12

 

 

모든 게 다 내 맘 같지 않다. 내가 봐도 나는 옹졸하고 옹색하다. 너그럽지 못하며 인자하지 못하다. 아이의 행실이 얄밉고 얄미운 아이를 온화하게 받아내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불편해하는 것은 그 아이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모두 내가 감추고 사는 모습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미련하여 눈치가 없다. 이기적이어서 자기만 먼저 생각한다. 그 속에 화가 많다. 만사가 귀찮고 성가시다. 당장 좋은 걸 취하고 공연한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공부도 못하고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어 자아도취에 빠졌다. 나는 이를 그럴듯하게 숨기고 사는데 하나님은 자꾸 드러내신다. 마주하게 하시며, 심지어는 돌보게 하신다. 다시 아이들이 돌아왔다! 못하겠다고 발뺌을 하여 몇 달 뭉그적거렸는데, 두 녀석이 토요일에 찾아와 글방에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아내도 그리 부추겼다.

 

그래 맞다. 신앙은 달관이 아니다. 끝없는 길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나도 누구처럼 어쩌고저쩌고 싶은데,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13:33).” 따로 두시는 이의 속내를 때로는 알 길이 없다. 아들은 또 잘하면 주한필리핀대사관에 계약이 연장되어 일 년을 더 머물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어깨가 도로 아프고 바라는 일은 부진하였다. 그저 내게 두시는 하루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를 배웅하는데 같은 층 교회 사모를 만났다. 아이는 부산스럽게 궁싯거렸고 어쩌면 나는 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 조용! 스물세 살 아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28).” 내가 그러하다. 나는 나를 닮은 아이들이 귀찮고 성가시다. 해봐야 아무런 표도 안 나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싫다. 초딩들이 돌아가고 중2 아이와 중1 아이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딸린다. 늘어져서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건성이다. 나는 아이들의 영혼이 상하고 병들었다고 여겼는데, 실은 내 영혼이 척박하고 메말라 있던 거였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그리하여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날 똑같다. 다시 또 그 자리다. 좀 무섭게 해야지! 오히려 잡히니까 애들이 자꾸 만만하게 여기는 거야! 가정예배 드리기 전에 아내는 핀잔 아닌 핀잔을 늘어놓았다. 휘어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질질 끌려가지 말고.

 

그러니 자꾸 감정만 앞서고 마음만 어려워서는. 나는 어쩌지 못하고 자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주께 이른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을 어쩌자고 자꾸 맡기시는 것일까?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85:12).” 말씀 앞에 앉아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생각이 많아진다. ‘예수를 바라보자.’ 나에게는 답이 없다. 내가 저 아이들을 어쩔 수 있지 못하다. 아내 말처럼 질질 끌려가다 힘에 겨워 먼저 토라지기 일쑤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다른 답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오히려 저 아이들보다 못하다.

 

구원의 창시자 예수께서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그러기 위해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고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9).” 그러기까지 하여 나는 비로소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나? 오늘 말씀은 이를 상기시키신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85:8).”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이는 실제 그런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저마다 자기 수고와 애씀으로 여겨 그러한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기껏 마음 쓰고 위하는데 오히려 더 잡히지 않는다. 좀 가까워졌나 싶으면 손에 잡힐 듯 아직 저만치이다. 나는 싫증나고 힘이 든다. 피곤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괜히 억울하고 화도 났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구나!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6-17).”

 

이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10:38).” 마태는 다시 언급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마가도 증언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 누가도 진술하였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7).”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예수를 따르는 게 합당하지 않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제자가 되는 필수이다.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내 생각의 절반이 넘는다는 데 놀란다. 입만 열면 아이들 이야기라.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씩이나 묻고 답하시던 우리 주님의 심정을 조금은 알겠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21:17).” 내가 주를 사랑한다면, 저 아이들이 주의 양이었다는 것. 아이들에게서 싫어하던 것이 실은 내 모습이더라는 것. 그럼에도 우리를 붙들고 놓기 싫어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으니.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저들 하나하나가 주의 교회였던 것이다.

 

비록 아직은 발목 잡힌 게 많아 주 앞에 나올 수 없는 어린 심령들을 자꾸 내 곁에 두시는 까닭이었으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3:26).” 말씀 앞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대체 이런 애를 내가 어쩔 수 있겠나? 하는 생각보다 위험하고 어리석고 교만했던 마음이 어디 또 있을까!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85:9).” 그리하여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10-11).” 내가 주역이 아닌 것이다. 마치 내가 저들을 어쩌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 형국이었으니 옳지 않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3).” 말씀이 나를 앉히신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일찍 깨우시더니 말씀 앞에서 나를 붙드시었다. 어디로 도망치듯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5-6).” 바로 그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한 가지,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85: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