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전봉석 2020. 6. 4. 05:59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7

 

 

요즘은 악이 숨었다. 악이 선 같다. 선을 도모하고 화합하며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앞장을 선다. 또한 종교의 화합을 운운하는 사탄의 에큐메니즘 세력이 확장한다. 이를 반대하거나 옳지 않음을 말하면 졸지에 적으로 몰린다.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미래 사회의 기치로 내건다. 정작 이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이들이 딴 주머니를 차고 저들끼리 세력화하여 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든다. 성경은 엄히 경고하신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6:11).” 누가 그런 말을 하다 뭐라 비성경적인 부분을 지적하면 그게 왜 나빠?’ 하고 반문하며 싸우자고 대든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 저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사람으로 살며 사람 중심의 세계에 대한 경계는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리는 게 된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 14:8-9).”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는 바벨론의 심벌인 오벨리스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위에는 세계 통치를 꿈꾸던 카이사르의 재를 담은 청동지구본을 올려놓았다.’ 사제인 플레쳐(Philip Fletcher)가 말하길 만일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라면 그는 적그리스도가 틀림없다.” 성경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17:17-18).” 요즘 부쩍 개척교회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저들의 신유나 부흥집회, 은사나 성령사역과 같은 열심(?)이 도마에 오른다. 종교행위가 이루어지고 그러는 중에 코로나 전염병은 옮겨 다닌다. 나는 그와 같은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마음이 좋지 않다. 저들의 극성이 교회의 실체인 것처럼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는다. 잘 믿던 누구도 그래서 요즘 자신은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천주교로 갔다며 저들의 선행과 그 온화한 종교 활동에 대해 자랑을 한다. 싸잡아 매도당하는 교회가 저의 말 대로면 이상한 종교집단처럼 여겨져 속상하였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안 믿는 자들의 입방아에 대하여는 뭐라 거들 말이 없지만 믿는다고 믿는 사람이 그러할 때는 난감할 따름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1-12).” 거짓이 참 같고 참이 거짓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를 마치 현대화로 가져와서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소릴하는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1세기 때도 아니 그 이전 예수님이 오시기 전 모세의 때에도 여전하였고, 아브라함을 기어이 우르에서 나오게 하신 때도 그러했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악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며 그 수법은 교묘하며 선보다 더 선 같고 의보다 더 의 같다. 믿든 안 믿든 점점 더 자신의 신앙과 믿음이 온전해야 할 시국이다. 우리의 열심이 그릇 행하여 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 마치 이 땅에 건설하여 가는 것으로 여겨 세력화하고 그 기세를 몰아 자신의 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보다 종교적인 거룩을 표방하든가 아니면 이와 무관하게 사는 세계를 꿈꾸든가. 누가 요가에 대해 피력하며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소리를 할 때면 아찔하다. 저가 하나님을 모르고 믿음이 없는 자이면 모르겠으나 믿는 자의 안일함은 그게 왜 나빠? 너무 그러지 마!’ 하는 식으로 나의 경계는 무색하여진다. 그저 운동을 위한 것이고 주민문화센터에서 하는 것이라 저렴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아랑곳하지 않는 데야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6:26).” 은연중에 그리로 휩쓸려 가는 것이다.

 

사회적기업과 선한사마리아인 운동으로 펼치는 여러 선의에 밀려 정작 그 안에 의도하는 악의적인 하나님 반대 운동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천사보다 더 천사 같은 얼굴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친구는 그런 자들보다 못하면서 괜히 적대시한다며 나를 응수하였다.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던 것은 아닌데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데는 아무 말이고 소용이 없는 일이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24:28).” 성경은 엄히 경고하고 계신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 안이하면 순식간이다. ‘그게 뭐 어때?’ 하는 순간 벌써 발길을 돌렸다.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14).” 말 그대로 다들 그러는 세상에서 나만 안 그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니, 때론 외롭고 때론 무섭기도 하다. 문득 소외에 대한 두려움마저 엄습하는 듯하였다.

 

그러할 때 오늘 말씀은 나를 다시 붙드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그러니까 아닌 건 죽어도 아닌 거다. 기독교는 분명히 기독교다. 하나님은 엄연하신 하나님이시다. 다른 변론의 여지가 없다. 말이 길어지는 것은 정직을 잃은 탓이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과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2:8).” 그래서 오늘 시인은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11:7).” 나의 정직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정직은 주를 바람이다. 주만 바람이다. 내 의, 나의 수고, 인내와 나의 헌신 따위로 얻어지는 정직이 아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나는 그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 것으로 주께 서는 일이다. 주 앞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내 의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1-3).” 나는 이처럼 말씀을 찾아보고 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 감사하다. 메모를 하고 이를 적어 마음에 새길 수 있어 다행이다. 다들 어떠하다 해도 오직 주를 바라며 주께 의지하는 생이어서 감사하다. 부디 나의 남은 모든 날들이 그러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7:7-8).” 가끔은 저들은 남다른(?) 선행과 열심을 보고 나는 더욱 주께 돌이킨다. 하물며 저들도 저처럼 선을 찾는 늑대인데,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9).”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죽는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우리가 상대하는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나를 휘두르고, 아무렇지도 않을 것인데 이를 알면서도 예기불안이 나를 옥죄고 들 때도, 오늘 말씀이 날를 붙잡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말씀 앞에서 온전하여지기를.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11:1).” 세상은 아무리 뭐라 해도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3).” 오직 주만을, 오직 말씀만을, 더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의미가 없어보이는 사람 중심의 세상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12:30).” 이를 붙들고 간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2:13).” 이 한 생에 맡기신 바 주의 사랑을 묵묵히 준행하며,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10:8).” 가만히 말씀으로 말씀 앞에 앉는다. 결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9).” 이에 나는 요즘 부쩍 일찍 일어나 말씀 앞에 앉는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1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