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시편 89:11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일상이 얼마나 귀하였는지. 그저 사사롭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하루의 일과가 얼마나 소중하였었는지. 서로 마스크를 쓰고 악수 대신 멀찍이서 손을 흔드는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의 부대낌이 얼마나 감사하였는지를…. 코로나19가 우리의 실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하여도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이와 같은 은혜가 구호도 아니고, 또는 어떤 대항에 의한 쟁취도 아닌 것을. 종종 사람을 영웅으로 두고 갈 때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선다는 것을. 곧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 89:11).”
말씀을 되뇌어 묵상하다 보면 나의 사소하였던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였는지를. 자칫 허황된 것에 휘둘리기 쉬울 때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5).” 우리 찬양의 정도와 그 온전한 방향을 제시하는 길에는 고난이 좌표가 되어주는 것 같다. 문득 드는 생각이 고난이 없이는 온전한 길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 2:28-30).” 이와 같이 주를 바람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욱 주의 자비하심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사 44:3-4).” 이와 같은 말씀이 그 약속의 위로가 크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것이다.
아이는 의젓하였고 우리는 소박하게 예배를 드렸다. 다들 이런저런 제재와 나름의 방책으로 요란하게 주일을 보낼 때 우리는 늘 있는 그대로가 전부여서 홀가분하였다. 일주일 동안의 직장 생활을 잘 적응한 아이를 격려하고 이처럼 변함없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시간과 건강과 장소와 일상의 소소함이 감사하였다. 뭐 그리 대단한 이유와 상황을 들어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하는 일이 서글프지 우리처럼 있는 그대로 주 앞에 나아오고 주신 바 그 한 걸음으로 족한 것이 감사였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곧 이것으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소중하고 귀한 감사였다. 아이는 기본급을 받으면서도 감사하였고 점심시간에 올라가 쉴 수 있는 직장 내 옥상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엄마가 새로 사준 윗옷이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고 함께 돌아오며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수 있어서 소중하였다. 나는 아이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안에 충분한 감사가 교훈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3-4).”
누구는 한국은행에 다니면서도 좀 어떠냐? 하고 물으면 ‘그렇죠 뭐’ 하며 마지못해 다니는 사람처럼 지겨움을 감추지 않고, 누구는 약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면서도 주어지는 일이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듯 서러워하고, 누구는 사지육신 멀쩡한 몸을 가지고도 게으름으로 칠갑을 하고 늘어져 있고, 누구는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도 새로 어디에 눈을 돌리며 지금의 감사를 감사로 여기지 못하는 이들의 몹쓸 전염병에 대하여… 아, 이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을 사모할 수 있는 한 생의 삶에 대하여.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결국 우리의 감사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그리 하게 해주셔야 그리할 수 있다는 데서 새삼 은혜를 느낀다. 곧 주어진 것에서 누구는 감사로 누구는 시큰둥한 삶으로는 그러나 그 무엇도 우리로 그 사랑을 끊을 수 없나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성령이 우리를 이끄신다. 내가 두는 마음으로는 근심과 염려뿐이라. 짜증과 원망이 전부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행여 나의 그릇됨이 앞서지 않기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어려움도 주의 것이라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 이 모든 게 주의 선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4).” 여기서 우상은 내 의지다. 내 마음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나의 결단이다. 이를 깨뜨리기 위하여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결국 다 하나님이 하신다. 누구에게도 저의 학위가 저를 시무룩하게 하지 않기를, 또는 누구의 널찍한 집 한 칸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발판이 되지 않기를. 나는 아이의 소박한 감사를 저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이 소중함에 대하여서도.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바라며 주께 나아갈 수 있는 그 자체로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7).” 그러기 위하여 내가 취하여야 하는 주님의 살과 피의 말씀으로 그 소중한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지혜자는 이른다.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9:22).” 비록 주의 가난이나 질병이 우리를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좌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27).” 곧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8).”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에 새겨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은총이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 89:11).”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5).” 그것이 오늘의 소박한 꿈이고 소망이 되기를. 이는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24).” 주가 이루어 가신다. 비록 이 모든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33-34).” 고로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5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