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신 7: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모세는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우리의 속성을 알 때 우리의 주의는 더욱 조심스럽다. 먼저는 혼합하지 말라는 것(1-11), 분명히 하여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불살라야 한다. 이는 우리의 구별됨을 강조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6).”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8)” 이 분명한 사실 앞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9).” 자칫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사랑을 그르칠 수 있다.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우리가 우리를 구별함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것.
여기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우리로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21).” 이는 우리가 저들보다 세고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심이었다. 이는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13).” 이 복의 출처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로 영광을 받으시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보혈로 정점을 이룬다. 곧 우리의 죄를 사하심으로 우리로 주를 인정하게 하신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를 나타내시려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특별히 세상을 사는 동안 그 은혜를 몸소 느끼고 누리고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창조하신 목적은 분명하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4-6).
성경의 이와 같은 분명한 진술 앞에서 더 무엇을 논할 수 있겠나? 이 일은 ‘곧 창세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어쩌다 어른이 아니다. 어느 가정의 어떤 사연을 들으면서, 저들이 교회를 휘젓고 담임목사를 곤경에 빠뜨리는 동안 아이들 넷은 폭력적이며 병적으로 산만하고 여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 부모를 일깨운다. 일그러지는 아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그 부모는 더욱 더 외골수적으로 고약하다. 그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물론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교회가 어지러운 것은 알겠으나 그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바, 그 놀라운 섭리를 두고 한참 저를 설득하였다. 즉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4).”
어찌 인생이 무난한 사람이 있겠나?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이루어지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5).” 어떻게 나 같은 자가 주의 아들이 되겠나싶은 송구함과 면구스러움이 주를 찬송하게 한다. 곧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 그에 따른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 6:3).
우리의 찬송은 인위적이지 않다. 가만히 주를 생각하면 눈물이 고인다. 주의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하여 몸 둘 바를 모른다. 이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시다. 이는 우리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아버지의 뜻, 주를 찬송하는 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오늘을 살며 행여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른다, 몰랐다 할 수 없게 하신다. 즉 주의 은총은 햇볕과 바람과 하늘과 땅이 다 아는 사실처럼 증거가 된다.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누구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기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그러라고 두시는 자들도 있어서 저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2-23).” 오늘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주술적인 것들과 사술(邪術)이 판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저런 것을 다 허용하면서까지 누구를 지지하고 그저 싫으니까, 또는 좋으니까, 감정에 이끌려 분별할 줄 모르는 것이 옛날 사람들만 못하다. 한술 더 떠서 이를 예술로 받들고 공연으로 그 앞에 조아려 감상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특히 우리의 어리석음을 두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 43:7).
곧 오늘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드러난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40:4-5).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2:8).
이를 분명히 하심은 우리로 바른 길 가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은 오늘 모세의 당부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신 7:16).” 곧 우리 스스로 허용하는 것이 우리의 올무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19).” 이로써 우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려 하심인데,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26).”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주가 싫어하시는 것,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멀리하고 잠잠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계속 진술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사 44:23).
하나님이 하신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는 모두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48:9-10).
오늘을 살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하심을 삶 가운데서 알고 바로 붙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을까? 우리로 주를 더욱 사랑하도록, 세상에 휘둘려 마음이 뒤섞이지 않도록, 혼탁하여져 구분하기 어려워질 때면 고난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일 테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 60:2-3).
이와 같은 말씀을 찾아보고 열거하여 묵상하는 일이 귀하였다. 나로 되새겨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를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를 잊고 저들 편에 서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곤 하는지.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61:1-3).
이사야도 다윗도 모세도 이처럼 주옥 같은 고백으로 주를 찬송하고 주의 영광의 증인으로 세워진 것은 철저히 저들을 연마하였던 고난의 원인은 그 시대적 과업이기고 하였다. 이사야는 얼마나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온갖 우상들에게 시달려야 했던가? 늘 쫓기는 신세로 일생을 광야나 토굴에 은신하여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다윗은 또 어떻고? 모든 영광과 자신의 의욕이 허물어지기까지 모세는 앞서 미디안 광야에서 의기소침한 40년의 고독한 생활로 단련된 몸이다. 이외에도 성경의 여러 믿음의 영웅들은 저절로 뚝딱,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께 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이를 두고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이를 그처럼 간절히 바라였던 것이 은혜이다. 돌아보면 모든 게 다 감사요, 은혜뿐인 것을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로 특별한 세상을 살게 하셨다. 이를 만드신 이가 이것으로 우리를 단련하신다. 이는 더 나은 본향을 향한 연마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7).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시다. 오늘 시편은 이를 필두로 찬송과 기도를 이어간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이를 알고 통회하고 자복함으로,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곧 우리가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 복의 출처가 다른 것이다. 이 땅에서의 ‘대장동 특혜’도 아니고, 어디 좋은 몫의 지상의 집 한 칸이 대수이겠나?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3-4).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게 다 무심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5).
나는 이제 이보다 더 큰 은총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든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를 중심에 모시고 온전히 주의 자녀로 사는 일, 친구에게도 말해주기를 부디 ‘노후대책’을 운운하며 오늘을 차일피일 미루며 살다 어느 날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하는 후회로 비통해하지 말고,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6).
한 구절 한 구절 시편의 찬송이 나의 기도가 되기를.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7-10).
부디 주의 이름으로 내 곁에 오는 이에게 나는 소리쳐 들려주어야 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11). 아멘.