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전봉석 2020. 4. 23. 06:59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아가서 7:10-11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편 119:73

 

 

2013422일이었나? 목사 안수식 때의 사진을 보내며, 오 교수는 어찌 지내고 있는가 안부를 물었다. 그런 거 보면 참 자상하신 분이라. 뜬금없기는 하나 그래서 많은 후학들이 그를 따르는가보았다. 오랜만에 카톡으로나마 서로의 근황을 묻고 새삼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어서 아찔하였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7:10-11).”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주를 바람이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119:74).”

 

오후께는 친구가 김치 한 통을 들고 와서 젊을 때 열심히 모아 읽던 시집들을 몽땅 가져갔다. 차마 그래도 갖고 있고 싶은 시인 몇 사람의 것만 남기고는 옆 사무실에서 수레를 빌려 한가득 옮겨가야 할 정도였으니, 책이란 은근한 허영덩어리 같았다. 정말 이걸 다 줘도 되겠어? 하고 묻는 것을 몇 년째 들춰보지 않는 것은 짐만 될 뿐이야! 하고 나는 단호하게 모두 내주었다. 나를 이렇게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119:73).” 한때는 책 살 돈이 없어서 밥을 굶어가며 모으기도 했고, 더 젊을 때는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여겨 여러 권을 훔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고이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이제는 미련도 없이 내주고 마는 게 되었으니, 하나님 이야기 아니면 다 가져도 돼? 친구는 한 수레 가득 싣고도 욕심이 나는 것들을 계속 주워 담았다.

 

주의 손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세우셨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일은 한 마디로 분투다. 분투(奮鬪)는 있는 힘껏 노력하고 싸우는 것이다. 때론 내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도, 너는 너무 병적으로 마음을 써서 그래! 친구는 나의 불안장애를 그리 단정 지어 말하고는 하였다. 좋게 말하면 예민하여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분에 넘치게 마음을 써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그렇지 않나? 주를 사랑한다면서 주가 원하시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으로 더 노력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친구가 무슨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틀어놓고 있었는데 딱 자기스러운풍이었다. 그런 것이다. 그런 노래가 좋아서 기타를 배웠고 손가락이 여러 번 까지면서 굳은살이 박혔고 이젠 저의 노래를 어지간한 것은 다 따라한다! 그게 분투다. 하물며 가수 한 사람이 좋아서도 그러는데.

 

우리는 예수 안에서 분투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다. 예수께서는 이를 증명하라고 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7:13-14).” 주를 사모한다고 하면서 저의 말씀을 등한히 한다면 그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누구의 시집들을 내줄 때는 가슴이 아렸다. 어떤 소설들은 여러 날 밤을 설레게 하였고, 글 쓰는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밤새 저의 세계와 문학을 논하고는 했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은 나에게 결의를 다지게까지 한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119:73).”

 

이제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잘 알고자 분투한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4:11).” 그래서도 친구의 말처럼 하나님 이야기빼고 다른 책들은 관심 밖의 것이 된 것이다. 한때는 읽은 책들을 무슨 훈장처럼 끌어안고 살려고 했다. 책장을 더 들이고 모아 소위 말해서 북카페를 하네 어쩌네 하며 낭만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다 시들해진 것이다. 오히려 깔끔하게 싹 다 버렸으면 좋겠다. 자주 손이 가고 일 년에 몇 번씩 꺼내보는 책들이 곁으로 포진되고 그렇잖은 것은 어디 구석에 두었는지, 먼지만 뽀얗게 앉았던 것이다.

 

새로운 분투가 시작된 것이다. 왜 그러고 있어요? 하는 누구의 우스갯소리 같은 질문처럼 누구는 하루에 몇 시간씩 노래를 하고, 누구는 운동을 하고, 무슨 시험 준비를 하고, 어디를 가고, 무얼 만들고, 누굴 만나고저마다의 관심이 분투의 방향을 가른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셨다는,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 그 나라에 온통 마음이 가는 까닭도 같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그러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지 않겠나?

 

연장을 다루며 무얼 조각하는 누구는 그러면서부터 날선 양날의 칼들을 두려워할 줄 안다. 산을 좋아하는 그 친구는 처음에는 장비빨로 설레발을 떨더니 신발이 낡아지고 외투가 허름해지면서는 산을 오르는 일을 경이롭게 여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천국이란 그저 막연한 장비빨이 아니다. 소문이 아니고 막연하게 좋은 곳이 아니다. 결국은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일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 그냥 거저는 없다. 하다못해 책들도 그렇지, 다 가져가도 된다고 하고는 젊은 날 그처럼 애지중지했던 작가들의 책을 내주려니까 얼마는 속이 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것도 않는다면 그게 과연 사랑인 것일까?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6:23).” 그런 것 같다. 한참 어릴 때는 그 책을 갖고 싶어서 몇 끼를 굶고 돈을 이리저리 모아서 몇 만 원짜리를 사면, 그 자체로 기뻐 뛰노는 심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심정이 뭔지 다들 안다. 그런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한심하다고 할 정도의 것을 두고 누구는 인형, 누구는 음반, 이 친구는 요즘 또 엘피판에 그렇듯 분투하는 모양이다. 황학동 옛 시장거리도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음판을 분에 넘치는 값을 주고도 산다. 하물며!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7-28).”

 

오전에 오 교수와 카톡을 하면서, 그때 이후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이제 만으로 10년밖에 안된 철부지 같은 존재이겠으나, 분투란 현재의 가치가 다른 것이다. 전의 것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일이다. 다 잃는다 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서로가 묻기를, 그러고 사는 거 안 힘들어? 나는 친구에게 친구는 나에게 서로의 그러는 것에 대해, 그 다름의 같을 수 없는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이 책들을 진짜 내가 다 가져가도 돼? 하고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재차 물었던 것도 그 이유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119:75).” 이를 알면 전부를 아는 게 진리다. 하나님이 성실하신데 어찌 나를 괴롭게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괴로움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인 것을 이제는 잘 아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81).” 그러므로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82).” 아무리 그래도 그게 좋다. 그게 왜 좋은지 물으면, 의외로 ?’라는 질문에 뭐라 답할 말이 없다. 나는 친구가 왜 옛날 엘피판 하나를 구하려고 구제품시장을 전전긍긍하는지,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안 됐다.

 

오직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89-90).” 나는 이제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신으로 분투하는 것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97).” 그러므로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94).” 왜냐하면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