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출 23:32-3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시 96:13
일련의 사태는 징조다. 전염병은 창궐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영은 득세한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8).” 이에 주께서 말씀하시길,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5).” 안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완고함으로, 믿는 자들은 더 나은 징조를 찾아 헤맨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어쩌면 이와 같은 일은 자연스러운 시작에 불과하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7).” 사람과 사람 사이는 둘로 나뉘어 다툼은 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를 기억함이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 77:10-11).
살면서 그 안에 들던 주님과의 동행을 생각해야 한다. 저마다 그 기이하신 주의 도우심과 인자하심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런 게 없이 무슨 수로 버틸 것인가? 하면 하나님께 기억을 달라고 아뢰어야 한다.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74:2).
주 없이 사는 삶의 황폐함에 대하여, 저들의 거짓말을 주의하여 믿지 말고,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 자신을 옳다하는 이들에게서 떨어져야 한다. 그 징조의 날에 주의 날은 서서히 다가와 늙은 자들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때가 가까움을 알게 하실 것이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6).”
하면 우리는 살 궁리를 할 텐데, 오늘 말씀을 이에 묵상하게 된다. 곧 우리가 주의하여 경계해야 할 것은,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출 23:32-33).” 곧 오늘에 펼쳐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과 사태를 두고 주의 심판의 경고를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 96:13).” 곧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안이한 생각과 막연한 외면으로 우리 영혼은 설마, 라는 늪에 빠진듯하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시 30:6-7).
우린 주의 얼굴이 가릴 때 두려움에 떤다. 두려워할 줄 모르면 막연하게 여길 뿐이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8-9).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를 의뢰함이란,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0).
나의 기도와 경각심이 주의 은혜를 더욱 바라기를. 그리하여 오직 주만으로 의뢰함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로 보는 진리의 소망 안에 거하기를. 오늘의 고통이 우리로 유익을 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할 때에 오늘의 말씀은 이에 대해 어떻게 행할 것을 알리신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출 23:1-3).” 가만히 지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거짓된 풍설’이 난무하지 않던가? 보수와 진보가 갈려 온갖 개인방송을 해대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고 부당한 증언을 일삼고 있다.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의 송사는 편벽되이 무시당하고 있다. 저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의 끝자리에서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거기에 예수가 계신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로 주를 바로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10).” 주어진 날들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헛됨을 발견해야 한다. 그때마다 영적인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으나,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2).” 거기서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3-15).” 이러한 사태에도 안일함에 젖어 진정될 기미는커녕 날로 더욱 심각한데도 당장의 유익을 따름이니, 우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 혀는 속임을 일삼고, 그 입술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를 흘리는 데 빠르다.’
순간 두려운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이를 알고 두려워할 줄 앎으로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겠다. 믿음을 잃지 않고 이러할수록 더욱 주를 온전히 바라고 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을 것은, 우리의 구원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1-12).” 이를 위하여 주가 행하신 일이라니. ‘구하면 잃고, 잃으면 찾는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일상의 소소함에서 감사를 붙들고 사는 일, 스스로의 믿음을 시험해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그러므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의 뜻을 알고,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18:28-29).
오늘을 살며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서 주의 역사를 본다. 평소처럼 아이가 다녀가고 나의 한 날은 고요하였다. 곧 우리가 성령의 소욕으로 산다는 것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5-26).” 나는 아이에게 글방에서 같이 수업을 하고 난 뒤부터 좋아진 게 무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의외의 대답으로 함께 기도하는 것과 잠언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고 답하였다. 워낙에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라, 이제 중학생이 되면서 아직 뭘 알겠나싶었는데…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 것에 ‘좋다’는 말로 답을 하다니. 물론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와의 정해진 만남에서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를 한다. 잠언을 읽고 성경으로 삶을 조명한다. 그것이 아이의 입에서 ‘좋다’는 표현으로 드려지는 것에 새삼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나는 하는 말이었고, 행하는 일이었다 해도 그것으로 아이는, 상대는 좋고 좋음을 알고 있었다. 기도와 말씀뿐이라. 서툴지만 아이는 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였고 나는 저의 가정을 두고 기도하였다. 서로의 만남을 주가 예비하신다. 나는 이제 그러한 확신을 갖는다. 누가 오고 안 오고, 어떤 이에게 마음이 끌리고 안 끌리고 하는 일에 대하여 내가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주를 바람이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 10:7).
그것은,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9).
말씀으로다.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겔 2:8-9).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나는 이제 글방을 하되 교회인 것을 분명히 하고, 저들과 우선은 기도로 또한 말씀으로 저들 스스로가 주를 알고 자신을 이 땅에 두시는 까닭을 살펴 이를 글로 쓰게 하려는 것이다. 다음 달부터인가, 네 명의 아이들이 온다는데 내 마음은 달갑지 않은데 그것은 저들 가운데 앞서 해봤던 아이들이라. 그 소행이 무례하고 함부로 여기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란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데, 그 아이 둘 빼고 둘만 하면 안 되나? 하고 물었다가 그만두었다. 오게 하시는 이가 또한 그 필요를 아심일 터이니, 나는 다만 먹고 먹일 뿐이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3).
이는 모든 주의 종들의 과업이었는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렘 15:16-17).
때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데, 대하기 어렵고 후에 엉뚱한 소리로 욕하고 거짓말을 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자리’를 싫어하고, 싫어하는 자들로만 그런 자리를 채우시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이제는 알기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나는 다만 그리 행하여, 일련의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주의 뜻을 바르게 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복이 있다 하심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13).
죽고자 함으로 삶이고 살려고 하니 죽게 된다.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증거의 말씀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반드시 어느 때가 이르면,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15).
다시 말하지만 이 시대의 복이 있음은,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9:9).
스스로 청함을 받은 것을 알고, 그 부활에 참여하는 자로 사는 것이 복이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6).
때가 가까울수록 그 징조는 뚜렷하여져서,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7).
말씀을 따라 자신의 더러워짐을 알고 생명나무에 나아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복이 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4).
이와 같은 말씀 앞에 가만히 부복하여,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출 23:32).” 하시는 오늘의 말씀을 엄히 듣는다. 하여,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 96:3-5).
이에,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