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에스겔 23:27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편 116:12
우매자의 수고가 제각기 곤고하게 할 뿐이다.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 우매자들의 수고는 제각기 곤하게 할 뿐이라 저희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전 10:14-15).” 스스로 이루려하여 애쓰는 일보다 고단한 삶도 없다. ‘코로나 사태’는 이를 증명하듯 서로에게 지친다. 각 나라마다 가정 폭력이 증가하고 불화가 더해졌다. 아동폭력이 급증하고 부부간의 반목이 심화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로 죽은 사람은 올 한 해 현재까지 몇 백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칠천 명을 넘어섰다. 자해와 불안, 우울증이 급증하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덧없음을 모르는 사람은 우매하다. 율법적인 삶이 가혹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옥이 두려운 곳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전무한 사람은 우매하다. 저가 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듯해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을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사는 대로 살다 죽는 대로 죽는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통계의 수치에 불과한 것이 된다.
존 번연은 역설하기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은 지옥의 불냄새를 맡은 삶이고, 자신이 돌아선 길을 혐오하는 자이다.’ 그러니 여전한 한 마디로 사는 게 지옥 같은 사람들의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그래서 돌아온 사람들의 입에는 타락하던 시절 그 끔찍하였던 경험과 그 현장의 더러움과 추함과 혐오스러움을 한탄하는 소리와 함께 부디 당부의 목소리가 있는 법이다. 가령 고래뱃속에서 살아나온 요나의 경우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뜻을 따랐을 때와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따랐는데 자신의 뜻과 다를 때의 그 말들에 대하여 묵상하였다. 그런 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욘 4:9).” 모든 게 은혜였음을 저는 아직 모른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10-11).” 하실 때, 오늘의 말씀을 이어서 다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겔 23:27).” 우리로 이처럼 이끌어 돌이키게 하시는 데 따른 은혜가 얼마나 큰가! 이제 이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기껏 건강으로 기껏 출세와 권세를 누려 떵떵거리고 산다 한들, 하나님께 나아감이 없이 그 어떤 복에 복을 더한 것인들 유익하지 못하다.
이를 아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저의 돌이킴과 그에 따른 헐떡거림과 목마름과 눈물을 아는 사람은 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1-2).” 하긴 우리 가족들의 경우도 다들 예민해진 상태다. 한 달씩 유급휴직을 하며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주체할 수 없는 시간으로 힘들어하는 딸애를 보며, 아들애는 한심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공부하고 어떤 자격증을 따라고 응원하였던 두어 달 전의 마음에 상처를 입은 셈이다. 상대적으로 자신은 시간에 쫓기듯 밤낮없이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대중없는 아내의 참견과 잔소리가 서로의 신경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모든 것에 눈치를 보며 혼자 속 끓이고 애달파하는 나의 태도가 또한 마뜩찮은 것이기도 할 테니. 코로나로 인해 뒤틀려버린 우리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신음은 깊어지고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아니면 살 수가 없으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84:2).”
그도 그렇겠구나! 나는 기사를 읽으며 단지 이와 같은 자살증가나 자해나 우울과 같은 신경증이 사회현상으로 부각되는 것에 놀라웠다.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나 또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답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정제를 먹으며 다스리고 있는 셈이었으니. 아,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10-11).” 요즘은 가장 좋은 시간이 모두와 떨어져 있는 이 새벽 시간과 아침 일찍 교회로 나아가 오전 한 때를 혼자 보내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하고 옆 사무실 주인은 경보장치의 알림이 새벽 늦게 잠겼다가 아침 일찍 해제되는 것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더욱 갈망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에 안도한다. 더는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서기도 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다시는 그릇된 길을 사모하지 않기를. 받은 은혜에 더욱 더 밀착할 수 있다면,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30:10).” 아이의 열심도 아이의 나름함도 그에 따른 건짜증과 불안함도, 서로에 대한 판단과 불편함도 모두 주께 의지하면서,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31:9).”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도움을 얻기 위하여도,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25:21).”
말씀을 끌어당겨 나의 위로로 삼는다. 불만일 게 없고 불안해할 게 아닌데도 쓸데없이 예민하여 혼자 끙끙 앓는 주제라도,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132:15).”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도 주의 은혜에 감격해하는데, 삶의 질이 여전히 누추하기 짝이 없으니… 나 또한 자꾸 입을 꾹 다물게 되고, 외면하고, 한숨짓고,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려 든다. 이러한 나의 연약함을 한탄하지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99:8).” 그래서 말씀을 찾고 그리하여 더욱 말씀으로 의지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가? 왜 그렇게 일찍 나오는가?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내 안에 두시는 갈망이 귀하였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128:5-6).” 이렇듯 책을 읽다 말씀을 찾아보고, 메모를 하고, 이를 필사를 하다, 내 안에 두시는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경하기도 하였으나 귀하고 복되었다. 이를 우매자는 알 길이 없으되,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85:6).” 곧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기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 나아감이었으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그러므로 오늘 아침의 시편의 말씀도 크게 다가온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시 119편, 전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