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전봉석 2021. 5. 11. 05:38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로마서 15:4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2

 

 

우리 스스로 무슨 값을 치를 수 있을까?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 49:6-8).” 오늘 시편의 말씀은 우리 생명의 속량의 값이 엄청난 것을 들춘다. 백년거치 천년상환이라 한들,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9).” 그러니 사람이 존귀하나 이를 깨닫지 못함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 하면 우리는 어찌 할까? 서로를 받아야 한다. 이는 기도로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쓸모없는 나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심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하심이다. 하고 이르시기를, ‘너희도 받으라.’ 내가 저를 받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이는 성경의 약속이고 하나님을 마주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께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길이 된다. 그래서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7-18).” 궁극적으로 내 안의 죄악도 멀리할 수 있는 것은 기도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6:1-2).

 

오늘 아침, 바울은 이 같은 사실을 명시하고 있는 기록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성경의 위로라 하심은 우리 또한 그와 같은 말씀이 적용되는 대상인 것을 알려준다. 곧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나와도 유효하며 다윗을 그 마음에 합하여 하신 것은 나로 주의 마음에 합한 자로 세우시기를 바라심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신다. 그럼 이제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5-6).” 우리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기도다. 거짓이 없고 분열도 없으며 우리 영혼을 쏟아 부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따라 교회의 유익이 되는 일,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렘 31:8).” 어디서 어떤 상황으로 어떤 일을 겪고 있든지, 우리가 서로를 위하고 주를 바라며 함께 돌아오는 길은 기도로였다.

 

마치 우리의 기도는 막다른 골목에서 더는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서서 혼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시 69:3).” 마치 아이를 잃고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엄마와 엄마를 잃고 오금이 저려 울부짖는 아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만은 마음껏 괴로워하고 통곡하는 한나처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 1:10).” 나는 심장이 뛰고 기력이 다해 주를 부른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시 38:8-10).” 하나님이 아니면 아실 수 없는,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8).”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내 안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안다. 잘났든 못났든 나는 주의 자녀라. 저가 나를 귀히 여기심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알게 하신다. 보잘것없고 하찮기 이를 데 없는 하루하루 같으나 그와 같이 주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를 생각하고 또는 어떤 이의 일을 두고 마음에 새겨 ‘주여!’ 하고 부르는 일. 더는 힘에 부쳐 내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마음과 현실과 육신의 모든 문제를 앞에 펼쳐두고, 주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에 그와 같이 괴로운 중에 기도로 간구와 소원을 아버지께 올리셨던 일을 상기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우리가 우리의 소원을 올릴 때 결코 이를 허투루 흘려듣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우리는 나의 구주로 알고 산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시 116:3-4).” 참으로 염치없고 송구하나 사람에게는 물론 나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기도로이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고 나는 특별히 해줄 게 없으나 말 한 마디, 기도 하나로 이를 가름하였다. 그야말로 내가 줄 수 있는 은과 금은 없어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주께 아뢰는 것. 어언 30여년 이상이 훌쩍 지난 우리의 만남과 같이 한 세월을 주께서 아시오니, 그때마다 분에 넘치는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여기까지 함께 하셨던 것처럼 남은 우리의 모든 날들도 더욱 주를 바라며 주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기를. 가정예배를 드리며 생일케이크를 앞에 두고 주께 아뢰었다.

 

어떤 때는 슬픔으로 어떤 때는 기쁨으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이름으로 주를 부르며 사는 사람들이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오늘 바울도 이를 구술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버젓이 기도를 부탁하고 서로의 기도 덕에 산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0-32).” 우리 기도의 목적은 하나여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서로에게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렇게 서로의 쉼이 가능한 게 기도다. 기도가 쉬면 불안이 기승을 떤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시 77:7).” 이는 병적으로 우리 영혼을 쇠약하게 하여,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8).” 의심과 낙심으로 마음을 짓누르고,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9).” 곧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믿는 자의 하세월은 불우하기만 하다.

 

믿는다고 하는데 믿음의 기쁨을 잃었다면, 말씀을 본다고 하는데 그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곁을 같이 하면서도 저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면…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38:6).”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둘 곳이 없다. 일일이 고하고 주께 아뢰는 수선스러움도, 그저 가만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시선을 두고 있는 고요함도, 오며가며 순간 아뢰고 금세 잊고 마는 수다스러움도… 우리로 주와 같이 가게 한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를 마주하며 든든히 서게 한다. 그러할 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1-2).

 

은혜 아닌 게 없다. 유별을 떨고 어떤 대단한 이벤트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지나치던 아내의 생일에 우리의 만남에서 함께 살아온 세월이 산 날의 절반이 훌쩍 넘어버리면서 부모형제 다음으로 가장 오래 같이 하는 사람 사이가 아닌가. 농담처럼, 서로 참 오래 같이 살았다, 하는 말 가운데 모든 희로애락이 묻어 있지만 우리가 알게 된 한 가지 확실한 사실 하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맡기신 아이들이나 가정이나 서로의 관계를 이루시고 지키고 오늘에까지 있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지 않던가? 그렇게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하는 바울의 축복기도처럼 우리의 모든 날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으면.

 

그렇게 서로를 위해 빌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30).” 기도로 응원하고 기도로 든든한 동역자로 서서,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2).” 우리가 주 안에서 쉬며 산다. 그러할 때에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28-29).” 우리의 가는 길에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복으로 가득하실 것을.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33).”

 

바울은 날 위해 기도하였다. 성경은 날 위해 이를 기록해주셨다. 하면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시 49:1).” 나의 남은 일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나의 입으로 기도하는 것.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3).” 할 때에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15).” 우리로 존귀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더욱 더 간구할 마음이 생겨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