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전봉석 2019. 6. 29. 05:54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사사기 18:5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시편 114:7

 

 

창밖이 어수선하여 일찍 깼다. 장맛비가 추적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파트 평상에 나와 재잘거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잠은 달아나고 어떤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딸애 친구들 이야기로 마음이 어려운 하루였다. 13일 오전 11, 서울시 성동구 한 어린이집 앞에서 47A씨가 도끼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그때 원아의 약을 챙겨주고 나오던 노파가 A씨가 휘두른 도끼에 찍혀 중상을 입었고, 어린이집 교사와 문화센터 직원도 변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두 곳은 모 교회가 운영하는 곳으로 A씨는 교회에 재직하는 형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인터넷으로 도끼를 주문하여 화풀이로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린이집 교사가 실은 딸애의 신학교 동기 누구의 누나라고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전방위적으로 찾으신다! 듣기로 그 친구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될 거였는데 무슨 보험사에 취직을 하고 보험왕이 되어 나름 잘 나가고 있던 친구였다고 하니. 또 누구 이야기와 중첩된다. 두 자매 이야기인데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어찌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 없으나 큰애가 너무 엇나갔던 모양이다. 저들 어머니의 기도 제목은 어떻게든 돌아오게만 해달라는 거였는데, 큰애가 정말 위암에 걸려 돌아왔다. 작은애는 딸애 친구로 그 일을 두고 속상해하면서도 번번이 사귀는 사람마다 안 믿는 청년이라. 인물에 끌리고 사람 좋은 것에만 끌려 사랑하다 헤어지기를, 몇 번째 들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적어두는 이유는 한 가지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인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얼마나 전우주적인 역사로 동원되어 사건과 사고와 상황을 휘몰아치시는지에 대해 나는 잘 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곧 죽여서라도 살리시겠다는 소리다. 새삼 내 이야기를 할 건 없다. 나를 어떻게 찾으시고 붙드시고, 돌이키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우여곡절을 동원하셨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나는 해줄 말이 많은 사람이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죄악 된 세상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나를 살리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은 모질었고 때론 잔혹하였으며 끔찍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에 이르러,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도 송구하고 무엇을 다 바친다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를 어찌 말해줄 수 있을까?

 

뒤늦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딸애가 놀라서 우리가족 카톡방에 올리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고 두려움에 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든 게 허튼 게 아니고 그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저 허투루 천만다행이란 표현으로 들어 넘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은 저주다. 출세와 성공과 그 어떤 형통함도 축복이지 않다. 그리하여 최순실로 살았다고 한들? 권력을 등에 업고 세상을 호령하며 서열 1위 행세를 하며 형통하였다고 한들? 오히려 아무 탈 없이 저가 죽을 때도 복락을 누려 모든 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고 한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73:6-9).”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4-5).” 이를 위해 하나님을 찾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저주였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미가가 데려다 제사장으로 세운 레위 사람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18:5).” 참으로 겁 없는 세상이다. 함부로 굴고 멋대로 사는 세상이다. 나는 이제 이를 보며 두려워 떨 줄 아는 것으로 복을 삼는다.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114:7).” 오늘 시인은 간곡하게 노래하는 것이다.

 

늘 나의 기도는 부디 우리 아이들이 먼 길을 돌지 않기를. 자기 아집으로 하나님과 대적하지 않기를. 세상 그 무엇보다 부패하고 더러운 것이 우리 마음인 것을 바로 알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 그러므로 은혜로 받는 것이 아닌 모든 형통함은 저주다. 통탄할 일이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데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이제 와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안고 사는 나의 장애가 복이었다. 잘 나간다고 여기고 멋대로 굴 때 찾아온 파산이 가장 큰 은혜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선생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더는 의지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게 힘이었다. 오늘의 연약함이 가장 귀한 은총인 것이다. 나로 하여금 경건하게 하시려고,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그리하여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이와 같은 말씀으로 실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셨다.

 

나는 나의 가족들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오늘의 나 된 것이 모두 주의 은혜인 것을 자랑할 수 있다. 부디 그러그러한 일을 그저 그러려니 여겨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란 말로 희석시키지 않기를 당부하였다. 두려워할 줄 아는 게 복이다. 그보다 더 귀한 은총은 없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살면서 보람을 찾고 희락을 구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산다 한들! 그 모든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덧없이 허망하고 괴상망측한 일인지. 온 사회가 아우성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 회장이 부도를 내고 몇 천 억의 추징금을 피해 도피하다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누구는 옥살이를 하고, 치매가 오고, 늙고 병들어 오늘내일하는 요지경의 세상에서.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114:7).” 오늘 시인은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3:11).” 이 모든 게 주의 뜻 가운데 있음을. 그러므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46:10).” 이를 듣게 하시려고,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1:20-22).”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19:21).”라고 한다면 가장 귀한 긍휼하심은 우리로 듣고 놀라 두려워 떨며 주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으니.

 

하다못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그러므로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114:3-4).” 모든 생명은 지으신 이를 찬미하고 경외함으로 그 생을 다하는 동안,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7).” 떨며 주를 경외함이 참으로 복된 은총이었다. 나는 공교롭게도 딸애 친구들 이야기로 마음이 심란하였고, 나의 날들을 돌아보며 주의 은혜에 새삼 감사하였다. 그리하여 오늘의 내게 두신 모든 날들이 축복이라. 때론 어려움이 심려가 고통이 힘들고 답답한 현실이 하나님의 가장 선하시고 인자하신 손길이었다. 책상 아래에 난로를 피우고 머리 위로 선풍기를 돌리고, 뜨거운 엉덩이를 식혀가며 설교 원고를 작성하고 주보를 만들고, 고작(!) 한 영혼의 하루를 점검하고 있는, 나의 한심하고 처량함이 귀하였다.

 

이 모든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4-5).” 나로 하여금 주님의 기도를 음미하게 하신다. 전날에 어수선하였던 마음으로 새벽잠을 설치게 하시더니, 이처럼 말씀으로 나를 이끄심으로 말씀 앞에 세우시고는,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114:5-6).”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으로 경외함을 삼아야 하는지,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7).” 이는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