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전봉석 2019. 10. 18. 07:05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대상 2:1-2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시편 82:8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1:4).” 가만히 말씀 속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죽고 하는 계보를 보다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로 알려진 므두셀라도 한 줄의 문장으로 그의 인생은 요약된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5:25-27).” 거의 10세기를 살았던 그의 인생이었다 해도 우리의 삶은 이처럼 허망할 따름이다. 다윗은 늙고 병에 걸려 주 앞에 엎드렸다(39:1-7). 저는 그 짧은 인생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였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5).”

 

이와 같은 허무를 잊으려고 얼마나 나름 열심을 다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보람을 느끼며 그것으로 됐다 하지만 과연 그게 또 그런가?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03:15).” 마치 바람 같아서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78:39).” 그러니 성경은 인생을 의지하지 마라, 호흡이 코에 있을 뿐이다, 셈할 가치도 없다, 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2).” 물론 다들 어쩔 수 없는 사연을 놓아두지만 이를 못 이기고 누가 또 죽었다. 저의 자살을 두고 누구 때문이네, 무엇 때문이네, 며칠째 말이 나온다. 그러니 어쩔 것이냐? 다윗은 눈을 돌려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한다. 고작 우리 인생이 순식간이라 한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90:9).”

 

벌써 또 금요일이구나! 아이와 벌써 2주가 되었다. 전날엔 뭔가 내게 주려고 선물을 들고 오더니, 어제는 일을 마치면서 자기도 문득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며 나를 놀라게 하였다. 이제 열아홉, 나는 가끔 아이를 보다 그 값지고 영롱한 나이에서 새롭게 발돋움하려는 모습이 귀하였다. 주께서 저 한 영혼을 붙들어주시기를.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음에 대하여,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 주의 손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가.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싶으면서도 2주쯤 지나면서 아이의 경직됐던 표정도 말씨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있어서 감사하였다. 주가 하신다 주께서 하실 일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새삼 드는 마음이 나는 무던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인생에 소망이 없듯이 재물도 소망이 없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39:6).” 설마 아이가 시급 만원을 벌자고 하루 두 시간 여기 와서 이러고 있겠나? 주가 이루시는 일이다. 스물세 살 아이는 하루 네 시간, 90만원을 받고 일을 나간다. 돈이 다가 아니지! 나는 아이를 토닥일 때면 그렇게 말한다. 일을 할 수 있는 몸과 정신과 그와 같은 일터가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게 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빠져들고 헛된 것을 쥐려 할 따름이다. 그러게! 인생 뭐 있겠나? 다들 허무하니 돈돈거리며 돈 벌어 돈 쓰는 낙으로 산다. 그러나 성경은 일갈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6:19).”

 

그런 거 보면 오늘 내 인생이 가장 귀하고 감사한 것 같다. 그때마다 나에게는 까마귀를 보내어 먹이고 입히시지 않던가.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왕상 17:6)”. 저는 그저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였다. 가문의 배경과 이를 자랑할 조상도 없었다. 그런 저에게 당대의 가장 악한 아합왕과 이세벨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이제 저는 피해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었다.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4).” 보면 다 하나님이 하신다. 내 마음에 두시는 어떤 부담감이나 어려움으로 하나님은 주만 바라보게 하신다. 아이의 묵상글에서 공황이 잦아지는듯하여 속상하고 마음 아파 주의 이름을 부르듯, 스물세 살 아이의 답답증을 어찌 모르는 바 아니어서, 이제 열아홉 한참 꿈꾸며 날개를 펼쳐야 할 나이에, 하나님이여!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 비록 인생은 저를 노엽게 하고, 그 부모의 무책임으로 오늘에 이른 마흔넷의 누구에게도, 주께서 우리로 주의 무궁하신 사랑을 알게 하소서.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7:7).” 내 곁에 두시고 함께 하신 날 동안에 그처럼 먼 길을 돌아서 이제야 주의 강권하심으로 교회로,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에게도,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주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부분에서 나는 저들을 주께 아뢰고 고한다.

 

누구의 아들애도 이제 중2인데 학교도 못 가고 그러고 있다는데, 여전하여 그 엄마는 미혼모로 아이를 두고도 여전히 오빠를 찾고 있으니. 자꾸만 마음에 밟혀 슬그머니 기도제목으로 적어놓았다. 기도 외에는 다를 방도가 없다. 말씀 사역에 앞서서도 기도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6:4).” 왜 기도뿐인가? 나 같이 무능한 이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이다. 누구에게 말하는 까닭도 일심으로 기도해주기를 바라서이다.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4:24).”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소서. 내가 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는 없다. 가만히 같이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의 목격자가 되는 일뿐이다. 별 쓸모도 없는 나 같은 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어느 아이의 엄마는 그저 사회에 잘 적응하여 평범하게만 살아주기를 바라고 또 누구는 돈이 필요하고,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 여기고, 누구는 방기하고, 누구는 책임을 전가한다. 이게 다 모진 세월 때문이고 남만 못한 기구한 팔자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누가 그때 조금만 도와줬어도, 그래서 돈이 최고다. 다 필요 없고 그저 남들처럼 사람 구실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저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속이 다 허망할 따름이다. 그리 살아서 아이들이 짊어지고 가는 인생인데 여전히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니! 마치 죽어가는 자식을 놓고 허탈한 마음에 농담이나 일삼는 꼴 같다. 그러니 어쩐다! 별 수 없는 노릇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뭐라 좀 이르면 그저 내 말을 팔자 좋은 소리로나 듣는다. 어쩌겠나?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16).” 내게 주의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나는 다만 저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5-17).” 기도와 말씀뿐이라.

 

부디 하나님이여,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82:5).” 우리는 그렇지 않음이여, 주 앞에 온유함으로 그 땅을 얻는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그러므로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82:3-4).” 이는 우리 모두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