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전봉석 2020. 6. 17. 05:49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54:16-17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 안에 만족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었다. 먼저는 자신이 아직 젊은 줄 안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안다. 그래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여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음은 늘 수시로 이는 원망이다. ‘~하였더라면하는 식으로 얻지 못한 것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는 가운데 분노와 분풀이 대상을 찾는 것이다. 세 번째는 죽어라 하고 애쓰는 사투다. 조금 더 참고 견디면 될 것 같다. ‘, , 힘껏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다 보면 만족함은 없다. 이만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정작 그만큼으로 양이 안 찬다. 조금만 더! 하면서 스스로에게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은 절망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고 한다고 했는데, ‘나만 왜 이렇지?’ 하는 마음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결국 아직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만 있었다면하는 식의 불만족과 , , 조금만 더!’ 하고 애쓰는 사투와 이내 밀려들며 나만 왜 이렇지?’ 하는 절망이 우리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유난히 몸이 아프고 마음이 어려운 하루였다. 누구는 정신과를 옮겼고 먹던 약이 바뀌었다. 그러려니 하고 놓아둘 재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강박적인 불안이 우리를 쥐고 흔든다. 그러할 때 오늘 아침의 말씀은 참으로 시의적절하시다.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4:16-17).” 이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기쁨도 슬픔도, 건강함도 질병도, 마음이 여유로운 것도 조급한 것도이 모두를 주관하시고 주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데서 나의 불만족은 잠잠해진다. 성경은 일갈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어쩌면 이 한 구절의 말씀이 모든 불만족의 요소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들려주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나? 염려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조바심을 일으키며 조바심은 안달이 나는 요구를 잔뜩 입에 물고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형국이 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 기도였다는 것. 기도함으로 염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는 그 염려가 나를 주도하지 못한다. 염려는 있으나 그것으로 기도가 된다. 불안으로 안정제를 먹고 인위적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하지만 그래서 더욱 주를 바란다. 기도는 주께 아룀으로 어느덧 감사가 새록새록 기억나고, 감사는 이보다 더했던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이 어찌 이루셨는가를 깨닫게 한다. 그러니 다시 성경은 일갈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하나님의 사랑은 막연하고 애매한 게 아니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24:1).” 저는 이 모든 일의 주인이시다. 곧 오늘의 감사뿐 아니라 원망과 사투와 절망과 속절없는 청춘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권리를 주장하신다. 이를 만들고 우리에게 두시는 이가 누구인가? 저가 다스리신다. 결코 인생이 줄 수 없는 무엇을 우리는 우리 안에 소유하였다. 비록 그 처지는 비루하고 남루하여 누구에게 선뜻 말하기도 민망한 처지이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주를 바란다.

 

세상은 자신이 애써 이와 같은 난국을 극복하려고 하는데, 누구는 남을 위해 사는 이타정신에 몰두한다. 타인의 삶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면 이 또한 엄밀히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자기만족과 자기충족에 의한 요긴한 긴장감을 갖는 것이다. 아니면 냉소적이다. 조금만 더 수고하고 애쓰면 좋은 결과가 올 줄 안다. 나이 서른쯤 되면 뭔가 이루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가 않았다. 또는 말이 좋아 초연이지 냉소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너무 사랑하지도, 애쓰지도, 남을 위하여 무엇을 희생하려 하는 태도를 탈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찾아들던 불만족을 단숨에 해결하고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여긴다. 잘 사는 나라들일수록 냉소주의자가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이렇게 동기나 의욕을 앗아간다. ‘이게 전부인가?’ 하고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호처럼 외치는 말이 인생, 뭐 있어?’ 하는 식이었으니.

 

나는 누구의 정신과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어수선하였으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게 결코 허투루 어쩌다 우연히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꼭 문제는 아니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 근거를 이사야에서 찾았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61:1-3).” 이를 오늘도 하루를 더 연장하신 우리 날들의 사명이라 말해주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조금 더 예민하게, 연약하고 부족하게 빚으셨다. 그런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해야 한다. 곧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슬픈 자를 위로하고 기쁨의 기름으로 부어져야 한다. 이는 주께서 심으신 영광이다. 이를 드러내고 나타내게 하시려고 오늘 우리를 어렵게 궁지로 모시는가 하면 예민함으로 오금이 저리게도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어제 나의 하루는 힘이 들었다. 난데없이 허리가 너무 아팠고, 조심해서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먹었는데 다 저녁에 속이 울렁거려 초조하였다. 불안은 가중되어 평소보다 안정제를 더 먹어야 했고, 약에 취해서 나는 자리에 눕기 무섭게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안쓰러워하는 가족들의 시선이 미안하고 또 답답하기만 한 일이지만, 부르심에 합한 삶이란 이것까지도 하나님의 주도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전부를 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1-2).” 결론은 성령이 하신다. 나는 다만 이러는 가운데서 말씀이 더 소중하다. 하나님이 아니면 한순간도 살 수 없다. 그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4).” 우리 안의 기쁨을 우리는 정의할 수 없다. 각자의 열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래 참음이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2).” 그러니 이게 어디 내 마음 같은가?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86:15-16).” 주의 은혜로만 가능하였다.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게 아니고, 돈을 많이 벌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고 수고하는 일을 게을리 하라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많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랑의 순서가 엄연하다면 그 어떤 문제도 더는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염려나 몸의 질병이나 어떤 어려움조차도 여전하고 오히려 더 많이 꼬여드는 것 같다 해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전에는 이와 같은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나 했던가? 그러나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곧 이를 오늘 이사야는 분명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54:4).” 그 하나님이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나훔 1:3).” 주가 하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저가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24:1).” 그러므로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8-9).”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