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전봉석 2020. 4. 7. 07:09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편 104:24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1).” 하시는 말씀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그걸 좀 어찌 당겨보려 하고 미뤄보려 하려니까 사는 게 이리 고달픈가보다. 그렇게 무엇을 얻는다 해도 그것으로 오히려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고, 아내의 미모로 자신이 해를 당할까 하여 누이라 속이면서아브라함의 행적도 다를 게 없었다. 어찌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는데 성공했던 야곱의 족적은 또 어떻고? 결국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여 얻은 라헬은 길에 묻고 마지못해 얻은 레아를 조상의 묘지에 묻었으니,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49:31).” 사람 일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세상만사가 내 맘 같지가 않다.

 

걷다가 갑자기 삐끗한 허리 때문에 순간 식은땀이 날 정도로 통증이 오고 종일 어르고 달래느라 쩔쩔매던 육신이 그래도 저녁이 되면서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어떤 일 앞에서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스스로 살 궁리를 하느라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안의 리브가가 있다.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만 하라는 것이다(27:8).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어머니같은 존재가 있고, 누구에게도 그런 리브가의 역할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13).” 그러다 일이 틀어졌을 때도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하고 나름의 방도를 강구했다(43). 어쩌면 우리의 확신과 기질은 우리를 더욱 망가뜨린다. 우리는 그렇듯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이 아니다.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나뭇가지일 뿐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4-5).” 그럼에도 주를 떠나서 기꺼이 나의 생을 활개 치며 자기 주도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었으니, 내 안의 의존적인 리브가나 누군가에게 주도적인 리브가가 되는 일은 모두가 어리석을 따름이었다. 성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기다리라는 것이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은 살면서 저의 성장하는 것을 보고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이미 리브가의 태중에서 받은 약속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스스로가 리브가가 되어 더 나은 방도를 찾는 일이었으니.

 

오늘 전도서의 말씀은 이를 두고 일갈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모든 게 다 범사에 때가 있었다. 이를 측량할 수 없으니 누구는 리브가를 필요로 하고 그의 말을 따랐고, 누구는 무던히 말씀만을 의뢰하며 기다렸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104:24).” 이와 같은 고백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 소아신경외과의 벤 카슨은 흑인 의사로 최초의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사람이다. 저는 어릴 적에 열등아였고 늘 낙제를 맞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한 번도 저의 성적에 대해 안달하지 않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무룩하게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괜찮다, 다만 하나님만 의뢰하고 살아라.” 저의 어머니의 가르침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 지금의 현실과 처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조급해 할 게 없다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쳤다. 결국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사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게 아니다. 생활이 개선되고 남들처럼, 보다 나은 윤택한 삶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별개의 삶, 곧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런 우리의 삶은 안 믿는 이들에게는 이상한, 미친 것과 다를 게 없는 삶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13).” 물론 사람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칭찬한다. 좋은 뜻으로 여기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슬슬 멸시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삶 같아서 광신자 또는 사이비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어 한다. 물론 일부러 그리 별종인 삶을 사는 이단들도 있다. 가정을 등지고 하던 일을 멈추고 모든 것을 작파하고 광적으로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로 싸잡아서 나중에는 경건한 사람들도 매도당한다. 나는 종종 이와 같은 사람들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제는 처음 누구들의 호의와 칭찬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좋게 여기며 다가오던 사람들이 정작 자기들과 다르고, 또는 자신들의 생활이 부대끼게 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면 영락없이 모멸과 멸시로 치부하게 되어 있다. 별종, 이상한 사람 심지어는 아픈 사람으로 여겨 그러려니 하고 딱하게 여기기도 한다.

 

더는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는 저들로 인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는 반응이 오히려 정상적이다. 성경은 그럴 때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신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30:15).” 잠잠히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37:7).” 그러니 누구를 찾아가 저를 설득하고 저에게 설명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꼭 리브가가 되려는 처사와 같다.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6).”

 

오늘 말씀은 이를 일깨우시기에 충분하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는데 그 때를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리브가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문득 드는 생각이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야곱으로부터 분리시키셨다. 저가 계속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응석받이로 있었다면 훗날 하나님이 저를 그처럼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겠나? 비록 형들의 미움으로 노예로 팔렸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인생역경이 이어졌지만 그것으로 저는 더욱 주를 신뢰하는 이가 되었다. 신앙으로 고백한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3:5).” 내가 잠들든지 깨어 있든지 나를 붙드시고 주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를 지혜자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3:10).”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에야 쉬게 하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법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말씀 앞에서 인생을 새로 배운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므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104: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