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전봉석 2020. 4. 6. 06:48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전도서 2:14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12-14

 

 

말씀 앞에 앉을 수 있는 게 은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이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곧 주의 살아계신 영이라.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103:20).” 고로 우리의 영광을 주를 송축함이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2:14).”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우리에게 끼치는 이 세상의 권세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때마다 무얼 어떻게 좀 해보려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망손이라. 오히려 망가뜨리고 부수고 못 쓰게 하는 것들이었으나, 오늘 말씀은 그래서 더욱 주의 은혜로 사는 것을 묵상하게 하신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그렇지 않으면 매일 시달리는 죄책과 그에 따른 양심의 소리에 귀먹고 눈이 어두워 살 수가 없을 것을, 이를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이는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이라.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는 오늘 시인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다(103:12-14).

 

너나없이 모든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5).” 마치 우리에게는 불행이 끼치지 못할 것처럼 굴며 사나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16-17).” 유한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안목으로 이를 어찌 확인할 수 있겠나만,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18).” 말씀을 사모하고 이를 지켜 그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과 그리 행함이 주의 거룩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19).” 결국 주의 온전한 관심은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이 아니라 저 영원한 영생의 나라에서 함께 누릴 영광의 복된 날들이었으니, 그리하여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도다. 그러니 이를 아무리 뭐라 이른들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는 것이어서, 말해주어도 알 수 없고 알려고 하는 마음조차 생경하여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니, 그것으로도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2:14).”

 

이와 같은 말씀을 되뇌며 오래 머금고 곱씹을 수 있는 이 마음이 주의 것이라. 은혜라. 은총이었다. 나 같이 우둔하고 늘 육신의 지배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도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는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오히려 더욱 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있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더욱 송구할 따름이지만 그래서 절실할 수 있다. 주 없이 살 수 없고 말씀 없이는 이제 남은 생을 견디거나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내 아무리 누구를 향한 마음을 선히 하고, 앞날을 염려하며 대비한다 해도,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11).” 언제까지 공부방 아이들을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아내도 일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는 잠자코 주께 맡기기로 하였다. 누구에 대하여도 내가 안달한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그러려니, 더는 내 마음이 앞서지 않기로 하였다. 주신 대로 살다가는 것이 복이라. 아이를 볼 때면 저가 곧 내 선생이다.

 

장애가 있으면 장애를 가지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으면 약물로 다스리면서도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 자체가 큰 교훈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내 곁에 두시는 이 가운데 가장 성경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저 아이를 내세우겠다. 무슨 소린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는 종종 갈피를 잡을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그것을 더하신 이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괄시와 심지어는 가족 간의 멸시에도 아이는 또한 아이에게 맡기신 생애를 다하는 것이었으니,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13).” 여기서의 지혜란 주를 바람이라. 그의 머리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의 눈이 있는 것이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14).” 그 곁을 정상인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매한 자들뿐이라. 어둠 속에 있으니 자신들이 보기는 보아도 보는 것을 알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12:20).” 이를 증거하는 것이 주신 바 그 날을 다하는 일이었다. 그 맡기신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저는 다리로든 온전치 못한 생각으로든, 남의 괄시를 받든 누구의 인정의 받든 개의치 않으며, 오직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는 일이란 주신 바 맡기신 그 삶을 사는 것이다. 자기 기준이 아니라, 온전히 주를 바람으로. 그것이 때론 내 이해와 상식을 초월하고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이 슬프고 부당하고 억울하게 여겨진다 해도, 곁과 속이 다른 삶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7:6).” 다들 자기 마음이 우선이라. 감정이 상하면 마음도 떨어져서 더는 뭐라 해도 들으려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3:25).” 두려운 말씀이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어 부끄럽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 이와 같은 말씀이 내게 들리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려니, 바울과 같이 상한 심령으로 주께 고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9:1).” 그것이 오히려 안일한 영혼의 늪에서 사는 것보다 복이로다.

 

그러니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2:22).” 그저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23).” 인생의 덧없음이 죄의 결과라. 아담 이래로 모든 이의 숙명이어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4).” 그러니 무엇이 가장 귀한 복이겠나? 오늘 전도자는 이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26).” 인생에 있을 동안 누가 그러한지 누가 그러하지 못할지를 누가 알 수 있으랴. 다만 주를 의뢰하고 주께만 나아가는 자가 복이었다.

 

누구 때문에 속상해하다 그만하기로 했다. 아내가 아이들 공부방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하여 더는 뭐라 하지 않기로 했다. 사방팔방 내가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얻어질 일은 하나도 없었다. 더는 말하지 말자. 예배 마치고 부산하게 정리정돈을 하며 새로이 수업준비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다른 뾰족한 수 없다. 실제와 고백으로 날마다 드려지는 삶으로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백날 내가 용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면, 맡기는 게 상책인 것을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요즘처럼 이 말씀이 시원한 얼음냉수 같을 때도 없다. 염려와 근심으로 목이 타고 갈증이 나서 죽겠다가도 다 맡기라.’ 하실 때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래 좋다. 인생 뭐 있나!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03:15).” 이는 허무주의자의 노래가 아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17-19).” 다른 무엇으로 다스림을 당하는지 내가 알 길은 없으나,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20).” 그 능력이 은혜였다. 고로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