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4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훗날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를 찬송하는 데 너의 간증이 될 것이다. 더한 바, 오늘의 난처함으로 주의 이름을 더욱 사모하게 될 것이다. 그리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우리가 주를 사랑함은 주신 날을 더하는 동안 그 은혜의 손길을 누리며 감사하는 일이었다. 당장은 노여움이 그 속에 크고 강하게 밀려올 수 있으나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말씀 하나하나가 다 자신의 고백이 되어 주의 날을 바라고 기다릴 수 있을 거였다.
저는 많이 힘들었는지 머리를 박박 밀었고, 코에 귀에 입술까지 뚫어 피어싱을 하였다. 돈만 있으면 몸 어디 성한 곳을 골라 문신도 더 하였을 텐데… 하는 객쩍은 소리도 하면서. 나름 잘해보겠다고 하는 것인데 남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보이스피싱을 당해 수천만 원을 날렸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쓰이고 혹시나 하는 염려와 달리 저는 건들거렸고 유들거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차를 팔아 우선 얼마나 부모에게 갚고 그래도 남은 이천 여만 원을 벌어서 갚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래도 올 수 있는 날은 그렇게 와서 같이 말씀을 나눌 수 있고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그러시려고 그러하신다는 말을 어찌 설명할 길이 없어 나는 묵묵히 지난 주일의 설교원고를 건네고 독대를 하듯 말씀을 전하였다.
지난날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강렬한 법이다. 어찌 내게 이러시는가, 싶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겠으나 훗날 우리가 주 앞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때에야 비로소 오늘 시편의 고백이 다가온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4).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5학년 여름방학을 얼마 앞두고 서울로 전학을 했다. 아버지는 성북구 어디 이층건물의 이층에 있는 개척교회로 우리 가족의 터전을 옮겼다. 사택이 따로 없었다. 건물 주인의 배려로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하여 임시숙소처럼 방을 서너 개 들이듯 공간을 나누어 비닐을 얽이 설키 묶어 집을 꾸몄다. 거기에 또 얹혀살아야 했던 가정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야말로 그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 먹는 꼴이었다. 화장실이 없어 큰 대야를 옥상 구석 저편에 두고 변소로 사용했다. 적당히 찰 때면 내다버리는 게 일이었다. 나의 기억은 선명하여 이 맘 때의 밤하늘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여름밤 모기장만 치고 옥상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그때에는 서울 밤하늘에도 별이 가득하였더랬다. 수요예배나 금요예배를 마치고 올라와 우리 곁에서 같이 자고 가는 청년들이 몇몇 있었다. 참으로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나는 물끄러미 난간에 걸터앉아 휑한 도로 위를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서러워하곤 하였다.
이듬해 6학년에 올라가면서 나는 4반에 되었다. 한 반에 70여명 정도 아이들로 가득한 콩나물교실이었다. 1반에서 7반까지가 남자 반이었고, 8반에서부터 15반까지는 여자 반이었다. 5, 6학년은 모두 3, 4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5반 여자 반만 1층 자료실 옆에 있었다. 그러려고 그런 것인지, 신학기가 시작되고 4월에 한 장애아이가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앰뷸런스가 다급히 들어오고 한 바탕 소통이 있은 후 하루이틀 뒤였을까? 모든 학년의 장애아동은 1층으로 옮기라는 교육청의 지시가 떨어졌다. 6학년에서는 나를 포함해 4명의 장애아동이 있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반은 15반으로 여자 반이었다. 강력히 항의했지만 묵살되었다. 한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원기소통에 소변을 보면 누가 가져가 비워내야 한다. 남자 반에서는 그런대로 그런다지만 졸지에 여자 반이라니! 우리는 양호실에 모여 나름은 대책을 강구하고 항변도 했지만 결국은 묵살되었다. 학교입장에서도 난처한 게 모든 학사 일정이 시작된 마당에 우리 넷 때문에 남자 반을 다시 편성하는 것도 문제고, 1층에 더는 빈 교실이 없는데 어쩌겠나? 15반 담임교사였던 앳된 여선생은 그런 사정을 설명하다, 미안하다며 저가 우리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이내 우리의 마음도 수그러든 것이다. 그해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했다.
