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전봉석 2022. 2. 22. 04:46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 31:24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도전이 있겠으나 어느 것이고 외롭지 않고 갈 수 있는 게 어디 있겠나? 곧 시험을 앞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저들이 혼자 싸우고 외로웠을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저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또 어떨까? 남들 다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기뻐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며 다시 자신을 새롭게 곧추세워야 하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이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저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또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혼자 흘리고 견디고 이겨내야 했을 시간과 같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3-14).”

 

오늘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 먼저 알아야 나중 그 수고와 열심은 따른다. 저는 누구신가?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는 것. 고로,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 31:24).

 

말씀 앞에 가만히 앉아 우리에게 더하신 날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생각한다. 어쩌다 사는, 이 시대의 그렇고 그런 삶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이 길은 주가 이미 창세 전에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날들인데…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

 

오늘 시편의 고함처럼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꿈과 노력을 이루어 주시기를. 할 때에 오늘 말씀은 당부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6).” 말씀을 마음에 새겨 다른 것이 틈타지 못하도록. 둘째,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7a)” 내게 맡기신 기업, 그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생각함은 주의 마음으로밖에 할 수 없는데, 이는 말씀으로 가르치고 나의 삶으로 증명해야 할 일이었다. 셋째,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7b)” 기회를 얻을 때마다 서로 말씀을 상고하고 나누기를. 뿐만 아니라, 넷째,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8-9).” 일상에서 나의 행동거지와 삶의 중심에 이를 표로 삶고 기호로 삼고 기록하기를.

 

결국 우리의 가는 길은 말씀으로 그 좌표를 삼은 것이다. 그러할 때,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14).” 즉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저들과 같이 부화뇌동하지 않고,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15).” 그 하나님의 사랑, 질투하심을 느끼며 오히려 만족할 수 있기를. 그리하면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25).” 결론은 말씀을 지킴으로 본향에 이르는, 우리는 믿음의 순례자들이었다. 그러할 때에 시편은 간구한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시 31:4-5).

 

오늘 시인의 기도가 오늘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본향을 향해 걸어가며 절실하였다. 얼마나 세상은 허탄하고 거짓이 판을 치고 있는지,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6).

 

결국 우리의 앞날은 주의 손에 있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세상은 모든 게 경쟁이고, 이를 두고 싸우는 게 일이라. 그런 가운데서도….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23-24).

 

우리가 주를 바랄 때 우린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함으로 주를 바라는 게 아니라, 주를 바라는 자일 때 강하고 담대하였다. 이에 주의 사랑은 교회를 통해, 교회를 향해 온전히 나타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 84:1).

 

월요일 오전은 돌아오는 주일 말씀 본문을 두고, 그 의미를 묵상하다 알았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우리가 주의 자녀라면, 그 모습이나 형편이 어떠하다 해도 우리를 날마다 재촉하는 게 있었다. 교회를 섬기고 사랑하는 일은 주의 말씀 곧 계명을 받은 까닭이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그런데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인생은 그 삶이 어쩌면 그리도 처절할 뿐인지….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 84:2).

 

사모함이란 서로 떨어져서 이는 마음으로의 일이다. 우리의 의지나 이성으로의 일이 아니다. 마음이 하는 일이어서, 욥은 그 당한 처지에서도 고백하기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욥 19:27).” 사람으로 처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현실에서 저는 부디 자신의 나약함으로 주를 보기를 낯선 사람 같지 않을까? 마음이 초조할 따름이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더 가까이 하고 싶은 것처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우리로 주와 더불어 교제하기를. 아니면 그 결국은 참혹할 뿐이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특권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 84:3).

 

하찮고 보잘것없으나 저것들도 주의 제단에서 보금자리를 얻는데, 하물며 주의 자녀로 산다는 우리는 과연 스스로의 존귀함을 알기는 아는지? 귀히 여기기는 하는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면 그보다 못한 미물이 또 어디 있겠나?

 

곧 믿음의 순례는 우리 성도의 숙명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하시는 은혜이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4-5).

 

아, 이 귀한 복의 의미를 어찌하면 더욱 강렬하게 붙들고 살 수 있을까? 주의 집에 거하는 자의 복이란, 주께 힘을 얻는 것. 하면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 복이로구나! 할 때에 우린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 43:3)

 

고로 하루하루를 더하여 사는 날들이 그저 사는 일로 안녕하기를 바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으니, 내 안에서 행하시는 이가 계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이를 안다면 ‘원망과 시비’를 없이 하며 사는 게 상책이겠다.

 

곧 우리의 참된 만족은 하나님으로 인하여서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시 84:6).

 

이와 같은 체험은 아무나의 것이 아니다. 남들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고백이다. 여러 환경적인 요인은 늘 두렵고 떨리고 걱정이 앞서지만, 그러므로 주가 더하시는 생수로 타는 목마름을 축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알지 못하면서도 기꺼이 믿고 준행하는 삶이었으니,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왕하 3:17).” 돌아보면 모든 게 은혜 아닌 것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풍요 속의 빈곤과 같이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이나, 불안으로 점철된 이의 삶을 향하여,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명절 끝날이었다. 나름은 수고하여 얻을 게 많은 줄 알았는데, 우리가 느끼는 허기와 낭패는 주 없이 채울 수 없는 영원한 공허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살면서 이와 같은 고백이 나의 것이라는 데 영광의 감사를 올린다. 반드시 주는 약속하셨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렘 31:4).” 그리하여 믿음의 순례의 목적지는 하나님이다. 어디,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으로….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 84:7).

 

우리가 새 힘을 얻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멀리하는 것, 이는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향하여 나아갔던 길 위에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아, 이 귀한 의미와 목적으로 세워진다는 것.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시 84:8-9)

 

그러할 때, 우리는 은혜의 가치를 앎으로 은혜를 사모한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0).

 

이 땅의 그 무엇으로도 이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곧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부디 그러한 삶의 바람이 나의 의가 된다는 사실을,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일찍이 바울은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곧 정직한 자에게 주실 좋은 것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0).

 

이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나의 남은 삶이 그러하기를. 하여,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36:10).

 

이와 같은 기도가 나의 것임을. 이를 내게 알리어 주의 살아계심의 증인으로 세우셨으니,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 2:7-8)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