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30:11-12 / 기도와 감사

전봉석 2020. 9. 25. 14:11

20200927 주일

시편 30:11-12

기도와 감사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30: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들어가는 말

시편 30편은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성전 건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시인지, 솔로몬의 때에 성전을 완공하고 붙인 노래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건축물로 보다 바울의 표현처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곧 우리 성도의 완공의 때에 부를 노래라면, 앞서 시편 29편을 착공가로 다시 말씀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오늘은 본문이 29편과 30편 두 편의 시편이다.

 

29편에서 우리를 권능 있는 자들성도들로 정의하였다. 이를 위해 여호와의 소리를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어 30편에서는 완공된 성도의 경우 슬픔의 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옷으로 갈아입히시는 것을 본다. 일찍이 계획이 다 있으셨다. 이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11-12).” 마치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출소된 설계도면 같다.

 

1. 시편 29, 착공가: 여호와의 소리/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시 29:1).”

 

여기서 시의 주제는 1행에 담겼다. 우리는 권능 있는 자들이다. 이 권능은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는 것이다. 권능이란 부여된 권한이고 능력이다. 대통령의 권능은 국민들로부터 부여된 권한이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동의로 부여되는 것이다. 곧 우리 성도들의 권능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신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부여된 능력이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14).” 그러므로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 29:2).” 그 권능을 수행하는 데는 예외가 따른다. 우리의 권능은 주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이다. 가령 대통령을 만나려면 그에 따른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그의 자녀나 손자, 손녀들은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욥은 친구들과 논쟁할 때 자신의 공의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27:5-6).” 훗날 바울은 이 공의를 값없이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의 의다(3:24). 욥을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1:8).” 바울은 그래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4).” 저가 자신의 의로 이렇게 말한 것인가? 아니,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바울은 절규한다.

 

천하에 다윗도 죄책으로 뼈가 꺾이는 고통을 호소했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51:8).”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3).” 우리는 자주 시달림을 당한다. 사탄은 우리를 그슬린 나무처럼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공격한다(3:2). 이와 같이 죄의식으로 우리는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짓누르며 평생을 주눅 들어 살기도 한다. 누구는 허영과 허세로 위장하며 교만의 외투를 걸치고 산다. 하나님은 사탄을 책망하셨다(3). 그리고 우리의 더러운 옷을 갈아입혀 주셨다(4). 이처럼 시편 29편은 주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우리에게 향하신 엄위하신 여호와의 소리를 서술하고 있다.

 

첫째, 그 소리는 권능의 소리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시 29:3-4).” 곧 우리의 형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 같다. 그 수면 위를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었다(1:2).

 

둘째, 이 소리는 두려운 소리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5-6).” 백향목은 히브리어로 에레즈견고하다는 뜻이다. 시룐은 레바논의 산 이름이다. 우리의 견고한 아집을 꺾으시고, 산들을 들송아지처럼 뛰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아집과 고집을 꺾으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4:1-2).”

 

셋째, 이 소리는 응답하게 하는 소리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 29:7-9).” 불일 듯 번지는 유행과 사상, 고통과 외로움으로 적막한 광야, 그 위를 거침없이 휘저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에도 살아 역사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1:6).” 그런 시대에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51:12).”

 

넷째, 이 소리는 통치자의 소리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시 29:10).” 한탕주의가 판치고, 명예보다 돈이, 문화와 사조가 성경을 뒤엎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할 때에 우리의 믿음에는 그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위엄이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

 

다섯째, 이 소리는 힘이 있어 평강의 복을 내는 소리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여기서의 힘은 평강의 복을 더하시는 힘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떠하다 해도,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1:33).” 그러므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성경이 보증하는 약속이다.

 

결론: 여호와의 소리는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의 소리다. 그 소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와 성령의 간구의 소리로 나타난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곧 우리 믿는 자들은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가증스럽기만 하다. 그럴 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 그러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

 

2. 시편 30, 낙성가: 이끄시는 하나님/ 시편 30편은 성전 완공의 날에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30:4).” 곧 거기가 어디든, 거기서부터 주가 우리를 이끄심으로 나오는 감사의 찬송이다.

 

첫째, 우리를 끌어내어 원수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신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30:1-3).” 우리의 원수 사탄은 이 세상을 지칭한다. 하나님을 배제한 모든 문화는 성도를 웃음거리로 삼는다. 우리 영혼은 지옥에서 건진 바 되었다. 이를 세상이 알 리 없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44:23).”

 

둘째, 우리는 주의 성전으로 지어져간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30:4-6).”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의 거룩하심으로 옷 입기 전에는 우리도 더러운 옷을 입고 주의 심판대 앞에 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대언자되시는 예수가 계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히신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 여호수아는 믿는 모든 성도들의 상징이다.

 

셋째, 우리는 이제 은혜로 산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30:7-9).” 무덤에는 회개가 없다. 그때에 찬송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겠나? 그러므로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10).” 우리의 은혜는 매일매일 필요하다.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넷째, 우리의 남은 것은 감사의 찬송뿐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를 알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남은 것은 무얼까?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30:11-12).” 구원은 희락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결론: 우리는 주의 성전이다. 고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12:28).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권능 있는 자들로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간다. 그때마다 우리의 기도는 금향로에 담겨 하늘 보좌로 올라간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8: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그러므로 주의 성전의 착공가는 기도이고, 이를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내내 우리가 불리는 노래는 기도이다. 그리고 성전으로 완공되어 부르는 낙성가는 감사의 찬양이다. 영원히 우리는 감사를 노래할 것이다. 그렇게 완공되어져 가는 공사장은 시끄럽고 요란하다. 성도의 성화의 시절에는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 같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간구와 성령의 탄식어린 간구 소리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완공되어 영원한 나라, 영화의 세계에 들어가서 우리는 비로소 경탄과 환호의 감사의 찬송을 부를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