한 학년을 여자 반에서 남자 넷이 여자애들 육십여 명과 지낸다는 일은 말을 안 해도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소동은 일어 온갖 일들이 기억에 선명하다. 체육시간이면 여자애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우리를 몰아세웠고,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먹을 때면 그 또한 가관이라 누가 돌아가면서 휠체어 앉은 아이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우리 넷이 붙어 있으면 자꾸 말썽이 나서 각각 떼어 앉혔다가 이런저런 말썽으로 도로 붙였다가, 둘씩 나누었다가… 선생은 그 와중에도 나름은 신경을 쓴다고 쓰면서 이틀이 멀다하고 울었다. 무슨 일로 어느 여자 아이 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건의를 일삼기 일쑤였고, 주임선생은 그럴 때면 우리의 뺨을 갈기거나 어린 여교사를 아이들 앞에서 면박을 주곤 하였다. 하루는 대형사고가 벌어졌다. 휠체어를 타는 녀석이 오줌을 눌 때면 우리 셋이 이를 가려주고 녀석은 원기소통에 해결을 하곤 했는데 누가 전 시간 것을 비우지 않은 것이다. 그걸 미련하게 또 쌌으니 오줌은 흘러넘쳐 여자아이들의 자리로까지 침범을 하였고, 여자아이들은 질겁하여 비명을 질러대며 복도로 뛰쳐나갔고, 다른 반 아이들이 기웃거리며 낄낄거리는 사이로 학년주임이 뛰어 들어와 다짜고짜 우리 셋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일로 담임선생은 미안해하며 눈물을 보였고 그럴 때마다 우리 때문에 우는 담임이 꼴 보기 싫어서 우리는 수업을 거부하듯 양호실로 도망치듯 몰려가 있었다.
같이 설교원고를 나누다 오늘의 어려움이 어느 훗날 주의 은혜와 사랑을 절감하며 찬송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전한 말이, 오후 내내 나의 지난날 이런저런 별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였던가보다. 그해 한 해만으로도 나에게는 수천 개의 별난 기억이 더 있다. 이를 어디 동화나 청소년 소설로 내려고 여러 번 되새겼던 일로 더더욱 선명한 기억도 여럿이다. 이를 새삼 열거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나의 지난날 그 끔찍하고 잔인하였던 날들이 주님, 하고 부를 때면 동시에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핑, 돌게 한다는 것을 나는 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슬픔이 깊은 곳에 기쁨의 은혜도 크다. 나는 그런, 주의 사랑을 안다. 그리고 이제,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6).
전에는 이런 기억들이 서러움으로 또는 억울함으로 나를 무장하게 하였다면 이제는 주를 사모하는 데 있어 기름을 붓는 격이다. 어제도 누구와 같이 말씀을 나누며, 내가 너를 생각하는 일이 때론 나도 이해가 안 된다고 고백하였다. 안양에서 십 수 년을 집으로 다니며 글짓기를 가르치다, 군포에서 글방을 차리고 또 십 수 년, 그때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로 만난 저였다. 모든 지역과 사물과 공간은 잊히지 않는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그렇게 목사가 되고 글방이 교회가 되고, 이쪽으로 옮겨오고 나는 한동안 안정제를 먹어야 하는 공황이 잦아들어 약도 끊었다. 그게 고작 일 년 반 정도였을까? 혼자 있는 시간은 평온하였고 심심할 정도로 나른하고 안이하여서, 나는 할 게 없어 설교원고를 쓰고 할 게 없어 여러 권의 설교책이나 심리학책을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기어이 자살을 기도했고 다행히 미수에 그쳐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였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로스쿨을 하고 무남동녀 외동딸로 신앙 좋은 어머니의 딸이었던 아이가 홀연히 하나님 곁으로 갔다. 우리 딸애와 한 살 차이다. 저 애도 5학년 때 만나 늘 날 위해 기도한다던, 목사가 되셔야 한다며 어린 게 뭘 안다고 날 위해 금요예배니 작정금식기도를 하니, 하던 아이였다. 숙명여대를 나와 로스쿨을 하며 국제변호사 실습으로 외국인기업의 법무파트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을 때였다. 희귀한 무슨 흉부암으로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치료가 있었고, 그때마다 우린 카톡을 하거나 통화를 하며 눈물로 기도를 나누곤 하였더랬다. 저는 늘 내가 목회를 하게 된 것은 자기 몫의 기도가 크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아이엄마도 이를 축하하는 선물도 보내왔었다.
