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전봉석 2020. 1. 22. 06:5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 10:3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8:7

 

 

우리 믿는 자의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이 죽을 맛이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감사뿐이었고 모든 게 다 은혜였다. 안 믿는 자의 과정은 화려하고 부럽고 온통 기대뿐이었는데 돌아보면 허망할 따름이었다. 에스더서의 결말은 간소하고 간략하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10:3).”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오늘 시편의 언어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28:7).” 현실은 비록 어떠하였다 해도 그 결과는 상상도 못할 기쁨이고 찬송뿐이다.

 

아이의 묵상 글에서 전날에 공황이 와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읽고 하루 종일 마음이 쓰여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오전에 오는 아이와 두 시에 오는 아이가 차례로 마음을 어렵게 하여 저녁께는 심란하기도 하였다. 받아들여야지! 그것도 주를 바라는 방식의 하나이다. 나는 누구에게 말하다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들었다. 두 시에 오는 아이는 지독한 무력증에 빠졌고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원래 무기력은 그런 것이야, 하고 말해주어도 아이는 그것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끌끌, 혀를 찰 뿐 이제는 뭐라 야단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애들 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그럼에도 아이가 글방에 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저 한정된 내 곁의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님 없이 사는 데 길들여져 있는 것인지! 저들의 특징은 공통적이었다.

 

첫째, 그 마음이 허망하다. 허망하여 허망한 것으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4:18).” 둘째는 총명이 어두워졌다. 분간을 못한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19).” 그것은 셋째, 무지함 때문이다.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귀히 여긴다. 그러니까 넷째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 살았으나 죽었다. 다섯째는 감각 없는 자들이다. 여섯째는 그래서 자신을 방탕한 데 방임한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 일곱째는 그래서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왜들 그러내하면 여덟째, 예수를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0).”

 

이를 어찌 내가 알게 할 수 있겠나? 하나님의 조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119:18).”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나는 누구와 통화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령 아이 일 때문에 아이엄마가 곤욕을 치르고 그 인생이 고단한 것 같으나 그것으로저는 주님을 만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섬긴다. 즉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 마음이 곤란한 나의 경우도 그것으로주를 더욱 의뢰하고 따른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4:21).”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고 하나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일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2-24).”

 

이와 같은 말씀이 잔인한 게 아니라 그처럼 억지 부리고 끝끝내 놓지 않으려하는 우리의 고약한 옛 사람이 문제였다. 죽어도 가정을 버리고 떠난 남편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니 그의 아들은 어찌 사랑할까? 엄마의 아이와 아빠의 아이 사이에서 난 저 아이는 우리의 동생이 될 수 있을까? 서로가 애매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기력하게 서로의 침묵을 방임하는 것뿐이다. 그러려니 하면서 그저 혀를 끌끌, 차고 돌아서면 그만인 것이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는 없고 마음만 있으니, 생각은 생각을 이룰 수 없다. 생각만으로는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야단도 치다 같이 웃기도 하다, 화가 나고 또 속상하기도 하여서그게 다 그 부모 때문인 것만 같아서차라리 그럴 바에는 떨어져 살아야지, 이혼은 했으면서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다 큰 두 딸아이가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자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두 사람은 떠나기로 했으니, 아이 마음은 은연중에 그와 같은 이별을 늦추는 중이다. 성장하기를 멈춘 것이다. 차마 나는 나의 이 어설픈 분석을 아이에게 적용하여 말해줄 수는 없었다. 할 거예요, 할 수 있어요, 하면 또 해요, 하는 식의 아이의 너스레가 안쓰러웠던 것은 그것이다.

 

, 주님!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는 언제가 서로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고 주 앞에 설 것이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은 하나도 이루어진 게 없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부디 나에게 보이는 것을 아이에게 들려줄 수만 있다면. 나는 아이를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그러든가 말든가 오게 할 수도 없고, 나는 날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주의 이름을 되뇐다. 주님, 하고 부르며 아이를 생각하고 아이를 생각하다 주여, 하고 부른다. 반드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신뢰한다. 그것은 저 아이가 그럼에도 나 같은 자에게 오고, 와서는 또 똑같은 행동으로 사람을 뒤집어놓으면서도 오기는 하고 오려고 하는 이 일에 대하여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3:20).”

 

우리는 더욱 의지할 뿐이다.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나약함에 대하여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1).” 나는 교회 안에서 아이를 맞이하고 위하고 안타까워하며 격려한다. 나는 결코 아이의 걸음을 대신 뗄 수 없고 그 마음을 조금도 열고 들어갈 수 없다. 그저 나를 여기에 두신 이가 또한 우리의 시간을 관여하고 계심을. 그러므로 답은 하나뿐이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3-24).” 이를 위하여 성령이 내 안에 저 아이를 싫어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셨다.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아이에게 고백한다. 참 네가 싫다. 너 같은 애를 숱하게 봤다. 내가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 마음만 앞서 뭔가 기를 쓰고 마음을 다했던 아이들치고 지금 내 앞에 어떤 성과로 남아 있는 애가 없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성령을 의지한다. 주께서 책임지시기를 요구한다. 내가 다 망쳐놓은 일을 하나님이 수습해주실 것을 바란다. 어린애가 더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아버지를 부르는 것처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나는 뻔뻔하게도 이와 같은 말씀을 붙든다. 염치가 없고 송구할 따름이다. 의기소침하고 민망하여서 주를 바란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지만 나는 이를 거듭한다. 내가 또 그럴 줄 알았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또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7:9).”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다시 또 엎드린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 나는 염치없지만 주만 바란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28:1).” 이에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6).” 그러므로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7).”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8).” 그리하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