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전봉석 2020. 8. 15. 06:0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예레미야 47:2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5

 

 

바벨론은 물고기 다곤 신을 섬기며,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 가사와 아스글론, 아스돗과 에글론, 갓 등의 주요도시의 연합체국가이다. 마치 천년만년 온 땅을 지배할 것 같은 저들을 여호와의 칼은 유린한다. 성경은 이를 의인화하여 저들의 멸망을 서술하고 있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5).” 하면서 역설적으로,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6).” 이는 찬양이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7).” 주의 심판은 어김이 없다. 각 시대마다 주변 강대국은 있고 고대 근동의 앗수르나 남방의 애굽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로 그때마다 쓰였다. 베벨론에서 앗수르로 앗수르에서 헬라와 로마로 저들은 불멸의 왕국처럼 그 시대를 관장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백성-주의 자녀들은 특별한 보호하심을 받았다. 저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자들이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는 그 아들의 영이 들어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그 아들의 영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많이 배운 몇몇이 있다. 저들은 학벌로나 직업군으로나 그 수입으로나 누리고 사는 일에서나 상위 1%에 들고, 뭘 해도 저들의 명석함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들! 갑자기 누가 요통으로 고생하며 터진 디스크로 꼼짝을 못하고 누웠다.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테로이드 주사로 통증을 완화시키고 자신의 날들을 회고하니 사는 게 참 덧없을 뿐이다. 솔로몬의 표현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3:15).” 자기 분야에 전문가요, 몇 개 국어를 하고 연봉 몇 억을 받으며 오라는 곳이 많은데, 고작 몸뚱이 하나로 꼼짝 마라.’가 됐으니! 저와의 통화에서 저는 늘 습관처럼 성경은 어렵다, 난해하고 이해가 안 간다고 투덜거린다. 문자적으로 읽고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이해를 도모하니 당최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그럴 때 지혜자의 진술은 명쾌하다. 첫째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11).” 하나님 밖의 사람들도 다를 게 없으나 저들은 도무지 이를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

 

천하의 솔로몬이다. 천년만년 저의 지혜로 모든 것을 다 알고 누리고 호령할 줄 알았다. 그러는 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이치는,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12).”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 기쁨으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게 없더라, 하는 것이다. 자신들만 누리며 높게 담장을 치고 최첨단의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고 한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선을 행함으로 기쁨을 얻는 비결을 넣어두신 것이다. 홍수 피해를 입은 현장에 서로들 달려가 물심양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며 봉사하는 사람들은 사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다들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아는 것은 수고하는 낙이라.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13).” 아이도 뭘 그리 먹을 때마다 잘 차려진 음식을 찍어 SNS에 올리곤 하는지, 이는 자랑인 것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먹고 사는 게 고역이라. 일의 중심이 되었다. 에덴의 시절에는 이를 경작하고 다스리며 누리고 살 수 있는데, 이처럼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태곳적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14).” 이를 통해 우리가 다른 것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와 통화하다, 고통 중에 있는 저들에게 그리 알려주었다. 얼마동안의 고생이 자신들이 살아온 날을 돌아보고,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안 믿는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즐거움을 취하면서 더 많이 더 오래 자신만을 생각하였던 것을 뉘우치라 말했다. 실제로 그러는 수고와 열심이 실은 자신들 안에 내재된 분노와 원망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능한 부모로부터의 자립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기를 쓰고 열심을 다해 살았으니 그 자긍심이 오죽한가. 사탄은 쉴 새 없이 우리를 부추겨 우리 안에 내재된 부끄러움을 폭로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3:2-3).” 세상 그 어떤 이도 완전하고 의로운 이 없다. 그러할 때 사탄의 공격은 집요할 따름이지만,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4-5).”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제거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신다. 저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대언자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것이 요즘 내가 붙들려 있는 말씀이고 언약이고 진리이다. 이를 위해 성경을 쓰셨다.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너희는 불특정다수가 아니다. 이를 명확히 한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 ‘우리에게 대언자이시다. 모두의 대언자가 아니시다. 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하여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셨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5-16).” 저마다 믿음을 강조하고 자신은 믿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을 격동케 하는 사탄의 고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저는 늘 말끝마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살고 있는 자신들을 자부하였다. 그때마다 다윗을 격동시켜 백성의 수를 계수하게 하였고(삼하 12:4, 7, 대상 21:1) 이를 하나님은 엄히 징계하셨다. 베드로의 열심도 저를 나서게 하여 주의 일을 훼방하였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23).”

 

결국 주의 은총이 아닌 우리의 열심과 주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수고는 모두 사탄이 우리 속에 불일 듯 일어나게 하는 수치다.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이다. 차마 그러한 말을 저에게 되물을 수는 없었다. 나름은 신앙적으로 항변하는 저에게 그의 열심과 수고가 불순종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어야 한다. 저는 그래서 이를 두고 하나님께도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을 다해 주를 섬겼는데 오늘 우리 꼴이 이게 뭐야? 하는 투의 저의 말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다윗과 베드로도 주께서 꾸짖으셨고, 이내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기 의의 가룟인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고 죽음을 택했다. 이 얼마나 완고하고 무서운 자기 의인지! 최근 누구의 자살로 촉발되어 설왕설래 여전히 여러 말이 계속되고 있는 시민단체운동, 선한 일, 의로운 사업에 대하여나는 친구 장인의 선한 사업의 말로를 그리 되새겨 반추하고 있다. 사탄은 언제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이는 저의 일이다. 그러할 때 주께서 다투신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35:1).” 우리의 송사를 저가 변호하신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34:1).” 나의 중보자가 되소서.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38:14).” 그러니 영원한 멸망의 구렁에서 아무도 나를 변호해줄 이 없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나?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30:13).” 그래서 나는 저에게, 또는 나에게 우리의 이와 같은 문제를 주 앞에 털어놓을 수 있는 자녀가 되었음에 감사하자 하였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11:20).” 그와 같이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20:12).” 누구의 전화는 그저 답답하여서 하는 소리였겠으나 나는 저에게 성경을 말해 주어야 했다.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요일 3:20).” 천하에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없다. 애굽도 바벨론도 앗수르도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4:35).” 이를 붙들고 사는 게 지혜였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8).” 이 때 오늘 시편의 말씀은 위로다. 결의이고 가야 할 바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84:5).” 다른 무엇으로는 사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6).” 주가 나의 대언자시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7).”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8-9).”

 

이제 나의 남은 생애가 온전한 것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10-11).”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