아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또 한 녀석의 자살기도 소식도 들었다. 다시 공황이 왔고 나는 숨을 쉬기 힘들어하다 안정제를 도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네가 뭐라고, 내가 참 고생이 많다! 나는 어제 저를 앞에 두고 그리 말하였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그 불길은 여호와의 것이다.’ 내가 왜 저를 신경 쓰고 마음을 기울이는지, 자식을 위해서도 그만큼 바라고 기도하지 못하는데 저를 두고는 하염없다. 이를 굳이 숨기지 않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이다. 전에는 그리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려고 하였던 노력이라면 이제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마음이 간다. 저도 이를 안다. 끊어질듯 도로 이어지기를 징글징글하게 계속하고 있다. 이런 말에 녀석은 너털웃음을 짓고 나는 그래도 이처럼 가깝지 않은 길을 달려와 같이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는, 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억지스러움을 주의 사랑이라 이해한다. 누가 하란다고 하겠으며, 하겠다고 되는 마음이겠나?
서로에게 주신 마음은 주의 사랑이다.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골 1:8).”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내가 하는 일이,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너무나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이처럼 말로 옮겨 놓기도 민망할 따름이지만, ‘서로 사랑을 하면 가슴이 짓눌리고 깨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C. S. 루이스의 말에 동의한다(<네 가지 사랑> 중에서). 그게 누구든, 주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일은 나로 주체할 길이 없는 강권하심을 경험하는 세계다. 내가 왜 저 때문에 속 끓이고 마음 상해하고 그러다 위경련이 일 정도로 애태워야 하는지, 나는 설명할 길이 없다. 자식이면 자식이어서 그렇다지만, 부모면 부모여서 그러려니 하겠으나, 아내는 늘 입만 열면 ‘똥싼 아이’ 이야기나 ‘골칫덩이’ 누구에 대한 말이다. 푸념하는 것 같다가도 가정예배를 드릴 때면 저와 저의 가정을 두고 기도한다. 그러니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 이를 몸소 산다는 일은 주의 영광으로다.
앞서 했던 나의 이야기는 수천 개도 더 해줄 수 있다. 나의 첫사랑은 처절하였으나 그로 인한 주의 은혜와 은총은 오늘의 나로까지 연장이 된다. 첫사랑하면 다들 풋, 하고 웃겠지만 그 이야기로 나의 글쓰기는 결국 늪을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모든 나의 글의 화두는 소녀였고, 그녀였고, 그때의 일이었으니 돌아보면 그렇게 해서 직업적인 글쟁이가 되지 못하게 하신 모양이다. 여하튼 사랑은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이를 버거워하면 좋아하는 정도로 그 수준을 낮추어 자기 사랑으로 대신하려 하는 것인데, 주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염연히 다른 것이다. 가령 나는 90세 고령의 전직대통령이 재판을 받으러 지방법원에 가는 기사를 읽으며, 저런 인간도 구원을 받을까? 예수를 영접하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인간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북한의 김정은 김여정이 언젠가 회개하고 구원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풋, 하고 웃음이 난다.
우리 안에는 우리 보다 못한 누구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예전에 어느 연쇄살인자가 교도소에서 회개하고 목사가 된 일을 기억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저런 파렴치한 인간이 어찌 감히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내 안의 바리새인은 오늘도 여전히 ‘저런 인간’을 규정하고 단죄한다. 최소한 나의 의는 저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최소한 이제 나는 그러하지 않은가?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2).” 나름의 의를 가지고 산다. 최소한 ‘저런 인간’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할 때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 한데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 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용서이고 사랑이신가? 오늘 내가 누구를 생각함은, 나의 지난날을 사랑한다는 일은 끔찍하고 지긋지긋하고 치가 떨리는 일인데도 그것으로 주를 찬송한다. 이 잔인하고 아이러니한 사랑을 나는 어찌 말로다 설명할 길이 없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
오늘 아침, 말씀이 나를 꿇리신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사랑은 내 것으로가 아니었고, 저를 생각하는 이 마음은 내 마음으로가 아니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 치욕스럽게 여겨지던 나의 기억들이 주를 찬송하게 한다. 이를 전하여 말씀하게 하심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저에게, 아주 그 외모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 툭, 하면 욕이 나오는 저를 향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다. 그렇게 주의 사랑은 잔인하였다. 이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그리하여,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5-6).
그러므로,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7-10).
더는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는,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4).” 아,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17-18).” 그러하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