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전봉석 2020. 3. 11. 07:09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7:3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편 77:11-12

 

 

다들 어려운 시국이다. 새로 개업한 옆 사무실 누구는 죽상이다. 복도에서 마주쳐 안부를 물으면 죽겠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생각이실까? 이럴 때 우리는 주의 본심을 알고 싶어 한다. 저마다 힘든 가운데서 주를 원망한다. 주께 책임을 돌린다. 이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를 게 없다. 목사이다 보니 내게 야유하듯 하나님이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하는 투다. 그러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실제 모든 고통과 근심의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오히려 하나님은 늘 그것을 수습하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전염병이 창궐한 것도, 저의 사업장이 점점 더 어려움에 몰리는 까닭도 실은 다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와 나란히 하고 있는 노래방을 철거하는 것을 보며 욕지기가 저절로 나온다. 수천만 원을 들여 덕지덕지 치장을 하여 인테리어를 꾸몄던 것을 도로 뜯어내는데 그 철거비만 2천만 원이 넘게 소요된다고 하니나오는 폐기물 쓰레기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분진에 소음에 온 건물이 다 같이 난리다.

 

그러면서 이를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참 너무 염치가 없다. 운이 없네, 재수가 없네 하는 따위의 말도상대적으로 형통하고 잘 풀려 운이 좋았다고 하는 소리도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예레미야는 이를 슬픈 언어로 서술하였다.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3:32).” 다시 말해 운이 좋다고 하는 소리도 나빴다고 하는 소리도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하지만 이를 풍부한 인자로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33).” 누구와 복도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다, 그와 같은 투정을 들으며 이 모든 일의 책임이란 것이 실은 사람에게 있음을. 그와 같은 짓을 한 사람이나,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는 억울한 사람이나, 실은 자기 죄 때문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즉 이처럼 모질고 악랄한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정한 누가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해 툭, 하고 던지는 말이나 무관심한 표정도 모두 다르지 않은 폭력이다. 또한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즉 그만한 힘과 권력과 권세를 부여 받은 것을 굽게 하여 스스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로서 부패한 정치인이나 검사, 판사 들은 물론 그만한 위치의 사람들도 있다.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34-36).”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33).” 모든 인생으로’ 근심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다. 모든 인생으로다.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하시겠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인자를 베푸신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6:35).” 악인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선대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145:9).” 그와 같이 주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에 대해 내가 누구에게 말을 한들 저가 알겠으며 듣기나 하겠나? 무리하게 광고를 하고 실내를 꾸미고 그 돈이 다 회수되기까지 그야말로 운빨이 맞아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가 하면 바로 문 앞에서 다른 영업장 철거가 2주째 이루어지며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으니억울하고 짜증나는 일이기는 하겠다.

 

일련의 상황을 보며 누가 도와주네, 어쩌네 하는 말에도 나는 요지부동 지금으로 족하다고 하니, 아내조차 답답하게 여기는 것인데. 성경은 참 놀랍다. 족한 줄 알고 사는 게 지혜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다른 데 정신이 팔리면 알지 못하던 것인데,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33:8).” 어째서 그런가? 예레미야는 앞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결국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런데 예언하신다. 70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이다. 곧 주의 선한 말로 성취할 것이다. 문득 듣기로는 아주 어려서 끌려갔다 해도 70년이면 노인이 다 되는데, 그게 무슨 약속의 말씀이고 복이 되는 소리이겠나 싶겠지만, 결국은 끝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영원한 게 아니란 소리이지 않나?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분명한 마음을 알게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11).” 즉 오늘의 이러한 고통이 결코 하나님도 좋지 않으신 것이다. 마치 자식이 고통을 당하면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안쓰러워하고 애태우는 부모의 마음처럼,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모든 어려움이 실은 다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 일을 일일이 선으로 바꾸어 수습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면서 그러는 동안 괴로움 가운데 있는 모든 인생으로인하여 하나님도 괴로우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의도, 바람 곧 본심은 무엇이신가? 이를 성경은 누누이 가르치고 있으신 게 아닌가? 그리고 깨달아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이내 우리 안에 소망을 이루시는 줄 앎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이 역경과 고통이 더 나은 영생을 위함이다.

 

누구의 시에서처럼 기차가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어버릴 것인가? 뛰어내릴 것인가? 참고 견디면 곧 광명한 천지가 나오나니 기관사를 믿고 가만히 참는 것이다.’ 때론 끝도 없이 길고 모질어서, 70년이라는 너무 긴 시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그 또한 끝이 있다! 어쨌든 끝난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끝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어쩌다 오전에 오는 아이와 거의 종일 같이 있으면서 답답하고 한심하고 화도 나고 짜증스럽다가도 아, 그러니 그 엄마는 오죽하겠나? 그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겨울까? 하는 생각에 서러움이또한 그 당사자인 아이는 또 오죽하겠나? 병적으로 쉴 새 없이 지껄여대고, 허황된 망상을 하고 이를 행하려고 조바심치고, 그럴 수 없는 현실과 제지하는 사람들로 인해 좌절하는저의 인생은 또 얼마나 피곤하겠나? 뜬금없이 녀석은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고 싶다고 계속 똑같은 말을 해댔다. 어디 그런 기계가 없냐는 둥 그렇게 녹음하는 데 얼마나 드느냐는 둥, 같은 층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 가서 알아보고 오면 안 되냐는 둥. , 저마다의 고통이 끊일 날이 없구나! 그러니 어쩐다?

 

이를 슬피 우는 예레미야의 애곡을 더 들어보자.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3:28).” 이를 하나님이 우리 인생으로 메우셨다. 꽉꽉 들어찼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29).” 누구에게 말한다 해도 소용 없고 위로도 안 되고 오히려 조롱거리만 될 바에 땅에 대고 하소연하라. 혹시 알겠나? 소망이 이루어질지? 참다 참다 못 견디겠어서 자신의 뺨을 때린들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30).” 그와 같은 치욕으로 스스로 배부를 일인가? 이 땅에 그 무엇도 위로가 되겠나? 잠시 잊고자 하여 술을 찾고 친구를 찾고 누구에서 푸념을 해봐도 다 부질없는 것이었으니.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기차가 터널을 달리는데 어쨌든 그럼 나올 테지! 기관사를 믿고 그냥 있어야지, 그걸 못 참고 기차표를 찢어버릴 것인가?

 

성경에 길이 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2).” 다시 말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이는 결국 성경의 진리다. 어차피 그렇다면!! 다른 수 없다. 오늘 잠언도 일깨운다.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7:3).” 허튼 데 용 쓰지 말고, 혹시나 하고 어디 다른 데 마음 두지 말고,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77:11-12).” 성경의 가르침은 한결같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7: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