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봉석 2020. 4. 9. 07:06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서 5:3, 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편 106:15

 

 

어느 가난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날마다 먼 길을 걸어가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그런데 물동이가 금이 가서 물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면 항상 반통밖에 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소녀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소녀는 고집처럼 그 물동이를 버리지 않고 늘 정성껏 사용하였다. 하루는 물동이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서 아가씨는 금이 간 저를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하시나요? 그러자 소녀는 오고가는 길가를 보고, 또 집에 도착해 거실 화병에 꽂아둔 꽃을 보여주며 말했다. 비록 금이 갔으나 그 사이로 흐른 물로 길가의 꽃들이 자라나지 않니? 그래서 나는 그때마다 씨를 받아서 물이 쏟아지는 곳으로 뿌려두었단다.’ 이 이야기는 어느 우화집에서 읽은 내용으로 새삼 떠오를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심지어는 예수께서도 질그릇으로 오셔서 몸소 깨지고 금이 가서 그 안에 담긴 성령의 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우리에게 부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은 열매를 맺고 산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그리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이름은> 곧 부우심은 첫째,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5:11).” 둘째, 서로를 사랑하게 하려 하심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17).” 셋째, 넘어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16:1).” 넷째, 기억나게 하려 하심이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4).” 다섯째,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이를 위해 예수님도 질그릇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깨어지시고 부어지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를 머금으며 자라간다. 그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첫째, 게으르지 않게 한다. 둘째, 오래 참게 한다. 셋째, 약속을 받게 한다. 넷째, 앞서 간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게 한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13:7).” 그렇다고 성경은 저들을 우리에게 영웅으로 세우지 않는다. 세상 이치와 다르다. 세상은 영웅을 내세우고 사람들을 부추겨 추앙하며 저를 숭배하도록 한다. 그것으로 단합을 꾀하고 마음의 위로와 이정표를 삼고자 한다. 하지만 성경은 의도적으로 믿음의 영웅들을 질그릇에 담았다. 저들도 깨지지 않고 금 가지 않은 인물이 없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잘하고 자기 판단을 앞세우곤 하였다. 야곱은 사기꾼 같이 협잡하였고 자식을 편애하여 형제간의 골을 키웠다. 다윗은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살인하였다. 모세는 살인자요, 도망자였다. 베드로는 신성모독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우선하였다. 둘러보면 어느 한 사람도 온전한 자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전하심을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13:7).” 저들이 온전한 것은 그 안에 담으신 보배 때문이다. 저들의 배에서는 한결같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왔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7:38).” 혼자 있는 시간이 나라고 안 외롭겠나? 종일 들어앉아 있다 보면 누구라도 왔으면 싶다. 아무나 붙들고 통화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점심 때 산책을 나가 천천히 걷는데 허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었더니 영락없이 불쌍한 노인이라. 내 앞으로 길게 늘어지는 나의 그림자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 말씀이 참 좋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성경은 성경으로 이어져서 나는 동시에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가 희망의 노래로 들려 볼 때마다 묵상이 깊어지고 새삼 은혜를 받는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25-33



이를 쉽게 내 목소리로 읽는다면 묵묵히 주를 바라며 기다리는 게 복이 있다는 것인데 기다림은 구할 줄 아는 마음을 선사함으로, 구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은 선히 갚으신다. 그러니 주께 바라고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억지로라도 훈련이 되어야 할 일이다.’ 이를 못하니까 좀이 쑤시고 좀이 쑤시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더하신 멍에, 이를 금이 간 질그릇이라 해도 그것을 묵묵히 메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것도 하나님이 메우신 것임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혼자 앉아서 잠잠할 수 있다.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런데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되새길 때면 금이 간 물동이에서 흘러나온 물이 길가에 뿌려져서 꽃을 피우고, 그 꽃을 거실에 두어 늘 화사한 꽃 냄새가 가득하였다. 그러니 하나님은 두루 다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이를 안다면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그 입을 티끌에 처박고 입 좀 다물라는 소리다. 가만 있으면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 억울하고 분한가? 늙고 병들고, 장애가 있고, 남들보다 못한 오늘의 처지가 한탄스러운가?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곧 그럴 테면 그러라고 하라지! 내 그 수모는 주가 갚으실 것이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그러므로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이를 성경은 누차 강조하신다. 그리하여 이 모든 고생은 하나님이 정하신 게 아니다. 본래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신 것이다. 스스로들 그리 망쳐놓은 것을 하나님은 이를 바꾸어 선으로 되돌려 놓으시려, 스스로 깨지고 금이 간 질그릇으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부어주시고 가셨다. 문득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읽고, 또 누구와 통화를 하고 누구의 사연을 듣고 나의 처지도 돌아보며 입을 삐죽거리다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라.” 하는 애가서의 말씀이 떠올라 위로가 크다.


본래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이는 사는 일이 그런 것이어서,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이것이 지혜다(5:3, 7). 곧 마음은 그런데 여전히 세상 문화를 종교 문화로 둔갑하고 교회를 무슨 서비스업종으로 분류하여 목사가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고 교회는 더 많은 고객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듯 유튜브를 개설하고, 늙은 담임목사까지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며 힙합을 하고, 코로나로 걱정이 많은 성도들을 위로한답시고딸애가 출석하는 교회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가정예배에 앞서 한바탕 웃고 나니 슬픈 현실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106:15).” 몸집은 비대하여지는데 영혼은 쇠약해져가는 것만 같아서! 뭐라 하려다 그만두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5:2).” 우리는 다만 하나의 즐거움으로 족하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6:1).”


그러므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4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