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삼하 24:14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시편 22:7-8
종종 누가 나를 보면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 것 같다. 그러면서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한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 코가 석 자면서 누가 누구를 돌보고 위로하는지 모르겠다. 아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이와 같이 나누어 먹은 소보로빵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돌아가고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속이 싸해졌다. 안정제를 반 알 깨물어 삼키고 속을 달랬다. 막내 동생이 들러 책을 주고 갔다. 혹시 몰라 저녁을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장모의 재가요양을 위한 절차를 알아보았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속은 달래어졌다. 아이는 요즘 글쓰기에 열심이다. 한 시간 이상 집중해서 글을 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아이의 글을 읽는 일은 수련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뭐가 어떻다는 소린지, 읽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잘했다잘했다 응원을 해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관둘 것인지,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것인지. 모든 물리적인 현상은 물론 나의 마음의 선택까지도 참고 기다리시며, 조성하신다. 그러니까 모든 일의 작정은 결국 하나님께 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주를 의뢰하고, 그저 나는 행할 뿐이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데 있어 오늘 말씀은 그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 같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삼하 24:14).” 죽는다 한들 주의 손에 빠지는 게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누구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신체적인 문제인지 정신적인 문제인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그 대책을 세울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순간 훅, 하고 끼쳐오는 어떤 공포. 이는 실제 숨을 못 쉴 것 같고 그래서 식은땀이 배며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는 것일 텐데. 나는 가만히 서성거리면서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하나님께는 사소한 일이란 없다. 그러한 손길을 통해 잠깐 멈추고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시는가. 아이의 글을 같이 소리 내어 읽으면서 ‘이런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밀려들어서일까? 누구 말처럼 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
나는 주의 세심하신 손길을 의뢰하기로 했다. 아니, 그 수밖에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간절하다. 하지만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은 물고기의 뱃속도 사용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주가 이루어 가시는 일이다. 동기 전도사 내외가 올해 안에 개척 예배를 앞두고 있다. 뭉그적거리지 말고 ‘그냥 해’ 하는 말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에 대하여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를 신뢰함이란 더는 두리번거리지 않는 것,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반복하느라 어기적거리지 않는 것. ‘네 발을 딛으라.’ 하실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 32:6).”
아니면 어쩌겠나? 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다. 저 아이를 내가 어쩌겠나? 이 변변찮은 육신을 어쩌겠나? 빤한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또한 어쩔 수 있겠나? 그저 나는 아이가 글을 열심히 썼으니 같이 소리 내어 읽을 뿐이다. 저 아이를 보내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고, 저와 같은 상태와 여건으로 놓아두심이 또한 주의 계획하심 바,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인도하심을 받는다. 이에 요나의 위로가 되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벌레 먹고 말라 비틀어지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욘 4:6-7).” 골 부려봐야 나만 손해다. 누가 어디 병원 약제실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며 그 마음이 썩 개운하지가 않다고 말하였다. 그 길로 인도하심인지, 그 길까지 고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엄연한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0).”
나는 이처럼 말씀을 따라 읽으며 위로를 얻는다. 다른 더 좋은 수를 알지 못한다. 해야 할 것을 할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맡기실 뿐이다. 그때마다 주가 이루신다. 보면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나의 선택까지도 말이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5-16).” 어디가 아프고, 갑자기 불안이 몰려오고, 무슨 일 앞에서 번번이 당황하기 일쑤지만,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147:18).” 오늘 다윗은 기로에 섰다. 어느 것도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때 저의 기준은 하나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모두는 무언가에 기생한다. 일련의 일들을 살펴보고 하면서 하나의 제도에 수십 개의 직종과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기식한다. 누구는 상담을 주로 하고 누구는 직접 집으로 나가서 노인을 돌본다. 누구는 노인이 사용할 보장구를 제작하고 누구는 이를 설계하고 누구는 이를 판매한다. 그런 가운데 한 사회가 구성되고 사람살이가 그 형편과 모양은 다르지만 같이 공존한다. 이이를 통해 저이를 알고, 저이로 인해 이것을 선택하고 소유한다. 이와 같은 모든 일을 조정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욥 37:11-13).” 그저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더욱 오죽할까? 아이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고 그 증서를 받아왔다. 기쁨에 들뜬 아이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일도 중요하다. 앞으로 어찌될지 누가 알겠나만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게 저절로 뚝딱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안에 요동치는 바람아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이 또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어서,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 3:6).” 주께 의뢰함이란, 누가 뭐라 한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시 22:9).”
고로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