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힘을 얻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 14:26-2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시편 84:5-6
살면 살수록 산다는 일이 참 고단하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어서, 나는 내가 좀 의연하였으면 좋겠다. 믿음으로 굳건하여 의젓하였으면 좋겠다. 하나님만 의뢰함으로 강하고 담대하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참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주 앞에 선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처럼 말씀을 묵상할 때면 주만 바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돌아서기 무섭게 조바심과 근심과 걱정이 몰려든다. 그러할 때 오늘의 말씀이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4:26-27).” 그와 같은 견고한 의뢰는 저절로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불현듯 생겨나지도 않는다.
속이 눅눅하면 소리는 안으로 감겨 멀리 가 닿지 못한다. 바람이 들어서 바짝 마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고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나무판을 만날 수 있다고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 말했다. 소금도 그 맛이 깊어지기 위해 물기가 증발하고 축축한 물기가 바짝 건조되기까지 오랜 염장질은 되풀이 되어야 비로소 맛이 깊은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풀무에 녹인 쇠는 여러 번 담금질을 당하고 숱한 망치질에 비례하여 단단하여진다. 하물며 죄로 물든 우리의 영혼은 오죽할까? 같이 가정예배로 읽은 말씀에서의 한 구절이 뇌리에 남았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이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6).” 오늘 우리에게 더하시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우리를 고달프게 하지만 낙심하지 말라.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꾸짖으신다. 때가 이르렀을 때 많은 이들은 거절하고 각자의 생각과 옳고 그름에 매여 지낸다.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눅 14:17)” 복음을 들을 때에 이를 거절하는 이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18-20).” 다들 나름 바쁘고 정신이 없는 시절이다. 교회가 욕을 먹고 그 사용하는 용어가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자 우리 주인은 어찌하셨는가?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21).” 그래도 빈 자리가 있어,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문득 오늘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복된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죽겠다고 하면서도 생의 근본적인 문제보다 표면적인 이유들로 으르렁거리고 진리를 헐뜯는다.
그러할 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결론은 나를 포기하고 사는 것. 내 의지, 내 이상, 내 꿈, 내 생각, 내 방식 들을 모두 주 앞에 내려놓는 것. 필리핀이 질병으로 인해 전지역을 통제했다는 둥 생필품이 모자라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둥 들려오는 소문이 흉흉하여 나는 그곳에 있는 아들애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이번 사태로 필리핀 재외국민선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조금 더 일찍 그만두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종일 조바심을 내다 내가 먼저 진이 빠졌다. 그러할 때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그럼에도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주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새 힘을 얻는다.
그 사랑은 공연한 약속이 아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와 같은 말씀으로 새 힘을 얻었다가도 돌아서기 무섭게 근심이 또 염려가 나를 휘감고는 하는 일이었으니, 언제까지 이 일은 계속 되는 것일까? 과연 나는 믿음으로 굳건하여 내 생에 의연한 믿음을 가질 수나 있을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사태가 어떠하든 어떤 지경에 놓이든 내 안에 주로 인하여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라. 이미 다 주께서 이기신 환난이다. 어느 교회의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싸잡아 집단 이기주의로 내몰리고 있는 교회로 인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참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점점 저 극렬하여져 노아의 때처럼 될 것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비록 내가 하는 일이 표도 안 나고 오히려 번번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그러니 말씀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 주님만이 나의 구주시다. 죽는다 해도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귀하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그럼 어찌해야 할까?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오직 주를 신뢰함이라. 그러므로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20).” 지금은 그러할 때이다. 나대고 자기주장을 내세워 교회를 운운하며 신념을 가지고 덤빌 때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는 우둔할 따름이라.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여러모로 그런 세상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붙들고 어디에 의지하며 남은 생을 다할 것인가? 성경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외치신다. 곧 내가 의지하고 붙들고 도움을 구하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시 115:5-7).” 다들 사재기를 하고 금값은 오르고 혹시 몰라 스스로들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의 할 일은 오직 하나,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14).”
곧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 오늘 시편의 노래도 같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시 84:5-6).” 이보다 더 귀한 게 또 있을까? 주께서 나의 눈물 골짜기에 샘이 있게 하시며 이른 비로 채워주실 것을…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