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81편 / 우리의 다섯 가지 오직

전봉석 2022. 2. 4. 08:39

220206 주일

 

시편 81편

우리의 다섯 가지 오직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에 앞서 우리 믿는 성도들로서의 <다섯 가지, 오직>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오직’이란 부사어는 그 뒤에 오는 체언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른 것은 절대 있을 수 없고 다만’이란 뜻을 지닌다. 이를 성경에서 찾아, 나타나는 우리의 ‘다섯 가지의 오직(Sola)’을 먼저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첫째, 오직 성경.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곧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둘째, 오직 믿음.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셋째, 오직 은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이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8-9).”

 

넷째, 오직 복음.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곧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2).” 그러므로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다섯째, 오직 하나님의 영광.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이를 위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4).” 이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9).”

 

그리고 이 모두를 한데 아우르는 것은 기도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5:8)."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면 왜 뜬금없이 우리의 ‘오직’이 반드시 필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는 오늘 여기에 모여 이 말씀을 듣는다! 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됨이다. 곧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오직>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은 다윗의 3대 악장으로 잘 아는 아합의 시다. 모처럼 기쁨에 넘치는 감사의 찬송시다. 표제에 밝힌 ‘깃딧’이란 뜻은 ‘술틀을 밟을 때 부르는 기쁨의 곡조’라는 의미다. 마치 우리로 치면 추수 때나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여 그 감사를 올릴 때, 곧 얼마 전 설을 맞으며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린 것처럼, 5-10절로 미뤄 출애굽의 기쁨을 노래하는 풍성한 감사의 표현이 담겼다.

 

오늘 시편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반부 1-5절 중간까지로 ‘출애굽을 상기하며 주께 찬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반부는 5절 끝부분에서부터 16절 마지막까지로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거슬렀던 과거를 회고하며, 말씀으로의 복귀와 청종을 결의하는 결단의 내용’이다. 하여 이 두 부분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자. 그럴 때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오직’>을 자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1. 우리의 자원하는 심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시 81:1).”

 

한 친구가 뜬금없이 교회 계좌번호를 물었다. 저는 늘 ‘나중에’ 주식이 좀 대박나면, 형편이 좀 나으면, 하면서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그 마음에 헌금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 문자에서 ‘계속 미루다간 끝도 없겠어! 우선 이번 설 회사에서 보너스로 받은 돈이 얼마 안 되지만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 외쳤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먼저 이 당시 데살로니가교회의 형편은 말도 아니다. 로마나 유대교의 핍박과 모진 압제는 말할 것도 없고, 가난과 질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 한데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것도 범사에 감사하란다!

 

흔히 우린 감사, 하면 뭔가 좋은 일에 한다. 생일이든 추수감사주일이든 어떤 특별한 날에나 그나마 감사헌금이라도 드린다. 한데 이 모진 박해 가운데서 바울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범사에 감사하란 것인가?

 

‘범사’란 헬라어로 ‘엔판티’라 해서, 곧 ‘어떤 형편에서든지’, ‘모든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라는 세 가지 뜻을 동시에 갖는다. 이는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다. 시편 116편 12-14절에도 보면, 우리의 마음이 은혜를 받으면,

 

첫째는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

 

둘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

 

셋째는, 자신의 서원을 갚는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14).”

 

우리의 예배는 늘 ‘곧 이때’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여기에 맞서는 자기주장이 ‘나중에’다. 조건에 따른 실천을 약속하는 것이다. 성경은 일갈하신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예배를 드리긴 드리지만 헌신은 나중에! 돈이 좀 여유가 생기면 헌금은 나중에! 바쁜 일 좀 끝내고 나서 나중에! 나중에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감사”는 없다. 지금 아닌 것은 하나도 내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 16:29).” 범사에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빈손으로가 아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 궁색하나 정성으로 드려지는 게 감사다. 나아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스스로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돌보는 일도 주의 일이다.

 

오늘 시인은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시 81:2).” 누가? 할 수 있는 네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다시 말하지만 느낌으로나 생각으로가 아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뭐! 하는 소리는 하나님 앞에서 안 통한다.

 

예전에 은광원이라는 특수학교에를 주말마다 갔던 적이 있다. 자폐, 정신장애, 지체장애, 고아 아이들이 모여 살며 교육받는 보육원이었다. 한 손이 없는 아이가 한 손으로 가지 가슴을 쳐대며 찬송을 한다. 발음을 할 수 없는 아이가 으으, 아아, 하는 의성어로만 찬양을 따라한다. 하물며 사지육신 멀쩡하고, 형편이 되면서도 감사와 찬송을 뒤로 미루는 이들에게 성경은 외치신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 47:1).

 

우리의 신앙은 ‘오직’으로 정의된다. 다른 부수적인 이유나 예외가 없다. 이는 우리 주님의 명령이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지켜 사는 삶으로 일상은 드려진다.

 

 

2. 맡김은 드려짐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시 81:6).”

 

주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맡김이다. 맡김이란 드림의 다른 의미와 같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것은 무엇도 거룩하지 못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시는데 왜 주저하나? 왜 미적거리고 ‘나중에’ 하고 미룰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아직도 이 해방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겠어서다. 왜? 세상도 좋으니까! 한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그런데 요즘은 합리적인 사회라. 내남없이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고학력에 자기주장에 타당하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니, 이 성경은 어렵다!

 

오늘 시인은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시 81:7).” 이 모든 것을 우린 알고, 체험하고, 겪었다. 이와 같은 체험이 없다면 구하라. 구하려니 고난은 싫고, 고난 없는 복을 얻으려니 세상이 빠르고, 그래서들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9).”

 

우상이 무언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다. 자식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일? 명예? 명분? 이는 모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다. 이를 만들지 말라고 엄히 말씀하셨다(출 20:4). 오늘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나 많은 미신적인 행위와 무속적인 생활이 난무한가?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호 10:2).”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그러시는데, 그럴 수 있다고 내빼니 이 일을 어쩐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11).

 

 

나오는 말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 81:12).”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유기다. 내버려두심이다. 하나님 없이 잘 되는 일은 모두 해가 될 것이다.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신 31:17).”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의 ‘오직’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오늘 시인은 간곡히 우리를 붙든다.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주의 도가 무엇인가? 마땅히 성도가 가야 할 길이다.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시 81:13-14).” 하나님이 형통이다. 시인은 노래하기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119:67).

 

정 안 되겠으면 고통을 구하라. 망함을 구하라.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마치 아이가 시험을 치르느라 고생스러우나 그 결과가 내실이 되어 쌓인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놀라운 신앙 고백 앞에서 우리는 참 지혜를 얻는 것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그러므로 주께 향하여 ‘오직’ 잃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붙들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자. 좋은 일에 감사하되 나쁜 일에도 감사하자. 마땅히 여기던 것에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자.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복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신 것임을 명심하고,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늘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