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왕상 10:8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시편 32:10
주가 주시는 지혜로 산다는 일은 유별남이다. 남과 다른 것을 바라고 구한다. 그러므로 가장 큰 절망은 주의 도우심 없이는 주의 영광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충분히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있다. 그를 바라고 구하는 의지도 있다. 가령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의미 없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각종 우상으로 바꾸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지만 물불 안 가리고 ‘자기 좋을 대로’ 그리하였다. 그러는 세상에서 우리는 주를 신뢰함으로 유별나다. 저들과 다르다.
이를 세상도 안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 10:8).” 만물이 부러워할 일이다. 그러니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시 32:10).” 이를 부정하면서도 저들은 부러워한다.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하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우리는 이제 이를 놓지 않는다. 다른 것은 다 내려놓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우리에게는 한 의가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다. 곧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심을 아는 일은 주를 사모함이다. 아닌 듯 서로 다를 게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과연 다르다. 아이는 환절기 알레르기로 인해 재채기를 해대고 콧물을 흘리고 눈이 따가워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도 주일을 바라고 예배를 사모하며 나왔다. 예배를 마치고 같이 남아서 성경공부를 하고 갔다. 그러는 그 중심의 마음은 주의 것이다. 회계사 준비를 하고, 경영을 배우고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어느 길로 인도하실지 주의 선하심을 의뢰한다. 안 믿는 가정에서 그 부모와 형제들과는 달리 주를 바라고 의지하는 생활이려니, 때론 부딪기고 어그러지는 일도 있으나, 더욱 주를 바라자. 말씀만 의지하자. 아이를 위로하고 응원하였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주가 이루시는 세계다. 저 아이가 설마 나를 보고 오겠나? 우리 시설이 좋고 프로그램이 뭐가 있어서 나오겠나? 오란다고 오겠나? 그 안의 주의 영이 하시는 일이다. 믿음으로 인내하고 처음 받은 그 확신을 붙들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기질이나 노력이 아니다. 공통된 주의 성품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0-11).” 그리하여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다. 우리의 열심이란 다만 할 수 있는 그 일을 맡기신 이의 뜻에 따라 준행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를 증거하시고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곧 우리는 다만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복음이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나는 어쩌면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늘 빤한 소리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것을 증거할 수 없고 강조할 수 없다. 흥미를 돋우고 재미를 더하기 위해 말씀을 희석할 수 없다.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5).” 그래서 재미없어하고 별로라 여긴다면 별 수 없다. 전에는 이를 추구하였던 것 같다. 애들이니까, 젊으니까, 어떤 흥미를 줄 수 있는 것을 같이 마련하고 싶어 했다.
결국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었고, 나 역시 저 아이를 통해 주의 위로를 받는 자였다. 고마움이 간절하였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6).” 서로 안에 주의 빛이 비추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그런 자라면 내가 무슨 수를 쓴들? 우리가 어떤 노력을 더한들? 나는 아이와 남아 성경공부를 하며 아이에게 당부하고 전하였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나를 향하신 주의 마음인 것을 새삼 느끼고 깨달았다. 다들 저마다 자기 옳은 방식대로 산다. 그러니 그 고집을 무슨 수로 꺾을까? 우리는 다만 ‘주를 바라볼지라.’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시 25:3).” 그러므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21).”
이제는 확신하는 것이다. 이는 처음에 가졌던 확신이다. 믿음으로 붙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59:9).”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주의 영이 하심이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63:2).” 이를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심은 오늘 말씀에서 스바 여왕의 진술에서 드러난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 10:8).” 솔로몬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 ‘당신’이면서 직접 우리 주 전능하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소리로도 들린다. 우리에게 더하신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은, 나는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저 의미 없는 글을 쓰고 있나? 회의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는 저 아이가 할 수 있는 찬양이다. 경배다. 주께 다하는 영광이다. 손 글씨로 수십 장의 글을 몇 시간씩 집중하며 쓰고 있을 때의 그 모습이라니! 하나님이 지으신 누구도 그 삶이 헛되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시 32:10).” 하시는 오늘의 말씀 앞에 저절로 마음을 고하는 것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69:6).” 그러므로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32:11).” 덧붙여 좀 더 스바 여왕의 진술을 들어보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왕상 10:9).” 이를 저들도 안다. 세상은 그래서 난리다.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하지만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10).”
우리 안에는 내적증언이 있었으니,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오직 주만 바람이다. 이를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함께 격려하며 위로할 수 있는 것이 귀하였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였다. 고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