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권능의 날에

전봉석 2020. 4. 13. 07:02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9:17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귀를 세우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바른 자세를 잃지 않게 한다. 세상이 어떠하든, 누가 뭐라 하든,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12:33).” 하는 말씀이 오늘 지혜자의 말과 중첩된다(9:17). 내게 두시는 주의 은혜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110:3).” 하시는 말씀이 왠지 소망으로 여겨진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

 

가만히 말씀을 음미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인생의 허무함을 엿볼 수 있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은 길에 묻고 젊어서 사랑하지 못했던 레아를 뒤늦게 귀히 여길 수 있었으니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49:31).” 평생 일구어 온 것이 어찌 우리 뜻대로 그러하던가. 그래서 성경은 내 마음을 요구하시는 거였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3:26).” 이것이 지혜라.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93:3).” 주를 바라며 그의 통치하심에 감사히 여기며 살 줄 아는 것이 복이다. 이를 베드로의 말로 정리하면 쓸데없는 생각, 욕심, 즉 사욕을 버리라.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벧전 1:14).” 이로써 우리의 행실을 바로 할 수 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 말이 넘쳐나는 선거철에 말과 말 사이에서 휘둘려 쓸려가지 않으려면,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이 곧 지혜였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

 

모든 성경은 지혜자의 선견지명과 같아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베드로 사도는 이어서 말하길, 믿는 자는 그 소망으로 산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청년들이 이슬같이 나아온다는 말씀에 문득 떠올려 가슴 설레며 주께 구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22).” 내가 저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주께 바라며 구하는 일, 이로써 말씀의 증거를 아는 일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3).” 고로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24-25).”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 견디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순종이었다. 뭔가 거창한, 그래서 자신이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는 양 떠벌이고 누구를 모함하고 선동하고 세를 규합하여 그것으로 권력을 삼으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죽을 거 없다. 스스로의 길을 두고 이 길이 맞나? 회의할 것도 없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31:24).” 하나님만 바라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다른 데 기웃거릴 거 없다. 사람 의지할 것 없고 누구, 어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두는, 그런 일로 인하여 조바심 낼 거 없다. 노아의 때에도 그러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17:26).” 롯의 때는 어땠고?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28-29).”

 

본래 관심이 쏠리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꼬이면 돈이 따르고, 돈이 되면 없던 관심도 쏠리고, 모이고, 따르는 법이어서 이는 악순환이라. 누가 어떠니, 그런 데 눈길 둘 것 없다. 그러하다 주의 목전에서 한순간이라.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90:3-4).”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 여기서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9:18).” 결국은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3).” 다 그러할진대 이를 먼저 알고 그 모든 주관자의 뜻을 바라고 구할 줄 아는 것이 지혜였다.

 

나는 주일날이면 가장 먼저 오고 늘 하던 것을 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아픈 아이를 사랑한다. 저의 장애가 저의 축복이라. 온전하여 그 나이 때에 아이들처럼 세상을 바란다면 자기 자리로 두신 축복을 저처럼 붙들고 살 수 있겠나? 가만히 돌아보면 인생 뭐 없다. 대단하다고 여겼던 이들도 다 거기서 거리라. 어느 날 문득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 거 없다. 여전히 잘난 줄 알고 사는 저의 늙은 나이가 추할 따름이라.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산다는 것, 실제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 곧 우리의 궁핍과 가난이 도리어 축복이었으니. 그렇지, 못 난 나무가 산을 지킬 따름이라. 죽어 마땅한 나였는데,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그러한 나를 살리시고 오늘을 다하게 하셨으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이와 같은 말씀이 귀하게 보이고 여겨져 되새기게 되는 이 마음이 부요하였다.

 

실제 부자가 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보다 어려운가했더니, 쥔 것을 놓기 전에는 쥘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우리가 흔히 그 나이 때 다 그렇지 뭐!’ 하는 그 나이가 부자였고, ‘사람 다 그렇지 뭐!’ 하는 그 부자였다. 즉 당장 이것보다 저것, 하나님보다 귀히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하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40:17).” 그렇게 나는 종종 아이를 보며 아이의 그 어쩔 수 없음을 귀히 여긴다. 이를 가지고 주께 나아오는 것,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70:5).” 할 줄 아는 게 복이라. 쥔 것이 많은 자는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주를 바랄 여력이 없다.

 

하여 오늘 날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14:18-20).” 그러니 뭐라 하겠나? 지혜자는 단호하였다.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9:4).” 고로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17).” 그러므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110:3).” 주가 이루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