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전봉석 2019. 12. 31. 07:04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 1:10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시편 6:9

 

 

바벨론의 포로 된 가운데서 바사의 고위 관리, ‘술 맡은 자-마실 것을 주관하는 자가 된 느헤미야는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금식하며 주께 아뢴다.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1:10).”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위치로 살든 그 중심과 그 정체성을 바로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운다. 곧 우리 삶이란 게 무슨 뜬구름 잡는 사람들이 아니다. 신앙을 무슨 추상이나 관념으로 여기며 저 세상의 것을 위해 이 세상의 것을 허투루 여기는 사람들로 생각할 때도 있다. 이는 저쪽이냐 이쪽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와 같이 우리를 우리의 현장에 증인으로 세우셨다. 많은 생각이 나를 주도하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19:21).” 이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내 안에도 하루에 열두 번은 오만가지 생각이 휩쓸고 가곤 한다. 뭐라도 해야 하나? 뭐가 돼야 하나? 다들 죽어라 하고 사는 이 땅에서 나만 너무 태평한 게 아닌가? 이대로 괜찮나? 이 길이 맞나? 싶은. 그럴 때면 다니엘의 믿음이 나를 붙든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2:22).” 도무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주는 나를 이끄시고 인도하신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기어이 2019년 한 해도 다 저물어가게 하셨다. 하루 남은 날에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나로 하여금 주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21). 또 한 해가 가고 나이가 듦으로 그리움이 또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할 때도 있지만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20).” 이를 알고 붙들고 의지할 수 있게 하시는 이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음을.

 

나름 잘난 줄 알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굴다가도 순간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가, 하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는 한다. 유치한 예이지만 아이와 같이 먼 데까지 걸어가 점심을 시키고 앉았다가 휴대전화를 건물 화장실에 두고 온 것 같아 화들짝 놀랐다. 이미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데 그냥 갈 수도 없고, 아이가 뛰어 갔다 올까요? 하는데 그러기에도 너무 멀어서 됐다, 하고 체념하듯 식사를 하려는데 그게 또 입에 들어가나?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돌아와 보니 감사하게도 공중화장실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었다. 싱겁게 웃으며 안도하다, 고작 이런 것에도 속수무책인 주제에 하물며 무슨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자동차 운전을 하며 핸들을 잡고 있을 때나 한 순간도 주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 수가 없는 일이라!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3:1).” 우리는 다 안다고 하고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하지만 열에 하나 백에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이었으니,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89:5).” 내가 저 아이를 어찌 해야 한다는, 뭐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마음을 쓰다보면 온통 감당이 안 되는 마음이어서 주의 기이한 일을 묵상하고 붙들고 의지할 따름이다. 어쩌다 저 아이가 내게 오게 되었는지, 내가 저 아이를 대하며 이처럼 마음 쓰고 주를 바라게 하시는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주가 주시는 지혜가 아니면 어찌 감당이 안 되고 해결할 길도 없다. 내가 무얼 하려하는 그 자체로 교만이 오고 거스르는 마음이 인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는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9:30-31).” 너무 애쓰지 마라, 그렇게 들린다. 그저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사느라 사는 데 치여서 주를 거역하게 되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나? 내가 누구를 무슨 수로? 나도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게 하루 일과 가운데 대부분인데! 그러니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17).” 누가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념을 광신적인 믿음으로 바꾸어 우쭐하듯 외쳐대는 소리에 질겁한다. 그대로 감옥에 갇혀 순교하는 게 자신의 꿈이라니!

 

차마 저의 이름도 적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나는 저들처럼 광적인 믿음을 두려워한다. 그리 자신하는 자기 의지를 과연 저들은 스스로도 감당하며 살고는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픈 데 자꾸 손이 가고, 궁색하면 빌어먹게 되어 있다. 아무리 고상을 떤다 해도 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마치 자신을 자신하며 순교를 운운하고 그만큼 떳떳하게 자신의 믿음을 자부하는 일만큼 맹신이 또 있을까? 사람들의 환호와 군중심리가 자아내는 괴물이 아닐까?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1-12).”

 

처한 일에 감사함으로 사는 게 선봉에 서서 사람들을 회유하며 환호와 갈채를 받는 어떤 이보다 낫다. 대놓고 자부하는 믿음보다 위태로운 것도 없다. 말로야 누군 못하겠나? 생각으론 누군들 성인군자가 못 되겠나?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23:25-26).” 스스로의 거짓된 자신에게 속아 사는 게 인생이다. 누가 종종 건너와 말을 할 때 자신을 자부하고 스스로 자랑삼는 일에 대하여 나는 오히려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의 아내와 두 아들과 딸애가 각각 저의 신념의 영향 아래에서 살 텐데, 굴리는 차가 품격을 말해주고 가진 바 그 재산이 성실한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하니!

 

모르겠다, 나는. 세상을 마주할 때면 자꾸 주눅이 든다. 저들의 위풍당당함이 부러워서가 아니가 그처럼 감당하지도 못할 자신을 이고 지고 사는 보리새우 같아서보리새우는 이내 자신의 등껍질 속에서 죽는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56:9).” 매일 아침, 이러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묵상의 방식도 정도도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헛된 것을 알지만 나는 전날의 일을 가지고 말씀 앞에 앉아 채 한 나절이 가기도 전에 흔들리고 넘어지기 일쑤인 마음이지만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또 의지할 따름이다. 고작 나 하나, 저 아이 하나, 그런 일 하나, 뭐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는 주제라누구처럼 감히 사람들을 선동하듯 하나님을 운운하며 손을 높이 들고 환호와 갈채로 아멘, 화답할 용기가 내게는 없다. 다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118:6).” 말씀 의지하며 다시 새 힘을 얻는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54:4).” 아니면 내가 무슨 수로 살까? 무엇을 꿈꾸며 살까?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전 6:2).” 주가 하신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4).” 왜 자꾸 세상의 조롱을 자처하는가? 웬 순교타령을 그리 하는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부디 나는 살아서 나의 남은 날이 주만 의지하고, 주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만 쓰였으면 좋겠다. 내 안에 두시는, 주를 더욱 사랑하게 하시는 마음으로만 남은 생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없고 자신할 수 없어 감히 누구 앞에서 입 밖으로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이처럼 묵상하며 말씀만 붙들 따름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언제나 어디서나,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이제 하루를 남긴 2019년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 주가 나를 빼앗기지 않으신다는 말씀에 의지한다. 나는 비록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나 주께서 함께 하심으로,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3:12-13).”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6: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