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느헤미야 10:39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편 15:1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일을 두고 그 일에 매진하는 삶이란 지키는 것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나는 이 말씀을 사랑한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서의 영적인 각성은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묵상하게 한다. 곧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10:39).” 하는 대목에서 오래 머물고 곱씹게 된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늘 교회를 지키는 일에 있어 일이 있든 없든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도 참 귀한 사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전을 비워두지 않겠다’는 의지는 새삼 내 자신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겠다. 이를 오늘 시편의 운율로 다시금 되새긴다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 이 귀한 사명에 대해 묵상하게 하신다. 나는 전혀 그럴 자격도 기준도 안 되는 사람인데,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제격인 것 같다. 내가 조금 우쭐하면 여기 있겠나? 저 아이와 이렇게 씨름하고 있겠나? 누가 어느 모임을 쫓아다니고 그들과 어울리느라 여념이 없는 것을 보면서 그게 예전처럼 부럽지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그렇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8-29).” 우리의 교만과 아집을 경계하시는 것이다. 그릇된 길로 가지 않게 하시려고, 오늘 내게 지켜야 할 자리와 맡아야 할 아이와 겪어야 할 육신과 붙들어야 할 말씀을 두신다.
어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밀어내도 자꾸 밀어내도 아이가 온다. 신기할 정도로 당장 그만두려고 하는데도 이상하게 들러붙는 자석 같다. 나는 그렇게 한참씩 아이를 두고 씨름하다보면 아, 새삼 잊어버리고 있던 주의 은혜를 돌아보게 된다. 곧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5-6).” 결이 다른 삶이다. 가르치는 일도 이를 구구하게 밥벌이로 여기면 그 정도인데 한 영혼을 두고 주의 사랑으로 품으면 놀라운 경험이 된다. 가령 나는 얘가 싫은데 자꾸 마음이 간다. 이 마음이 대체 무얼까? 하고 되새기다보면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저 애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각성이 필요하다. 주의 성전을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도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8).”
연말정산을 위해 기부금영수증을 만들어주다 지난 한 해도 풍족하였다는 데서 놀랐다. 나야 늘 가져가는 게 없고 소위 월급도 없는 신세인지 알았는데 늘 교회는 차고 넘치게 부어주시고 계셨다. 그 안에 거하는 나로서는 모자란 게 없는 것이다. 다들 아등바등 사는 세상에서 이처럼 유유자적하는 이가 또 어디 있겠나? 물론 뒤에는 아내의 발버둥이 있고 딸애를 비롯해서 이 모양 저 모양의 후원 헌금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게 또한 주의 은혜라!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13).” 저들은 저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감사가 차고 넘치는 한 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얘가 돈이 되나 밥이 되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고 여겼던 일들이 하나도 허투루 돌아가게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였구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6-18).”
이는 조용히 하여 자기 손으로 일하기에 힘쓰는 하루를 의미한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4:11).” 남에 대하여는 단정하고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는 일이다.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 나는 아이를 내가 어찌 하려고 하지 않고 때로는 아이 앞에서 더 아이처럼 굴며 하나님을 구한다. 마치 내가 저를 어찌할 수 있는 사람처럼 굴지 않고 우리는 모두 주의 은총으로만이 살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애도 애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대체 방학하고 너의 하루는 어떠니? 하고 물었더니, 유튜브 봐요. 또? 카톡해요. 또? 유튜브 봐요. 또? 핸드폰 해요. ? 또… ? 유튜브 봐요. 아, 이처럼 바닥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이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자신이 한심하지 않니? 하고 물었더니, 한심해요! 하고 답을 한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 말하길, 반성하다 또 유튜브 봐요.
영혼이 상한 문제다. 아이를 왜 보내시는지 자명해지는 순간이다. 안 하겠다,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쑥 들어갔다.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거짓말이 입에 밴 아이다. 스스로도 다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거짓말을 한다. 자기감정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짠지 가짠지 분간할 길이 없다. 스스로도 거짓말에 속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저 애를 어찌 대하면 좋을까? 왜 느닷없이 매일 오라고 하게 하셨는지를 알겠다. 집에 아무도 없니? 하고 물었더니, 엄마가 있단다. 그럼 엄마가 뭐라 안 해? 하고 물었더니, 그리 살가운 사람이 아니란다. 너무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해서 이걸 곧이곧대로 들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아, 주님!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5:23).” 주가 아니시면 감당이 안 된다.
얘만 그러면 이 아이의 문제겠다 싶은데, 공부할 때 핸드폰을 뺏었더니 계속 잠만 자는 거야… 하고 아내는 누구 걱정을 하였다. 그야말로 애들이 다 그런다. 내남없이 똑같다. 그러니 그런 애를 우리가 무슨 수로 감당할까? 자폐아이나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애라면 그러려니 하고 돌보면 되겠지만 이건 나름 정상이다 여기며 저마다 온전하게 산다고 하는데도 다들 저 모양이니, 이 시대의 문제일까? 극성을 떠는 부모나 방기하는 부모나 그게 어찌 부모들만의 책임일까? 아, 속상하고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24).” 그래서도 주밖에 의지할 이가 없다. 나는 자꾸 안정제를 먹으며 진정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주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하는 오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의 전으로 오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이 자리를 지키며 주를 온전히 바라는 것은 나의 자세이다. 그러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하는 오늘 다윗의 고백이 내 것이 된다(시 15:1).
그렇다면 저는 이르기를,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먼저는 주 앞에 정직해야 하고, 주의 공의를 실천해야 하며, 내 마음에 진실을 말한다. 또한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남을 뭐라 하고 저를 나무랄 게 아니라,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더욱 주를 바라는 게 나의 일이었다(2-4). 정작 우리가 아이를 바꿀 수는 없다. 그 마음을 열 수도 없고, 주의 영을 부어줄 수도 없다. 다만 여기 있는 것, 주의 손에 이끌리어 주의 전을 버려두지 않는 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는 오늘 다윗의 고백이 내 것이어야 한다(5). 이로써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 3:2).”
세상이 점점 그러면 그럴수록, 내 곁에 두시는 아이들이 또는 사람들이 어쩌다 그렇고 또 그런 모양인지… 차라리 지어낸 말이었으면 좋겠는데, 늘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으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5).” 주께 아뢰고 또한 구하는 수밖에.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주의 은총을 사모하게 하신다. 은혜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 믿음으로 묵묵히 이 길을 준행할 수 있도록….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딛전 1: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