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전봉석 2020. 9. 27. 05:46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에스겔 33:32-33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한 아이가 다녀갔다. 장성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NGO단체에 취직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회환이 많은 법이다. 그땐 그랬지, 하며 그리움 같이 스쳐가는 아이들도 여럿이 되었다. 이제 참 신기한 것은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여서 서로의 길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이가 위해서도 기도를 같이 하게 된다. 그리 넘는가보다. 더 가깝고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가졌던 아이들은 흔적도 없었다. 나름 믿음 안에서 생활하고 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기특하였다. 인생이 그러하듯 신앙은 말할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시는 말씀에 마음을 붙들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하는 말씀으로 굳건하게 서게 되는 것 같다. 모처럼 여러 말이 오갔고, 지난날을 떠올리다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여 어떻게 나를 긍휼히 여기셨는가, 하는 데서 은혜뿐이었다. 그리운 가운데서 몇몇 아이의 안부를 서로 묻다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33:7).” 주께서 일찍이 아이들을 상대하고 가르치는 자로 세우셨다. 그땐 그 사명을 미처 귀하게 여기지 못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8).” 오늘의 이 말씀이 두렵게 다가온다.

 

단지 밥벌이의 하나로 여겨 지겨움을 호소하며 살던 시절이었다. 그때라고 왜 영혼이 상하고 힘들었던 아이들이 없었겠나? 전혀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둘 줄 몰랐고, 들어보니 , 그때 그 애가 그래서 아팠겠구나?’ 하는 뒤늦은 이해와 후회가 뒤섞였다. 그리스도는 어찌하셨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일찍이 나에게 귀한 일을 맡기셨던 것인데, 어제 그 아이는 나의 이쪽과 저쪽을 다 목격했던 경우이다. 굴지의 NGO단체서 근무하는 일이라 아이의 마음속에도 주의 사랑과 긍휼하심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다 같이 예배를 드리고 매일 각 파트별로 큐티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데, 모르고 들어갔다가 함께 신앙 안에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어요. 하는 아이의 말이 사뭇 대견하고 뿌듯하였다. 아무리 세상이 어떠하다 해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예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나는 괴수라. 내가 죄인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저는 우리의 슬픔을 감당하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3:4).”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의 지난날이 송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주의 이름 앞에서 이처럼 뻔뻔하게도 은혜를 더 달라고만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2).”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감사뿐이다. 점점 그런 생각이 든다. 드릴 게 아무 것도 없다. 여전하여서 번번이 헛발질이다. 그리곤 혼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내남없이 우리는 연약한 터에 송구하여 송구한 만큼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것 외에 다른 게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3:18-19).” 오늘의 내가 저처럼 귀한 방문을 받고 안부를 나누며 주의 살아계심을 되새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분명한 이유가 된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24).”

 

두런두런 이어지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꽤 오래되어 다 잊힌 일들을 통해 주의 선하심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공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를 나에게 전가하신 까닭에 내가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50:8).”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이나 그러한 나를 의롭다하신 이가 따로 계시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그러니 어제도 여러 번 느끼는 바였지만, 감사뿐이다. 할 수 있는 게 감사밖에 없다. 남은 것은 감사이다. 드릴 게 감사, 감사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어찌 나를 오늘에 두시고 이처럼 귀히 삼으셨는지.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이처럼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을 돌아보게 하시는지.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지는 것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5).” 누구 소식은 알아요? 누군 뭐해요? 할 때 아픈 손가락처럼 가슴이 찌릿찌릿 하는 아이도 있었으나 우리가 말씀 가운데 같이 있지 않는 한, 나는 글방 선생일 때와 목사일 때로 나뉘어 그 전과 후가 뚜렷하였다. 누구에게는 그때의 내가 기억될 뿐이고 누구에게는 지금의 내가 더 친밀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 아이의 엄마가 기억난다. 저이는 내가 목사가 되고 바로 두 아이를 글방에 보내지 않았다. 종교를 갖는 것은 자유이나 종교인이 된 것은 다르다는 명분이었다. 저이는 무교였으나 그 집안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아이들은 아쉬워서 그럼에서 얼마 동안 글방을 오고 같이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떨어져버린 시간 앞에서는 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점점 할 말은 옅어져가고 그나마 서로의 말이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에 자연스러운 단절이 왔다. 누구는 난치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고, 누구는 돌아보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무치듯 그리운 아이 몇이 있었으나 누구에게도 안부를 묻지는 못했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인위적으로 이어갈 인연은 아닌듯하여 생각날 때면 주의 이름 뒤에 숨긴다. 뜻이 합하면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면 만나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러는 동안 나의 자세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나의 이 사소한 마음으로 저들을 잊지 않게 주께 바라고 구할 수 있기를. 다만 주의 부활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처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내가 의탁할 곳은 주의 품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거의 한평생의 일이었다. 아내가 큰 딸아이 임신 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일이었으니,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숱한 아이들을 곁에 두시고 스쳐가게 하셨다. 지금은 어떤가? 한 아이, 한 아이로 그 영혼을 위하는 일이라. 나는 더 이상 밥벌이로 하는 게 아니어서 감사하였다.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33:32-33).” 이제 나는 다만 전할 뿐이고, 붙이시는 이와 함께 할 뿐이다. 내가 무얼 하려 그처럼 애쓰고 수고하여 기력을 다한다고 될 게 아니었다. 그것이 더욱 큰일이라. 전하는 자로 산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11).” 그리하여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13).” 또한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14-15).” 나는 전할 뿐, 돌이키거나 그릇 행하는 데 따른 바는 주께서 다루실 일이다. 죄에 포로 되었다가 돌아온 자의 이해는 단단하였다. 나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도 할 수 없고 바꿀 마음도 없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126:1).” 꿈만 같은 일이다.

 

이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5).” 하시는 말씀의 의도를 바로 안다. 주께 받은 게 은혜뿐이라. 감사만이 남았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