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5편 /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210919 주일
시편 65편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 65: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 65: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시 65: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시 65: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들어가는 말
추석을 앞두고 일부러 본문을 잡은 것처럼, 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편들 가운데 감사 시들 중 한 편이다. 어느 특정한 역사적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은총과 구속사적인 은총을 다루고 있다. 본문의 시는 이번 명절과 같이 이스라엘의 3대절기 중 장막절로 부른 찬송이다. 그것도 시기가 9월과 10월경으로 수장절 혹은 초막절이라 불리는 절기다. 마치 우리도 추석을 한가위 대보름이라 부르듯이 말이다. 유월절과 칠칠절(맥추절, 오순절)과 함께 초막절은 3대 절기다.
장막절은 선조들이 광야 40년 동안 방랑과 유목생활을 하였던 것을 기념하며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지켰다. 이는 명절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 7:2).” 하고 성경에 명시되면서 예수님은 그때에 <복음의 진수>를 들려주신 바 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37-38).”
말씀을 준비하고 묵상하다보면 내가 성경을 고르고 주제를 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성령이 ‘그 말씀’으로 이끄시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우린 누굴 취향에 따라 사귀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도의 교제도 성령의 이끄심으로다. 책을 읽고, 누구의 설교영상을 들을 때, 누구의 사연을 듣고 (성가시고 힘들지만) 같이 아파하면서, 우리는 주시는 말씀에 빚을 진다. 말과 글을 빌어 이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작가로 사는 게 아니다. 오늘 시편도 수천 년 전 다윗의 개인적인 감동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하지만 저의 감동은 그의 믿음의 선조들의 감동이고 언어이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이 기록되었듯이 오늘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처럼 말씀은 이어지고 전파된다.
본문 이해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1-5절은 ‘우리 죄를 사하심에 대한 감사’의 찬송이다. 6-8절은 ‘만물을 지으시고 유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송이다. 9-13절은 ‘일상에서의 은택에 대하여 감사’하는 찬송이다.
1연(1-5절), 우리의 죄를 사하심에 대한 감사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시 65:1).”
말씀은 말씀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과 같다. 어느 말씀도 별개의 뜻을 나타내지 않는다. 곧 ‘우리의 찬송은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 시온은 주를 모신 마음이고 우리의 몸이다. 시온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다. 이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100:4).” 이는 우리 성도의 가장 필연적인 은사이고, 사역이고, 사명이다. 이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149:1).” 곧 우리의 의무다. 성경은 우리더러 세상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이때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 65:2).” 하고 죄사함을 받은 자의 감사가 나온다. 누가 감히 주께 나오겠나? 이 땅에서도 대통령을 한 번 만나고, 저와 연락을 한다면 엄청난 일인데, 하물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자연스럽고 은밀한… 이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곧 우리의 골방, 하나님의 성소를 마음 한편에도, 내가 사는 곳곳 어디에서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을 보고 살면 미친다. 세상을 보고 살면 우리도 마귀새끼가 된다. 덩달아 환장한다. 환장은 장이 꼬인 것이다. 누가 누굴 붙들고 하소연하겠나?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 이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중략)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9-11).” 이 얼마나 엄청난 보증인가?
그러니 기도하라는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에 맞춰 오늘 시편을 이어서 보면,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시 65:3).” 이와 같은 간구를 누구에게 하겠나? 누가 이런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우린 날마다 당한다. 이 땅에 권세 잡은 자, 마귀 사탄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께 아뢰기를,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이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가? 우리에게 주신 권세이고 은총이다. 세상에선 혹여 빌빌거리는 것 같으나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6).” 이와 같은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 때,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결국 우리의 만족은 자기만족으로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시 65:5).” 이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간구에 응답하신다.
2연(6-8절), 만물을 지으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시 65:6-7).”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늘 계절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모든 삼라만상이 주의 섭리 가운데 운행된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어디보자. 하다못해 산악인들도 산을 오르기 전에 산신제를 드린다. 뱃사람들도 만선을 기원하며 출항에 앞서 제를 드린다. 농부들도 한 해 농사에 앞서 축원을 바란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 앞에서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절을 하고 제를 올리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추석을 앞두고, 한 해를 돌아보며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경배하고 있나?
오늘 시편의 말씀은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시 65:8-9).” 과연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고, 정말 아침저녁으로 감사를 하고 사는가? 다른 시편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3연(9-13절), 일상의 은택에 대하여 감사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시 65:8-9).”
곧 이 안에 우리의 일상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다. 하여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사 49:10).”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 믿는 자들로 하나님의 자녀를 일컫는 게 아니겠나? 하면 이와 같은 믿음으로 감사하는 날들로 채워지고 있는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이와 같은 고백이 날마다 드려지는 삶인지? 그저 남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한 생을 사는 것으로 주력하고 있는 게 다인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주의 자녀이면서 세상에 종노릇하며 사는 위인들이다. 사람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살피면서, 어디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까, 하는 궁리에 쩔쩔매면서!
그러한 우리의 실상을 아시는지, 오늘 시편은 우리의 복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시 65:10).” 남들이 뭐라 하든, 혹시 우리 가족들은 어찌 여기는지 모르겠으나 ‘오늘까지 살아온 것, 주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나의 공로 아무 것도 없는데 그때마다 풍족하게 채우시고 입히시고 돌보신 주의 은총을 찬양한다. 일찍 죽어 마땅할 죄인인데,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 65:11-13).”
우리의 하루하루가 그러하다. 하나님은 목청껏 외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곧 우리는 주를 위해 지으셨고, 주께 찬송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때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마뜩찮고 납득이 가지 않아 실망스럽고 원망이 일 때도 있지만, 그건 우리가 아직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불의함으로 구하기 때문이다.
나오는 말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시 65:10).”
우리 안에 복음의 씨를 뿌리셨다. 때론 더딜 수 있으나 우리 안에서 믿음의 싹이 자라난다. ‘그 싹에 복을 주신다.’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으로 쓸려 다니는 구름 같다. 말 그대로 구름 같은 신앙이 있고 산 같은 신앙이 있다. 두둥실 떠 있는 구름 같은 신앙인은 참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것 같다. 교회를 헐렁하게 다닌다. 믿음도 뜬구름 잡듯 스스로의 믿음을 믿는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날이 지나면 흔적도 없다. 그에 비해 누구는 산처럼 듬직하니 한결같다. 요즘 세상에서 보면 발전도 없고 나아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이 저주 받은 땅에서 사람만 보고 살면 미친다. 세상만 바라보면 저절로 마귀가 된다. 우리는 주의 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시 65:1).” 오늘 시편의 감사와 찬송이 우리의 서원이 되길 바란다. 우리의 도움은 어디서 오나?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2).” 성경은 단호하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우리는 주의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를 명심하고,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기를…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시 65: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