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사사기 15:18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시편 111:9
행실을 놓고 보면 저가 어찌 사사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할 수 있겠나싶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삿 15:18).” 마치 자기 내키는 대로 구는 것 같은데,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우리의 걸음을 주가 지도하신다는 데 안도할 따름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3).” 그 걸음마다 주를 알게 하려 하심이겠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이처럼 말씀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새겨 주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는 게 귀하였다. 나의 하루는 나 혼자 힘들어서 책상 밑으로는 난로를 켜고 위로는 땀을 흘리며 선풍기를 돌렸다. 담이 결려 며칠째 등짝이 뻐근하고 장마가 다가오는지 허리와 어깨가 욱신거렸다. 아이는 복지관에 가는 날이어서 오지 않았고 나는 설교 본문을 정해 관련 성경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문득문득 그러고 있는 자신이 처량하여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구슬펐다.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렘 13:22).” 재앙과 고난을 엄연히 다르다. 고단한 하룻길에서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사 28:1).” 서럽기도 하였다. 때론 우울하고 때론 의기소침하여 시무룩하다가도 그저 말씀 앞에 앉는 것이다.
누구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떠올리다 주께 용서를 구하고 저를 위해 기도하다,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렘 13:20).”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저런 일련의 사회 상황과 사람들의 다툼을 보면서도 경고의 음성을 듣는다. 한참 잘 나가던 어느 배우가 이런저런 사연을 겪고 돌아와 재기를 하는 모습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어느 기업 총수는 이내 객사(客死)하여 뼛가루와 사망진단서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허망했다. 잘나고 잘되고 잘하는 일이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그런 걸 축복으로 삼으면 주의 은혜는 너무 싸구려가 된다.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21).” 그러한 고통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심이 은혜였다. 우리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모두 불사르실 때까지 하나님은 거침이 없으시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누구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다를 바 없이 늘 되풀이 되는 나의 어리석음은 속절없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 26:11).” 누구를 탓할까. 사람 다 자기 생각을 붙들고 사는 것이니 깨지고 으깨져 더는 쓸모가 없어 버려질 때까지, 수치는 우리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눅 15:16).”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안다. 과거를 직시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일은 모른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렘 11:16).” 우리의 모든 길이 주의 손에 있음을. 이는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우리로 세상과 같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게 하시는 것이었으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전에 바라고 원하던 것에서 완전히 다른 것을 소원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나 하나로 힘들고 어려워서 고통하다가도 그것으로 다른 데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주의 긍휼하심만을 바랄 수 있는 게 귀하였다.
누구의 사연과 어떤 사건과 저들의 죄에 대해서 내가 공포를 느끼고는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주의 영이 계시다는 걸 새삼 확신하는 증거다. 가령 친구가 갑자기 몹쓸 병에 걸려 그 잘난 모든 걸 더는 취할 수 없을 때, 선생이 무슨 사연을 말하며 거의 평생을 죽겠단 소리로 입버릇이 됐을 때, 누가 건너와 둘째 아들도 몇 평 아파트를 샀다느니 무슨 차로 바꿨다느니 하는 말을 할 때, 그럼에도 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내가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렘 14:7).” 저들은 멀쩡한데 나는 주께 용서를 빌고 주의 긍휼하심을 바란다.
하나님과 동행이란 꽃길만 걷는 게 아니다.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 33:16).” 그런 가운데도 저가 내게 일용할 양식과 하루에 족한 괴로움으로 그치시니 귀하다. 영적 성장이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는 길이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8-10).” 말씀은 종종 이 땅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8-19).”
나는 나의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며 살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힘들고 어렵다가도 그래서 주를 바라는 게 귀하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행했을 나의 행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기웃거리고 사람을 찾고 어떤 의미를 좇아 마치 내가 주도하는 주의 일인 것처럼 굴었을 텐데. 문득 드는 생각이 ‘우리의 특권은 어떤 것을 이 땅에서 누리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나의 권한이랄 수 있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는!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다만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9:12).” 이와 같은 말씀에서 오래 머물며 나의 미약함에 위로를 받았다. 때론 주가 강제하심이 은혜이다. 나는 나의 육신의 고통을 그리 이해한다. 행여 이것이 자기연민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기를 주의한다.
삼손의 이런저런 행실을 보며 저의 열심이 저를 삼키고 있는 것을 본다. 어떠하든 저가 옳은 게 아니라 그의 그릇됨까지도 옳은 것을 삼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눈에 들어온다. 곧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1:9).” 종종 두려운 일은 우리의 기도가 또한 요구를 들어주시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106:15).” 정치에 뛰어들고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활약하는 유명인들 중에 믿는다는 이를 주목하다보면 그 의미가 새롭다. 저의 잘됨이 결코 축복은 아닌 것을. 이 땅에서의 성공과 흥함이 결코 복에 복이 되지는 않는 것을. 그것으로 도리어 우리의 영혼은 쇠하여 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렘 16:17).” 고로 말씀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아는 게 가장 귀한 복이다. 고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 111: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