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이사야 66:13-14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시편 36:7
가진 것 위에 더하고 더한 것 위에 포개어 그럼에도 풍족한데 만족함이 없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나는 세금 뗄 거 떼고 얼마 안 남더라도 그걸 가지고 어머니 살아생전 월 얼마씩 드리는 게 어떠한가, 말하였으나 곧 묻히고 말았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며 서로들 얼마 되는 집을 어찌 재건축하고 누구와 같이 하는데 있어 나의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었다. 가진 것에 족한 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라. 어쩌면 나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어서 그리 쉽게 말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더는 대화에 끼지 못하였고 가만히 저들의 말을 들으며, 왜 이 복음을 우리처럼 연약한 질그릇에 두셨는가? 묵상하였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같은 값이면 철 그릇에 담아 지니고 사는 철 밥통으로 끄떡없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리 되면 누가 거들떠나 보았을까? 크신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닌 것을.
우리는 다만 은혜로 산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 같았고, 그래서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듯 서로의 말에 낄 수 없으면서 지나온 저 자리가 참 무서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저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것으로 투자하는데 있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나의 우려는 그러느라 애써 수고하였던 일생의 노고가 헛되지나 않을까, 성경의 이치를 생각하였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그래서 나는 너무 애쓰는 일들에 대하여 응원보다는 염려가, 염려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음이 복이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가. 실상은 우리도 본질상 죄악된 저들과 다를 게 없다.
성경은 그래서 강조하시는 바, 근신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근신해야 한다. 근신은 따로 떼어 자신의 자유의지를 억제한다.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잠 5:2).” 그게 어디 쉬운가? 가진 게 있으니 그것으로 더 가지려 하고, 가진 게 없으니 죽어라 하나 뭐라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오직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살 수 있다면. 예배 후 아이가 돌아가고 다들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동대문에 있는 집 한 칸을 두고 설왕설래 여러 말이 오갔던 것이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고 방금 전 설교하였던 내용은 감감무소식으로 허공에 흩어진 것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어서 몇 마디하다 그만두었으나 곧 재건축을 할지, 누구에게 팔지, 저와 동업을 할지, 지금이라도 단독으로 팔아야 할지, 말과 말은 끝이 없었고 같은 말은 제자리걸음을 하듯 돌고 돌아 나는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하는 성경의 경고를 현실에 반추하면, 그래도 설마… 하는 정도였으니. 다들 하나같이 거절의 사유도 동일한 것이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 14:18-20).” 저마다의 사연은 다들 피치 못할 것들이고, 그러니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번만 더 하고, 여기까지만… 하는 식으로 내려놓기가 점점 불가능해진다. 그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되지! 하고, 나의 말은 뭘 모르는 답답한 소리로 밀려났고 나는 자꾸 이를 아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요? 하는 말로 끼어들려 해보았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안 믿는 이들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더, 더 가지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1:6-10).” 사도 요한의 교훈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안 믿는 이와 손을 잡고 오히려 저들의 달콤한 꾐에 넘어가면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잠 1:27-30).” 나는 자꾸 이런 말씀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설령 돈을 더 벌어 지금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하자, 그러느라 아내는 집을 비웠고 서로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면서 하나님이 두신 가족은 허울뿐이라. 언니 고지혈증 약이랑 혈압약 먹고 있어! 하는 말에 그래? 하는 방심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었으니.
세상이 참 유혹하는 것이 많다. 배우고 자신이 안다고 여기는 일에서 더욱 더 미혹하는 영은 득의양양하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그러니 아이 일도 그렇지, 구로 어디에 있는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일자리에 지원한 모양인데 돌아오는 목요일에 면접이라고 하니, 이제와 하지마라 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말을 듣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엄마는 지난 토요일에 같이 전철을 타고 출퇴근 동선을 가르치느라 먼저 같이 다녀왔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대책이 없고 맘대로 하라고 하는 것도 대책은 아니어서 도무지 나는 할 말이 없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6-8).”
조금 격한 말로 하자면 다들 죽어야 나을 병에 걸린 것 같다.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연들이 왜들 없겠나만 그러니 그날이 와도 장가가고 시집가고 시장에 나가봐야 하고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다들 정신이 없을 수밖에. 그러한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주일도 유야무야 안 믿는 자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일상은 빠듯하여, 사느라 기진한 형국이라, 사는 게 지옥이다. 누구 일에 뭐라 한들, 저들은 또 ‘너나 잘해’ 하는 식이니 별 수 없다. 주의 긍휼하심만이 살 길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사 66:13-14).” 주의 약속과 그 말씀 붙들고 사는 길밖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시 3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