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전봉석 2021. 4. 26. 06:01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사도행전 28:26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34:18-19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다.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고난이 없는 이가 없다. 오늘 시편의 다윗은 그 지경이 더 끔찍하여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데 저의 찬송과 기도는 기이할 지경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8).” 곧 지금 자신이 주께 피함으로 맛보아 아는 것으로 이는 현실을 능가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9).” 그런 그가 첫 마디로 입을 연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1).” 이방 나라 왕 앞에서 미친 척을 하다 쫓겨나서 지은 시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2).” 아니, 어떻게 이런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 그 단서를 오늘 바울의 설교 중에 이사야를 인용한 말씀에서 찾는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행 28:26).” 모두들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들었고 깨달았다. 이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모면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우리를 옥죈다. 미치지 않으면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이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찬양이다. 주의 은혜를 더욱 내밀하게 체험하고 그러는 중에 감사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7-28).” 이 세상의 우둔함이 우리로 복음이 전하여지게 하였다. 아내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고 몸살을 앓듯 아팠다. 주일 예배를 간신히 드리고 올라와 약을 먹고 잠들었다. 열이 38도 가까이 치올라 겁이 나기도 했다. 연거푸 약을 먹고 저녁 먹을 때쯤에서야 안정을 찾았다. 모든 고통은 상대적이지 않고 저마다의 아픔으로 씨름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와중에 누구를 위로하고 위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오늘 다윗이 찬양하는 그와 같은 은혜가 아닐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그 맛을 알게 되는 때는 쓴맛 중에서이고, 그에게 피하려면 어려움에 의해 쫓길 때이다. 곧 오늘의 쓴맛과 어려움이 우리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한다.

 

이런저런 주변의 사정과 사연이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나 또한 다를 게 없어 괜한 불안과 염려로 시달리는 하루였다. 딸애는 아직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은 공부하러 나갔으니, 끙끙 앓는 아내 곁을 맴돌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공연히 체온만 자주 체크하고 어찌해야 하나 걱정만 앞섰다. 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럼에도 우리의 가는 길은 정해져 있고 정해진 길에는 이정표가 따로 필요없는 법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만 바라는 것.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시 36:6).” 이와 같은 우리의 정해진 길이 참 감사할 따름이었다. 따로 고민할 게 없다. 누구는 어려움이 겹쳐 용한 점쟁이를 찾거나 이런 데 능한 교회를 동시에 기웃거린다는데, 어떤 어려움이든 우리의 가는 길은 정해진 것이어서…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8-31)

 

곤비함과 피곤함이 몰려온다 해도 우리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새 힘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기신다. 우리는 이를 대적할 수 없다.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욥 14:20-21).” 그저 우리의 아둔함으로는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22).” 어느 인생이 아니 그러할까? 이내 모든 이김은 주께 있으니 우리가 나름 준비하고 대비한다 해도,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행여 우리가 밥상을 두고 싸워 더 나은 것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될 수 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 8:14-15).” 그러니 우리의 성소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13).” 즉 지금 이 현실은 미친 척 하며 비루하게 살 수밖에 없는 지경이라 해도 우리는 그러면서도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 그리하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롬 11:8-10).” 먹고 사는 일에 종이 되어 끌려 다니지 않기를. 살고자 하여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느라 주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곧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증거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 저들은 미친 체 하면서도 주를 바라고 찬송하는 우리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7).” 순전함으로 말씀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삶으로 말한다. 우리의 그와 같은 말은 찬양뿐이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는 감사뿐이다. 그럴 수 없는 중에 그러한 것이 우리의 남다른 점이었다. 그게 아니면, 다들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지 않던가?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사 66:4).”

 

막말과 악담이 난무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하는 세상에서 왜들 저러는 것일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1-12).” 누구의 예견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기도 전에 서로를 향한 원망과 보복이 난무하는 정신과적인 혼란의 정국이 팬데믹으로 휩쓸고 있다. ‘묻지마 보복’이 서로들 사이에 난무하고 집단 이기주의가 판치며 있는 자는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없는 자는 저의 것을 뺏으려 하며 정치적 경제적 대혼란이 찾아오고 있다. 이 모두는 미혹하는 영이라. 불의를 좋아하게 한다. 그런 와중에도 어김없이 주의 복음은 실현되고 전파된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0-31).” 그러니까 이런 와중에도 누구는 주의 은혜를 발견하고 이에 감복하며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고, 누구는 더욱 완고하여져 주를 원망하고 곁에 있는 자를 향해 ‘너 때문이야!’ 하며 보복을 감행한다.

 

난리와 난리 소문과 소문이 끊이지 않는 시국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그러니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서로들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하고 다국적기업은 이와 같은 난국을 호재로 삼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길을 지나다 공연히 짜증을 내고 생면부지의 사람을 두고 분풀이를 한다. 아,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9).” 예수님은 일찍이 이 시절의 고약한 우리의 죄악성을 알려주셨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0-12).” 수천 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 모든 역사의 굽이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본성은 재연되었으나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

 

무던히 참고 견디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뭘 새롭게 잘하려는 시도마다 불순한 세력이 우리를 짓누르는 이때에 묵묵히, 미친 척 하고 나와서도 태연하게 주를 찬양하였던 다윗이 일깨워준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마음이 상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통회한다. 할 때,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19).” 이와 같은 건짐의 역사가 실제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본다. 누구는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8).”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다 해도, 우리는 꿀을 빤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9).” 이것이 우리의 숨은 능력이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1, 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