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전봉석 2020. 3. 2. 06:55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기 40:4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시편 68:19

 

 

주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자세는 단 하나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 그 앞에서 할 말이 많은 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5:8).” 주 앞에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욥의 고백과 같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7:17).” 다윗의 고백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8:4).” 그처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일상이 주의 섭리와 간섭 가운데 있다는 것을. 때론 그것이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부당하고 억울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해도.

 

가령 요셉의 증언이 그 확실한 예가 된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 말이 그렇지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보복을 하고 원수를 갚아도 시원찮을 일에 대하여, 저는 하나님의 심중을 헤아려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그러므로 우리 삶은 그 일상이 그대로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8:1).” 이는 우리가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도 함께 드려지는 찬송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이런 시국에 과연 우리에게 이와 같은 말씀이 귀에 들어올까?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나고, 이단이 속출하고, 저마다의 주장과 자기 권리를 내세우느라 흉흉한 이 때에 그래서 더욱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온전하여야 하는 것이었으니, 우리 삶의 냄새는 어떠한가?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전 2:15-16).” 우리는 다만 사람을 보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와 그의 의를 위하여서 일을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7).”

 

예배로서의 삶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9).” 이를 가지고 우리는 주일을 지켰다. 큰 교회는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라 예배를 모두 온라인으로 돌렸다. 덕분에 딸애가 모처럼 같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늘 아픈 아이는 자기 자리를 지켰고, 우리는 묵묵히 주일을 더했다.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따르는 것이겠으나 내 주장을 더하지 않는 일곧 우리는 하나님의 서신이 된 자라. 누군가에게 읽혀져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그러할 때 무엇으로 읽힐 것인가? 곧 나의 약함이 주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 아이가 온전하였다면 저처럼 주를 바라고 그 마음이 절박하였을까? 내가 나 된 게 내 수고와 애씀의 결과였다면 나는 과연 나의 주장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7:15).” 애써 수고하며 죽어라 하고 그 신앙과 믿음을 과신하는 자들에 대한 허망함이여그러니 성경은 지혜를 더하신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6-17).” ‘지나치게내가 무엇을 이루는 일처럼 덧없는 허상도 없다. 감옥에 갇혀서도 무슨 투사인 것처럼 사람들을 선동하는 누구나 어디 은신처에 숨어 자기 안위를 돌보는 어디 교주의 민낯이나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얽매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주의 은혜이다.

 

굳이 저들로 인하여 노여워할 거 없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37:1-2).” 일장춘몽이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다 그것도 새옹지마다. 나는 오히려 나의 아이와 저 아이들이 살아야 할 앞날을 두고 걱정한다. 이제 전연병은 주기적으로 그 간극을 더하고 있고 지구의 자연생태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믿음 안에서 잘 견디며 오전히 주만 바라며 살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앞날이 갑갑하다가도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8:5).” 하나님의 은총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 그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7:17-18).” 하면 이와 같은 단련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말씀으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 더하시는 하루하루의 삶이 때론 고되고 우울하고 외롭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 오히려 주를 더욱 바라고 의뢰하며 맡기신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었다. 그러니 주만 기억하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12:7).” 주께서 나에게 행하셨던 일을 보라.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144:3-4).” 일찍이 죽어 마땅하였을 나를 오늘에까지 인도하시고 이 귀한 사명의 자리를 맡기신 것이라면, 나의 남은 날은 온전히 주의 것이기를.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39:11).” 이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는 도리어 주께만 감사하게 하는 깨우침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내가 더는 다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 관심 받고 인정받는 일에서도 놓여나 오직 주의 말씀만을 의뢰하게 하시려고, 이 땅의 그 무엇도 무서워할 게 아닌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9:2).” 그러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나? 마음은 우울하고 몸은 시원찮았지만 그러므로 주를 바라며 주께 의뢰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참으로 큰 축복이었다. 이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운행하신다는 진리 앞에서, 나의 입으로 주를 찬송한다는 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3:7-8).”

 

함부로 입 벌이지 말자. 뭐라 누구를 탓하고 정죄하지도 말자.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였으니, 이 모든 일들이 주께 합당한 것이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4:11).” 그러므로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 이에 나는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머금고 음미한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6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