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전봉석 2020. 3. 24. 07:05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잠언 2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편 90:9

 

 

돌아보며 잠잠히 주의 뜻을 기리는 시간이다. 결코 먼 데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딸아이 직장의 건물에서 70대 남성, 확진자가 나왔다. 그나마 저는 고층이라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 서로 접촉이 없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이런저런 상황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럼에도 젊은 아이들은 클럽에 몰리고 겁 없이 쏟아져 나와 남의 일 보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신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3:26).” 나서서 우리가 뭘 어찌할 수도 없고, 그런다 한들 그 한계는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마치 오늘의 싸움은 얼마나 더 주를 바라는가,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딸애의 상황을 듣고 덜컥, 겁부터 나고 아들애의 필리핀 상황은 더욱 난처하게 되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직 주만을 바란다. 누군들 자부할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그러니 오늘 말씀의 초점은 그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20:9).” 스스로 자신하고 자부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90:9).” 그러니 젊음이 좋으나 천하무적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무모함이 생을 재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 주가 주셔야 하는 마음이다. 다들 자신에게 벌어질 일에 대하여는 멀찍이 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

 

내 비록 살아온 날수가 아직 적으나 돌아보면 잠깐이어서 두려울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3-4).” 오늘 시인은 그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30:15-16).” 나는 병적이라,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주체할 수 없어서 안정제를 의지하고 진정이 될 때까지 주의 이름을 되뇔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신다. 내 안에 두려움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바라는가?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51:6).”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두려움으로 보내는 혼자의 시간이 싫지 않다. 묵상글을 다시 읽고 성경을 글씨로 옮겨 쓰기도 하면서, 책을 더듬어 앞선 믿음의 사람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어떠하든 이 길은 끝이 있고 그 너머의 영생의 삶을 소망함으로 안위와 격려를 얻는다. 그 길은 하나뿐이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어느 특정 교단도 아니고, 어느 사람의 기지도 아니며, 저들이 내세우는 기치도 아니어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14:12).” 나는 도리어 이 진리가 참 좋다. 다들 미친 듯이 믿는 믿음도 부럽지가 않다. 옳다고 여기는 것에 목숨 걸고 마치 순교자가 되려는 듯 이 시대의 영웅이 곳곳에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다만 우리는 은혜뿐이고 그 주신 바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뿐이다.

 

나는 내가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또한 다행이다. 누구처럼 거리로 나서지도 않고 또는 죽어라 하고 믿음을 마치 내가 만들어내는 일인 것처럼 열심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말이다. 그저 염치없고 송구하나 돼지우리 곁에서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는 탕자처럼 내가 지금 이 꼴로 뭐 하고 있나? 하는 깨달음이면 족한 것이다. 그러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15:17-18).” 비록 고개도 들 수 없이 부끄럽고 송구한 일일 것이나, 더는 나와 우상이 무슨 상관인가? 다들 어쩌고저쩌고 저들이 추구하는 의와 선과 보람이 무슨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14:8).” 누가 어떤 것을 추구하고 그와 같은 보람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한들, 이 세상의 신은 자신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저들은 저들의 구원을 이루시라. 그와 같은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아니면 마치 믿음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죽어라 하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저들의 믿음이 두렵다. 그 신앙의 정도가 어렵다. 저들은 먹을 게 없어서 주리는 게 아니고,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게 아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한 달에 한두 번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기독교 신문을 보면서도 교계의 다양한 역할과 주장을 읽다보면 나는 자꾸 숨이 턱턱 막힌다. 무엇이 저들을 용사로 만들고, 마치 이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될 투사로 삼은 것일까? 무슨 기독교당을 만들고 이번 선거에 뛰어드는 일에 교회가 또는 어느 저명한 원로 목사의 주장이 나는 자꾸 부끄럽고 두렵고 속상하였다. 도대체 이 시대를 구원하여야 하는 투사로 우리를 부르셨는가? 더 나은 사회, 인류공영을 위한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던가?

 

그러면서 그 안에 암투와 모략과 서로의 분쟁이 난무하니 저들끼리도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물어대는 것이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11:27-28).” 말씀뿐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어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묵상하고 돌이켜 스스로 삼가 주의 뜻을 바라는 것이 복이다. 그날이 오면 나라도 권세도 인종도 시대도 다 하나일 뿐인데누가 감히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20:9).” 스스로 믿고 자부하는 일만큼 무서운 죄도 없다. 결국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10).” 모르겠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한결같지 못하여서 다만 한결같은 주의 사랑과 긍휼하심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 모든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12).”

 

말씀을 끌어당겨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복이다. 비록 나는 터무니없이 약하고 한심할 정도로 소심하여서, 고혈압 약을 타러 병원에 갔다가 사람들로 가득한 대기실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고, 딸애의 동선이 혹시 70대 어느 확진자와 겹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딸애가 퇴근하고 돌아오자 갑자가 속이 볶이고 뒤틀려 불안을 이길 수 없으며, 아들애의 필리핀 사정을 살피다가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지만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4).” 나는 오늘 말씀 앞에 다시 앉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27).” 오직 주만을 바람이여!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90:3-4).” 그러하오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


결국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 다만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